주간동아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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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도둑들 “서빙고 얼음을 털어라”

김주호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2-08-13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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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도둑들 “서빙고 얼음을 털어라”
    40℃에 육박하는 최악의 폭염을 에어컨이나 냉장고 없이 버텨야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아찔하다. 에어컨이야 그렇다 쳐도, 지금처럼 집집마다 다 있는 냉장고 없이 여름을 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더위에 해갈할 냉수 한 컵을 마실 수 없는 것은 물론, 음식을 한 숟가락 뜨고 돌아서면 모두 상할 것이다. 아픈 사람의 환부가 썩고, 노약자가 기력을 보충할 약재도 보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냉장고가 없던 과거에는 어땠을까.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 골목마다 ‘얼음 팝니다’라고 크게 써놓은 가게가 적지 않았다. 낫이나 곡괭이로 큰 얼음을 콕 찍어 배달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기가 없던 예로부터 냉동시설 기능을 했던 것이 바로 돌로 지은 얼음 저장소, 즉 석빙고다. 중국에는 고대로부터 석빙고를 짓고 써왔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신라나 고려 때도 석빙고를 두었다는 자료가 각종 문헌에서 확인된다. 옛사람들은 석빙고 덕에 겨울에 언 얼음을 보관해 다음 해 봄부터 가을까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1396년 태조 5년에 이미 한양 안 두 곳에 석빙고를 설치했다. 두모포 동빙고와 둔지산 서빙고가 그것이다. 둔지산은 지금의 서울 서빙고동이고, 두모포는 옥수동이다(지금 있는 동빙고동은 서빙고동의 동쪽에 있다는 뜻일 뿐, 얼음 저장고가 있다는 뜻의 지명은 아니다). 동빙고에는 국가 제사에 쓸 얼음 1만2044정(丁)을 저장했고, 서빙고에는 왕과 빈에게 올리거나 대신들에게 나눠줄 얼음 13만4974정을 보관했다. 얼음 1정이 대략 두께 4치(약 12cm) 이상, 둘레 6자(약 180cm) 정도의 부피였다고 하니 서빙고에 저장한 얼음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조선 도둑들 “서빙고 얼음을 털어라”
    조선시대에 얼음이 얼마나 귀하고 중했는지는 석빙고에서 얼음을 잘못 보관해 추석 이전에 창고가 비면 담당 관리가 큰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얼음 저장과 반출이 엄격히 규제됐고, 얼음을 캐고 운송하는 일꾼인 빙부들을 선발, 관리하는 일도 국가적 업무였다. 특히 혹독한 추위에서 일해야 하는 만큼 동상이나 과로, 익사를 막는 것은 물론 빙부들을 달래는 데 필요한 보상과 관련해서도 조정이 크게 신경 썼다.

    얼음을 캐 석빙고에 들이는 겨울이나 얼음을 석빙고에서 처음 반출하는 봄에는 북방에서 추위를 관장하는 사한신(司寒神)께 제사(사한제)를 드렸다. 이처럼 귀한 물건이다 보니 15세기 무렵부터 얼음을 사사로이 거래하는 장사꾼이 등장했다. 왕실 소유의 동빙고와 서빙고 외에 민간이 소유한 사빙고가 나타난 것. 18세기 영·정조시대 이후에는 한강 주변과 전국 각지에 생선, 육류 등을 보관하기 위해 얼음을 공급하던 사빙고가 널리 퍼졌다.



    코미디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감독 김주호)는 조선시대 ‘얼음 역사’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덕무(차태현 분)는 강직한 우의정의 아들이자 총명함을 타고난 재목이다. 하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출셋길이 막혀 잡학과 서역에서 건너온 책에 빠져 산다.

    영화 무대는 권력에 혈안이 된 간사한 무리들이 조정은 물론 상권까지 손에 쥐고 흔드는 조선 후기. 좌의정 조명수는 국가의 얼음 관리권을 사빙고로 넘기고, 자기 일파와 친인척을 동원해 얼음 가격과 유통망을 쥐락펴락한다. 조명수가 정적이자 덕무의 아버지인 우의정에게 역적죄를 뒤집어씌워 사지로 내쫓자 덕무는 조명수를 골탕 먹일 묘안을 떠올린다. 바로 조명수가 장악한 서빙고의 얼음을 통째로 털고, 그가 저지른 비리와 부정을 낱낱이 밝혀내는 것. 덕무는 한양 최고의 돈줄이자 사빙고 운영자인 수균(성동일 분)에게 지지를 얻어내고 무예(오지호 분), 도굴(고창석 분), 화약(신정근 분), 운송(김길동 분), 변장(송종호 분), 잠수(민효린 분) 등 각 분야 최고의 ‘꾼’을 모아 서빙고에 든 얼음 3만 정을 털기 위한 대작전에 나선다.

    이 영화의 설계도는 목표와 방향이 명확하다. 최동훈 감독 작품 ‘도둑들’의 시나리오가 수십, 수백 개의 방뿐 아니라 지하 밀실과 복잡한 미로로 이뤄진 거대한 성채를 위한 설계도라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밑그림은 얼음 저장고처럼 쓰임새가 명확한 공간을 짓기 위해 기능적으로 만들어졌다. 차태현, 오지호, 신정근, 고창석 등은 넘침이나 어긋남 없이 호흡을 잘 맞춰간다. 주인공들이 석빙고를 턴다는 목표를 향해 주저 없이 달려가는 이야기의 속도감이 좋다. 주인공들이 시련, 장애에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반전과 이야기의 비틀림도 적절한 타이밍에 이뤄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가진 재미는 역사적 실재와 허구의 고리를 잇는 재치 있는 상상, 위트 있는 농담에서 비롯된다. 덕무는 일종의 중개업자(이문식 분)로부터 춘화나 춘설은 물론이고 서역에서 들어온 각종 서적이나 도구들을 사 모은다. 여기에는 당대 과학서나 예술서적, 백과사전류가 망라돼 있다. 영화에서 상상을 통해 그려낸 당대 저류문화의 풍경이 흥미롭다.

    영화 후반부에 좀 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만, 상상 속 도둑 이야기는 영·정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의 실재 역사와 ‘접붙이기’가 이뤄진다. 극중 시점은 영조 치하로, 사도세자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이후이며 훗날 정조가 되는 어린 세손이 당쟁 표적이 되는 때다. 극중 악역인 조명수는 세손을 폐위하고 허수아비 노릇을 할 또 다른 왕족을 내세워 천하를 얻으려는 인물. 그는 국가 소유의 석빙고와 얼음 유통권을 ‘민영화’하고 그것을 독차지함으로써 왕권을 위협한다.

    결과적으로 덕무가 이끄는 도둑들은 훗날 개혁 군주가 되는 정조의 수호자가 된다. 도둑 일당 가운데 폭탄 제조 전문가를 따라다니는 영특한 소년(천보근 분)은 훗날 정조에게 발탁돼 큰 업적을 남긴 역사적 실존 인물로 설정됐다. ‘정군’으로 불리는데, 눈치 빠른 관객은 그 성(姓)에서 천재 소년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도둑들’도 그랬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열연한 조선 도둑들 역시 관객 마음을 훔칠 만한 유쾌한 상상력을 맘껏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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