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휴일의 원맨 밴드인 ‘검정치마’는 지난 2장의 앨범으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확고한 지분을 확보했다. 한국 인디의 르네상스였던 2008년, 말 그대로 ‘갑툭튀’한 데뷔 앨범 ‘201’은 신인의 풋풋함과 베테랑의 노련함을 동시에 가진 걸작이었다. 동시대 영미 인디록의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 빼어나고 적나라한 한국어 가사까지 녹여 넣었다. 이 의외의 등장은 평단과 언론의 상찬을 불렀다. 그해 11월 발매돼 세상에 널리 들려지기도 전 웹진 ‘보다’에서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를 제치고 연말 결산 1위에 뽑히기까지 했다.
2011년 ‘Don’t You Worry Baby(I’m Only Swimming)’를 내고 6년이 지났다. 검정치마가 돌아왔다. 전대미문의 프로젝트로 돌아왔다. 그동안 만든 노래 30곡을 앨범 3장에 담아 순차적으로 발매한다. 다시 말하지만 싱글이 아닌 앨범이다. 3집 ‘Team Baby’는 사랑 노래 연작이다. 검정치마의 음악에선 모든 감정이 날카롭다. 섬뜩할 만큼 솔직하다. 웃으면서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감정이 애정이 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마음이 애틋해진다. 봄의 들판과 여름의 바다, 가을의 하늘 같은 기운이 약동한다. 1집의 ‘좋아해줘’ ‘Antifreeze’가 그랬다. 2집의 ‘젊은 우리 사랑’ ‘Love Shine’도 그랬다. ‘Team Baby’는 그런 노래들에 담긴 감정을 끌어모아 다시 프리즘에 투영시킨 빛의 지도다.
첫 곡 ‘난 아니에요’는 세상의 바깥과 내 안쪽의 충돌로 발생하는 피로를 털어놓는 듯한 자조적인 곡이다. 힘 빠진 독백 뒤로 안개 같은 파장들이 나부낀다. ‘Everything’에서 보여줬던 드림 팝 스타일의 아름다운 혼란이 끝나갈 무렵 힘찬 드럼 소리와 함께 두 번째 트랙, ‘Big Love’가 시작된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두 곡 사이에는 지하철 플랫폼을 연상케 하는 효과음이 들어간다. 마치 해무 가득한 밤바다에서 홀로 빛나는 등대를 발견했을 때처럼,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연인의 얼굴을 봤을 때처럼 음반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된다. 1집을 좋아했던 이라면 반색할 만한 곡이다. 또 하나의 앤섬(anthem)이 될 요건을 가진 곡이기도 하다.
그 뒤로 이어지는 노래들은 다채롭다. 기타 팝과 신스 팝, 일렉트로니카와 포스트록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가 각 장의 테마를 구성할 뿐 아니라, 한국 가요계에 수용됐던 팝 장르들이 검정치마 스타일로 재해석된다. ‘한 시 오 분(1 : 05)’에는 투투, 룰라, 김건모 등 1990년대 중반 가요계를 휩쓸던 ‘한국식 레게’ 리듬과 사운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폭죽과 풍선들’ 역시 90년대 초반 댄스 뮤직에서 흔히 볼 수 있던, 80년대 초반 모타운 사운드의 기묘한 변형을 숨김없이 받아 안는다.
이토록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은 하나의 정서로 모여든다. 그렇다. 사랑이다. 사랑이란 누군가에 대한 마음이지만, 스스로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시인이 되고 탐험가가 된다. 전에 머릿속에 담겨 있지 않던 언어들이 마음으로부터 샘솟아 오른다. 스스로에게 놀라는 순간들이 온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앨범에 쓰인 여러 표현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싶던 그 절실한 마음의 선물을, 검정치마는 상쾌하고 아련한 멜로디에 담아 우리 대신 배송한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함께 있어도 늘 같이 있고 싶고, 잠시나마 떨어지면 안부를 전하고 싶어지는, 호르몬의 혼수상태가 10곡의 노래가 돼 세상에 나왔다. 당신이 사랑하고 있다면, 혹은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발견할 것이다. ‘카톡’에 링크를 걸어 고백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노래 한 곡쯤은. 뻔한 사랑 노래의 홍수에 진저리치는 사람일지라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이, 제대로 된 음악의 옷을 입고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