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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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안아키’는 왜 공공의 적인가

예방접종 거부는 ‘집단면역’ 붕괴 초래… 최악의 경우 사회구성원 전체 건강 위협할 수도

  • 지식 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7-06-02 17: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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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이른바 ‘안아키’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한 한의사가 운영하는 이 인터넷 커뮤니티는 회원이 6만 명에 이르렀지만 최근 폐쇄됐다. 이 한의사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전 국민 ‘수두 파티’를 제안했다. 예방접종보다 수두에 걸려 획득한 자연스러운 면역이 훨씬 더 낫다는 논리다.

    난감한 점은 이 한의사의 주장에 적잖은 이가 고개를 끄덕인다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는 배울 만큼 배우고 먹고살 만한, 누가 봐도 중산층 소리를 듣는 이도 여럿 끼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약 안 쓰고 아이 키우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여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일까.

    ‘자연주의 육아’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예방접종을 극구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예방접종이야말로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면역반응을 이용하는 질병 예방법이기 때문이다. 수두 파티를 열어 수두에 걸린 아이와 접촉하든,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수두 백신을 맞든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똑같은 수두 바이러스에 반응한다.

    다만 수두 파티와 백신 감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1년에도 수차례 접하는 감기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쉽게 이겨낼 정도로 준비돼 있다. 하지만 어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우리 몸을 자주 공격하지 않아 면역체계에게 미처 준비할 기회를 주지 않을뿐더러 한 번 공격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예방접종, 인류 지혜의 집대성

    백신은 바로 이렇게 한 번 공격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이겨낼 정도로 약하게 만들어 주입하는 것이다. 한 번 이겨본 경험은 면역체 생성이 원활하도록 돕고, 다음에 같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을 때는 쉽게 면역체를 만들어 물리칠 힘을 얻는다. 계절성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온갖 민간요법을 맹신하는 자연주의 육아가 유독 백신에만 거부감을 갖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현대의학의 예방접종이야말로 민간요법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유럽 등 구대륙 곳곳에서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천연두를 막고자 시도한 민간요법이 현대의학의 예방접종으로 이어진 것이다.

    알다시피 오랫동안 수많은 이가 천연두에 걸려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얼굴에 얽은 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일단 천연두로부터 살아남으면 다시는 그것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인도, 중국 같은 곳에서 1000년 전부터 천연두 환자의 딱지를 갈아 코로 흡입하기도 하고, 피부를 살짝 째서 집어넣기도 했다. 최초의 예방접종 ‘인두’가 시작된 것이다.

    인두는 자칫 심각한 천연두로 번질 위험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소젖을 짜는 여성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젖 짜는 여성의 손에 생긴 물집에서 짜낸 고름을 8세 남자아이 팔의 생채기에 넣었다. 그 소년은 나중에 천연두도 이겨냈다. ‘우두’가 탄생한 것이다.

    예방주사가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우두 덕분이다. 라틴어로 소를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바카(vacca)’니까. 그러니 수천 년간 세계 곳곳에서 축적해온 자연주의 민간요법에서 시작된 예방접종을 마치 현대의학이 빚어낸 괴물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 떠는 모습은 그야말로 난센스다.

    예방접종이 괴물이 된 사정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199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아이 12명의 사례를 조사해 ‘홍역, 볼거리, 풍진을 예방하는 MMR(Measles, Mumps, Rubella)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추측한 내용의 논문을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발표한다.

    웨이크필드 자신도 논문에서 MMR 백신과 자폐증 발병의 관계를 증명하지 못했고, 이후 이뤄진 수많은 연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론이 대서특필한 웨이크필드의 가설은 사실처럼 포장돼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심지어 2004년 백신 제조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던 변호사가 그에게 연구 대가를 지급한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말이다!

    예방접종을 거부하든 말든, 백신을 맞으면 자폐증에 걸린다고 믿든 말든 내버려두라는 사람도 있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남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럽지 못할 뿐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는 공동체의 건강을 좀먹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안아키’, 그 치명적인 유혹

    무인도에 살지 않는 한 나의 몸은 세상과 어쩔 수 없이 연결돼 있다. 내가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안에서 무심코 재채기하면서 내뱉은 수많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곧바로 다른 사람의 코 또는 입으로 들어간다. 사무실이나 화장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수많은 세균이 내 손을 통해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내 몸이 이렇게 세상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예방접종은 나뿐 아니라 타인을 지키는 수단이 된다.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백신으로 특정 질병을 막아내는 면역력을 획득한다면 그 질병은 더 이상 위협이 아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숙주(인간)에서 다른 숙주(인간)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바로 ‘집단면역’이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에 기반을 둔 자신의 독특한 신념에 따라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이가 늘어나면 이런 집단면역은 무력화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예방접종을 거부한 당사자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돌아간다. 미국에서 2008년 한 건도 발생하지 않던 홍역이 중산층 사이에서 예방접종 거부 운동이 벌어진 2013년 270여 건으로 늘어난 것이 그 예다.

    ‘안아키’에 공감하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 ‘면역에 관하여’(열린책들)를 쓴 율라 비스는 이렇게 당부한다. 나는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는 제 살갗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보호받는다. 이 대목에서, 몸들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혈액과 장기 기증은 한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들어가며 몸들을 넘나든다. 면역도 마찬가지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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