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거장 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 남자 주인공인 가난뱅이 청년 호세인은 마을의 부잣집 딸 테헤레를 가슴 깊이 연모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잘될 리 없다. 상대는 거들떠도 안 보고, 호세인은 가슴앓이만 한다. “왜 그런 힘든 사랑을 하느냐”는 질문에 호세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만약 지주는 지주끼리, 부자는 부자끼리, 무식한 사람은 무식한 사람끼리 결혼해야 한다면 아무것도 안 될 거예요. 글을 아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과 결혼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은 지주와 결혼하면 모든 사람이 서로 도우며 살 수 있잖아요.”
사랑이든 우정이든, 연인끼리든 친구끼리든 관계없다. 많든 적든 가진 것을 합치고 똑같이 둘로 나누면 어떨까. 가져서 생기는 행복과 없어서 생기는 불행, 그리고 소유로 인한 괴로움과 없어서 오히려 마음 편한 것을 서로 더하고 뺀 뒤 남는 좋은 것만 공유한다면 어떨까. 이란의 무식쟁이 시골 청년 호세인의 말은 순진한 나머지 바보 같지만, 어찌 보면 사랑이나 우정의 본질을 꿰뚫은 현자의 혜안이 아닐까.
시종 밝고 유쾌한 분위기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 1%의 우정’(이하 ‘언터처블’)의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분)과 드리스(오마르 사이 분) 역시 둘을 합친 다음 딱 반으로 나누고 싶은 남자들이다. 먼저 노년을 향해가는 필립은 프랑스 상위 1% 부자다. 방 12개와 욕실 5개가 있는 파리의 대저택에 산다. 마세라티와 벤츠 등 최고급 승용차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수제 명품 정장을 즐겨 입는다. 미술품 수집이 취미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부러워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로 보이지만 아무도 그를 닮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필립은 얼굴 근육만 자유로운 전신마비 환자기 때문이다. 수족처럼 곁에 머물며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
또 한 명의 남자 드리스는 180cm가 넘는 키에 몸매도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20대 건장한 청년이다. 이 젊음과 건강만으로도 삶이 찬란할 수 있을 거라고? 빌딩 청소를 하는 홀어머니에 대여섯 명이나 되는 어린 동생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 흑인 청년이래도 그런 말이 나올까. 빈민촌 한구석에 있는 집은 한 몸 편히 누울 곳조차 없고, 동생은 벌써부터 마약거래조직원과 어울려 다니니 드리스는 인생 자체가 심란하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도 강도죄로 감옥에서 6개월 살고 나왔다.
평생 엮일 일 없어 보이는 두 남자가 만난 것은 필립이 낸 도우미 모집공고에 ‘목구멍이 포도청’인 드리스가 지원해서다. 인종, 외모, 학벌, 재산, 나이, 출신지, 직업 어느 하나 같은 게 없고,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인생이 맞부딪친다는 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유머와 감동은 예상할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언터처블’은 장전된 총알을 잇따라 과녁에 명중시킨다. 설정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스토리지만, 깔끔한 전개와 주연 배우들의 호연 덕에 영화는 웃기고 가슴 짠한 대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프랑스에선 지난해 11월 개봉해 10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전신마비 환자와 프랑스의 흑인 부랑아가 주인공이지만, 드리스가 운전하고 필립이 곁에 탄 최고급 스포츠카가 경찰을 따돌리며 파리를 내달리는 첫 장면부터 영화의 마지막까지 시종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한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전과 기록만 있을 뿐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드리스는 구직하려고 노력하면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요건을 충당하기 위해 필립의 도우미 모집에 지원 서류를 냈다. 이미 석ㆍ박사 학위 소지자는 물론, 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까지 덤빈 상황이라 드리스는 언감생심 채용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면접 때 보여준 그의 악동 같은 모습이 오히려 필립의 눈길과 마음을 끌었다. 그리고 결국 드리스는 한 달간 한시적으로 고용된다.
상류층과 빈민, 그리고 부자인 백인 중년과 가진 것 없는 흑인 청년의 문화 차이가 빚어내는 웃음이 이 영화가 선사하는 재미의 8할 이상이다. 드리스는 쇼팽과 슈베르트를 알지 못한다. 베를리오즈(화가)는 빈민촌 이웃에 사는 친구 이름이고, 미켈란젤로는 영화 ‘닌자 거북이’의 캐릭터일 뿐이다. 어쩌다 아는 클래식곡이 있는데 그것은 광고 배경 음악이나 관공서와 통신사의 전화연결 대기 신호음으로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구매하려는 필립에게 큐레이터가 내놓은 작품을 보고 드리스가 “종이에 물감 뿌리는 건 나도 한다”며 수십만 달러의 가격에 의문을 표하는 장면이나, 필립의 오페라 관람에 동행해 색색깔로 분장한 가수를 보며 웃고 떠드는 대목도 큰 재미를 선사한다. 장난으로 보이는 그림이 고가에 팔리는 것을 보고 드리스가 직접 붓을 들어 그림 작업에 나서자, 필립은 드리스의 그림을 “유망 신인작가의 것”이라고 지인을 속여 고가에 팔아주기도 한다.
“내가 장애인인 걸 잊거든”
필립은 꾸밈없고 낙천적이며 장난기 많은 드리스와 함께 전신마비 이후 누려보지 못한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다. 마사지나 물리치료를 할 때는 실수가 많아 간혹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팔다리를 못 움직인다고 놀려대지만, 필립은 드리스가 곁에 있는 삶이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인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용기가 없어 ‘뜬구름 잡는’ 편지만 주고받던 여성을 직접 만나보라며 필립을 부추긴 사람도 드리스다. 괴팍하고 고집불통이던 돈 많은 장애인 필립은 “드리스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 줄 아느냐”며 “전과도 있고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 웬만하면 해고하라”고 조언하는 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드리스가 옆에 있으면 내가 장애인인 걸 잊어.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해주거든. 그는 나에게 연민이나 동정 따위를 보내지 않지.”
‘언터처블’은 프랑스 최상위 부자이자 샴페인 회사의 경영자 필립과 그의 도우미였던 애브델의 이야기를 2003년 프랑스 TV가 다큐멘터리로 방송한 것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필립은 영화에 나오는 대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던 중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고, 투병 중이던 아내마저 사고 3년 만에 사망했다. 영화의 마지막엔 실존 인물인 두 남자의 모습이 짧게 나온다.
무엇보다 프랑스의 아카데미상으로 꼽히는 세자르상을 비롯해 지난해 프랑스 내 주요 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배우 오마르 사이의 연기가 돋보인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귀엽고 낙천적인 청년으로 분한 연기가 일품이다. 드리스가 무반주첼로 조곡을 들으면서 “바흐는 역시 섹시해”라고 제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 장면을 비롯해, 하늘과 땅 차이인 두 사람의 취향을 대조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음악도 귀를 잡아끈다. 액션영화 같은 제목 ‘언터처블’은 인도식으로 말하자면 ‘불가촉천민’이라는 뜻으로, 최하위 계층을 의미한다.
“만약 지주는 지주끼리, 부자는 부자끼리, 무식한 사람은 무식한 사람끼리 결혼해야 한다면 아무것도 안 될 거예요. 글을 아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과 결혼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은 지주와 결혼하면 모든 사람이 서로 도우며 살 수 있잖아요.”
사랑이든 우정이든, 연인끼리든 친구끼리든 관계없다. 많든 적든 가진 것을 합치고 똑같이 둘로 나누면 어떨까. 가져서 생기는 행복과 없어서 생기는 불행, 그리고 소유로 인한 괴로움과 없어서 오히려 마음 편한 것을 서로 더하고 뺀 뒤 남는 좋은 것만 공유한다면 어떨까. 이란의 무식쟁이 시골 청년 호세인의 말은 순진한 나머지 바보 같지만, 어찌 보면 사랑이나 우정의 본질을 꿰뚫은 현자의 혜안이 아닐까.
시종 밝고 유쾌한 분위기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 1%의 우정’(이하 ‘언터처블’)의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분)과 드리스(오마르 사이 분) 역시 둘을 합친 다음 딱 반으로 나누고 싶은 남자들이다. 먼저 노년을 향해가는 필립은 프랑스 상위 1% 부자다. 방 12개와 욕실 5개가 있는 파리의 대저택에 산다. 마세라티와 벤츠 등 최고급 승용차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수제 명품 정장을 즐겨 입는다. 미술품 수집이 취미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부러워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로 보이지만 아무도 그를 닮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필립은 얼굴 근육만 자유로운 전신마비 환자기 때문이다. 수족처럼 곁에 머물며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
또 한 명의 남자 드리스는 180cm가 넘는 키에 몸매도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20대 건장한 청년이다. 이 젊음과 건강만으로도 삶이 찬란할 수 있을 거라고? 빌딩 청소를 하는 홀어머니에 대여섯 명이나 되는 어린 동생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 흑인 청년이래도 그런 말이 나올까. 빈민촌 한구석에 있는 집은 한 몸 편히 누울 곳조차 없고, 동생은 벌써부터 마약거래조직원과 어울려 다니니 드리스는 인생 자체가 심란하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도 강도죄로 감옥에서 6개월 살고 나왔다.
평생 엮일 일 없어 보이는 두 남자가 만난 것은 필립이 낸 도우미 모집공고에 ‘목구멍이 포도청’인 드리스가 지원해서다. 인종, 외모, 학벌, 재산, 나이, 출신지, 직업 어느 하나 같은 게 없고,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인생이 맞부딪친다는 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유머와 감동은 예상할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언터처블’은 장전된 총알을 잇따라 과녁에 명중시킨다. 설정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스토리지만, 깔끔한 전개와 주연 배우들의 호연 덕에 영화는 웃기고 가슴 짠한 대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프랑스에선 지난해 11월 개봉해 10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전신마비 환자와 프랑스의 흑인 부랑아가 주인공이지만, 드리스가 운전하고 필립이 곁에 탄 최고급 스포츠카가 경찰을 따돌리며 파리를 내달리는 첫 장면부터 영화의 마지막까지 시종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한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전과 기록만 있을 뿐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드리스는 구직하려고 노력하면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요건을 충당하기 위해 필립의 도우미 모집에 지원 서류를 냈다. 이미 석ㆍ박사 학위 소지자는 물론, 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까지 덤빈 상황이라 드리스는 언감생심 채용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면접 때 보여준 그의 악동 같은 모습이 오히려 필립의 눈길과 마음을 끌었다. 그리고 결국 드리스는 한 달간 한시적으로 고용된다.
상류층과 빈민, 그리고 부자인 백인 중년과 가진 것 없는 흑인 청년의 문화 차이가 빚어내는 웃음이 이 영화가 선사하는 재미의 8할 이상이다. 드리스는 쇼팽과 슈베르트를 알지 못한다. 베를리오즈(화가)는 빈민촌 이웃에 사는 친구 이름이고, 미켈란젤로는 영화 ‘닌자 거북이’의 캐릭터일 뿐이다. 어쩌다 아는 클래식곡이 있는데 그것은 광고 배경 음악이나 관공서와 통신사의 전화연결 대기 신호음으로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구매하려는 필립에게 큐레이터가 내놓은 작품을 보고 드리스가 “종이에 물감 뿌리는 건 나도 한다”며 수십만 달러의 가격에 의문을 표하는 장면이나, 필립의 오페라 관람에 동행해 색색깔로 분장한 가수를 보며 웃고 떠드는 대목도 큰 재미를 선사한다. 장난으로 보이는 그림이 고가에 팔리는 것을 보고 드리스가 직접 붓을 들어 그림 작업에 나서자, 필립은 드리스의 그림을 “유망 신인작가의 것”이라고 지인을 속여 고가에 팔아주기도 한다.
“내가 장애인인 걸 잊거든”
필립은 꾸밈없고 낙천적이며 장난기 많은 드리스와 함께 전신마비 이후 누려보지 못한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다. 마사지나 물리치료를 할 때는 실수가 많아 간혹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팔다리를 못 움직인다고 놀려대지만, 필립은 드리스가 곁에 있는 삶이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인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용기가 없어 ‘뜬구름 잡는’ 편지만 주고받던 여성을 직접 만나보라며 필립을 부추긴 사람도 드리스다. 괴팍하고 고집불통이던 돈 많은 장애인 필립은 “드리스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 줄 아느냐”며 “전과도 있고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 웬만하면 해고하라”고 조언하는 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드리스가 옆에 있으면 내가 장애인인 걸 잊어.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해주거든. 그는 나에게 연민이나 동정 따위를 보내지 않지.”
‘언터처블’은 프랑스 최상위 부자이자 샴페인 회사의 경영자 필립과 그의 도우미였던 애브델의 이야기를 2003년 프랑스 TV가 다큐멘터리로 방송한 것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필립은 영화에 나오는 대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던 중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고, 투병 중이던 아내마저 사고 3년 만에 사망했다. 영화의 마지막엔 실존 인물인 두 남자의 모습이 짧게 나온다.
무엇보다 프랑스의 아카데미상으로 꼽히는 세자르상을 비롯해 지난해 프랑스 내 주요 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배우 오마르 사이의 연기가 돋보인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귀엽고 낙천적인 청년으로 분한 연기가 일품이다. 드리스가 무반주첼로 조곡을 들으면서 “바흐는 역시 섹시해”라고 제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 장면을 비롯해, 하늘과 땅 차이인 두 사람의 취향을 대조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음악도 귀를 잡아끈다. 액션영화 같은 제목 ‘언터처블’은 인도식으로 말하자면 ‘불가촉천민’이라는 뜻으로, 최하위 계층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