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서울 영등포구 한나라당 당사에서 2012년 한나라당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수도권의 한 친이(친이명박)계 의원은 최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활동에 대해 “한마디로 쇄신 방식에 기분 나쁘다”면서 “정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민간 비대위원이 당을 망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은 연일 친이계와 비대위원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권 실세 용퇴론’과 ‘물갈이 공천론’이 내홍 단계를 넘어 사실상 정면충돌로 이어질 조짐을 보인다.
김종인, 이상돈 비대위원은 이재오 의원과 홍준표, 안상수, 정몽준 전 대표를 구체적으로 지목하면서 “한나라당 실패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지닌 의원들이므로 용퇴해야 한다”는 강경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과거의 물건을 내놓으면 소비자가 사려 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 존속할 수 없다는 시장논리도 내세운다.
이에 대해 친이계는 김종인, 이상돈 비대위원의 자질론을 거론하며 이들의 사퇴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친이계는 두 비대위원이 사퇴하지 않으면 집단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며 성명 발표는 물론 비대위와의 결별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당내 구(舊)주류로 전락한 친이계는 19대 총선에서 기사회생하려면 무엇보다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비대위원은 한나라당이 살려면 친이계의 자발적 자기희생이 필요하다고 맞선다.
인적 쇄신 놓고 정면충돌
비대위의 인적 쇄신 드라이브에 대한 친이계의 반격은 다단계-다트렉으로 이뤄진다. 처음에는 ‘정권 실세 용퇴론’을 주장하는 민간 비대위원의 사퇴를 촉구하더니 1월 3일 이후로는 “인적 쇄신 문제는 완전국민참여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국민 손에 맡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친이계가 공천 획득을 위한 마지막 반전카드를 꺼내든 것. 만약 비대위가 수용하지 않을 경우 친이계는 대규모 회동을 갖고 집단성명을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친이계는 2011년 12월 31일 의원총회(이하 의총) 때부터 공개적으로 김종인, 이상돈 비대위원의 사퇴론을 들고 나왔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참석한 의총에서 이들 비대위원의 사퇴를 촉구해 당시 친박(친박근혜)계 인사의 반발을 샀다. 친이계는 김종인 비대위원의 경우 과거 동화은행 뇌물수수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점을 부각했고, 천안함 폭침 관련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이상돈 비대위원의 경우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제원 의원은 당시 의총에서 “김 위원은 비리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분으로, 이런 분이 쇄신을 외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이 위원은 당 정체성과 맞지 않아 용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성동 의원도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 비대위원이라면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며, 그래야 비대위 결정에 이해당사자가 승복할 것”이라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물로 비대위원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희목 의원도 전면에 적극 나섰다. 원 의원은 1월 3일 “인적 쇄신의 대상과 방법은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며 “가장 강력한 인적 쇄신은 국민 손으로 하는 것으로, 완전국민참여경선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스템을 확정하기도 전에 일부 비대위원이 인적 쇄신 대상으로 특정인을 지목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절차를 무시하고 특정인의 불출마를 주장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그들이 공천 거론 자격 있나”
친이계가 이처럼 시스템 공천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비대위원과 논리적으로 한판 붙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일부 비대위원이 특정 인물 찍어내기를 하지만 결국 누구를 공천할지는 최종 심판자인 유권자가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참여경선을 할 경우 현역의원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친이계는 일부 비대위원 사퇴와 완전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을 결정하지 않으면 세 결집을 통해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장제원 의원은 “비대위와의 결별도 각오해야 한다”며 폭탄발언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비대위는 당 지도부 구실을 하는데, (비대위와의 결별은) 지도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라며 “탈당이 아니라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포함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장 의원은 “당내 갈등을 촉발한 두 비대위원이 사퇴하지 않으면 집단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사퇴에 찬성하는 많은 분이 함께 모여 의논해 같은 의견을 도출한다면 성명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상돈 비대위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와 한나라당의 성공을 위해 대구·경북(TK)은 비키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분은 한나라당 비대위원인지, 박근혜 대통령 추대위원인지 헷갈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친이계는 집단행동의 구체적 방법으로 의총 소집 요구와 대규모 회동, 당내 최대 주주가 모이는 ‘주주 회동’ 등의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먼저 의총 소집 요구를 고려 중이다. 2011년 12월 31일 의총장에서 공개적으로 민간 비대위원의 사퇴를 요구한 만큼 이번에도 의총을 통해 이들 위원의 도덕성과 자질론을 따져 묻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이들 비대위원의 인적 쇄신 요구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비대위원이 공천 문제 등을 거론할 자격이 안 된다는 점을 부각하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의총장에 의원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모양새가 우습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대위 활동에 지지를 보내는 친박계 및 쇄신파 인사가 고의적으로 의총에 불참하면 친이계 의원만 모이게 돼 결국 인적 쇄신을 성토하는 자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1월 13일로 예상되는 국회 본회의에 앞서 그날 의총을 열면 친이계가 우려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회동도 적극 검토 중이다. 친이계가 구주류로 몰락했지만 여전히 세(勢)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겠다는 전략이다. 장제원, 원희목 의원 등의 주장이 개인적 의견이 아니라 친이계 전체 의견을 반영한 것이란 점을 부각해 ‘다수 의원의 생각을 무시하지 마라’는 일종의 경고를 보내겠다는 의도다. 이 회동에서 의원들이 뜻을 모으면 집단성명을 통해 비대위와의 결렬 수순 등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박 비대위원장과 이재오 의원, 정몽준 전 대표 등 당내 정치 지분을 가진 주요 인사가 모이는 ‘주주 회동’도 검토 대상 중 하나. 의총 및 대규모 회동보다 주주 회동이 당내에 몰고 올 파장이 훨씬 크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장 의원이 친이계 중에서도 이재오 의원과 가깝다는 점에서 이 의원의 의중이 실린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 의원은 지역구 활동에 전념하느라 장 의원의 최근 발언과 관련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아 회동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친이계 주장에 대한 한나라당 내 분위기는 우호적이지 않다. 비대위가 공천 기준과 절차도 마련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비대위를 공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가 많다. 당내 한 인사는 “하나도 결정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떠드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이 지난 4년간 잘못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인정하는 것 아니냐”며 “공천에 대한 불안감이 당 쇄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친박계·쇄신파 싸늘한 시선
친박계와 쇄신파도 비판적이다. 민간 비대위원의 과거 전력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며, 당내 분란이 증폭되면 국민에게 더 버림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원희룡 전 최고위원은 “작은 흠집으로 문제 삼기보다 쇄신 내용을 갖고 건의해야 한다”며 “두 분을 사퇴시키면 비대위의 동력이 떨어지는데 쇄신이 제대로 되겠느냐. 그렇게 비대위가 해체되면 공멸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친이계의 반격이 성공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현역의원 교체에 무게를 싣는 데다 민간 비대위원도 정권 실세 용퇴론과 관련한 의지를 굽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비대위원장도 자신이 임명한 비대위원의 쇄신에 지지를 보내고 있어 친이계의 반격이 효과를 발휘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친이계 인사는 “공천 기준이 나오면 의총 추인 과정에서 뒤집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비대위에서 인재 영입도 추진하기 때문에 물갈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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