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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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부르는 사회가 한 가족 파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1-12-05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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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압 부르는 사회가 한 가족 파괴
    조명이 켜지면 평범한 중산층 가족의 일상이 그려진다. 그런데 주부 다이애나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 살짝 흥분한 것도 같고, 다른 가족과의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은 것도 같다. 갑자기 그는 바닥에 식빵을 잔뜩 펼쳐놓고 샌드위치를 만든다. 그러나 가족들은 이 행동에 크게 놀라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오랜 기간 조울증과 과대망상증을 앓아왔던 것이다.

    다이애나는 18년 전 아들이 죽은 뒤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아들 게이브는 그의 환상 속에 여전히 살아 있고, 장성한 모습으로 곁을 지키고 있다. 죽은 아들에 대한 그의 집착은 딸 나탈리와 남편 댄의 일상을 고통으로 물들인 지 오래다. 한편 정신과 의사는 다이애나에 대해 “욕구 불만에 찬 주부”라는 소견을 밝힌다. 다이애나에게 아이 망령은 억압의 출구 혹은 현실 도피의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게이브의 망령은 스스로를 ‘희망’ ‘꿈’ ‘절망’ ‘환상’이라고 노래한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의 균열된 이면을 파고든다. 다이애나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조명한다. 댄은 아내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고, 나탈리는 약물을 복용하며 강박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는 현대인에게 낯설지 않은 병적 증상이기도 하다. 인물들의 모습에서 사회적 함의가 좀 더 드러난다면 작품의 깊이가 더해질 것이다.

    이 작품은 다이애나와 가족들을 불행으로 이끈 원인을 사회환경에서 찾는다. 감정을 억압하고 이성적으로 살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게이브의 망령은 ‘억압된 광기’다. 다이애나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정신과 의사가 아이를 잃은 그에게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약물 치료를 강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또 다른 날’를 견디며 고통스러운 현실마저 안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극이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넥스트 투 노멀’은 다른 낙관적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결이 다르다. 순환적 구조가 이러한 주제를 강화한다. 나탈리와 헨리의 관계는 다이애나 부부의 옛날을 떠올리게 한다. 다이애나가 무도회를 회상하는 장면과 나탈리가 무도회에 가는 장면, 다이애나가 죽은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들고 오는 모습, 댄이 나탈리의 생일 케이크를 들고 오는 모습이 오버랩한다. 이때 앞뒤 장면은 각각 ‘위기’와 ‘해결’을 의미하지만, 왠지 불행도 반복될 것 같다는 암시를 준다. 극 말미에 아들의 망령이 다이애나가 아닌 댄 곁을 서성이고, 댄이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한다는 점 역시 순환적이다.



    내용이 다소 어둡지만, 빠른 비트의 록과 팝이 무게감을 없앤다. 이뿐 아니라 블루스, 왈츠, 컨트리송, 발라드 등 각 상황에 어우러지는 음악이 숨 가쁘게 바뀌며 극을 이끈다. 간혹 가사 전달이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이는 라임을 살린 가사에 심리적이고 은유적 표현을 담아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2년 2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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