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식도에서 소장까지
기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우리는 꼭꼭 씹어먹는다.
위를 기념하고
쓸개를 기념하고
무엇이든 녹이는 침을 기념하고
오늘은 누군가의 기일이며
전쟁이 있었던 날,
창밖의 구름은 지난해의 농담을 닮았고
농담에는 피가 부족하다.
어제까지 어머니였던 이가
오늘은 생물이라고 할 수 없고
아이는 하루 종일 거짓말에만 흥미를 느끼고
식물들의 인내심은 놀라워.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 것들에게는 반드시
식도가 있고
외로움이 있을 것이다.
지구의 공전이 계속되자
지난해의 농담들이 사라졌다.
흰 떡 위에 수많은 이빨이 돋아나고
우리는 무엇이든 꼭꼭 씹어먹고
모두들 별의 속도를
천천히 이해했다.
― 이장욱, ‘생년월일’(창비, 2011)에서
기념에는 기대와 ‘희망’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존 레논(John Lennon)이 태어난 날. 서랍을 열고 비틀스의 앨범을 꺼낸다. 내가 그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방식. 일주일에도 몇 번씩 비틀스를 듣는 나에게 오늘은 그다지 특별한 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큰맘 먹고 그를 또 한 번 서랍 속에서 불러낸다.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생일이라는 핑계로 새삼스레 호들갑을 떨고 싶은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 귀를 맡기고 잠깐이라도 세상에서 숨고 싶은 것이다. “식도가 있고/ 외로움이 있”는 동물은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보다 위로가 절실하다.
매일매일은 언제나 누군가의 기념일. 친구들과 둘러앉아 케이크를 자르고 폭죽을 터뜨린 날에 누군가는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울리지도 않는 휴대전화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수술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너와 내가 노을을 보면서 더없이 해맑게 웃고 있을 때 누군가는 참았던 울음을 끝끝내 터뜨릴지도 모른다. 불치병 환자가 더는 “생물”이 아니게 된 날, 옆집에서는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태어날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누군가와 싸늘하게 이별한 날, 앞으로 사랑할 또 다른 누군가를 운명처럼 만날 수도 있다. “지구의 공전”처럼, 우리의 삶은 불가항력처럼 끈질긴 데가 있다.
이렇게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펼쳐진 오늘을, 다가올 내일을 기념한다. 부침이 심했던 올해를 기념하고 여러모로 더 나을 내년을 기념한다. 이처럼 기념에는 다름 아닌 ‘희망’이 있다. 간혹 뒤뚱대긴 하지만 우리 인생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신뢰와 긍정과 기대가 있다. “지난해”가 시답잖은 “농담”처럼 사라질 때, 우리는 보신각종 앞에 모여 앉아 서른세 번의 종소리를 들으며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상상을 하는 것이다. 하늘로 솟구쳐 올라 단박에 별이 되는 것이다. 왠지 올해는 자신이 가장 빛나는 해가 될 것 같다는, 다소 허황된 꿈도 슬며시 품어보는 것이다.
처음으로 생일상을 받던 날을 떠올린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떡”을 집어 먹을 때, 입안에서는 하나 둘 “이빨이 돋아나고” 나는 이빨의 쓰임새에 대해 몸으로 배웠다. 살아가는 법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익히던 날이었다. 옹알이를 하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엄마”라는 단어를 나도 모르게 입 밖에 내버리고, 그 입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은 나 자신을 둘로 만들고, 그렇게 기념할 것이 또 하나 늘어나고.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바로 그 “흰 떡”을 먹으며, 흰 밥을 먹으며 살아간다. 나를 둘러싼 것에 나만의 이빨 자국을 내며. “꼭꼭 씹어먹”을 것은 사방에 넘쳐나지만, 우리의 “인내심”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우리 인생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기꺼이 나이를 먹고 만남과 이별을 반복할 것이다. 마침내 “별의 속도”를 이해할 때까지, 멀리 있는 것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깊어질 때까지.
*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식도에서 소장까지
기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우리는 꼭꼭 씹어먹는다.
위를 기념하고
쓸개를 기념하고
무엇이든 녹이는 침을 기념하고
오늘은 누군가의 기일이며
전쟁이 있었던 날,
창밖의 구름은 지난해의 농담을 닮았고
농담에는 피가 부족하다.
어제까지 어머니였던 이가
오늘은 생물이라고 할 수 없고
아이는 하루 종일 거짓말에만 흥미를 느끼고
식물들의 인내심은 놀라워.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 것들에게는 반드시
식도가 있고
외로움이 있을 것이다.
지구의 공전이 계속되자
지난해의 농담들이 사라졌다.
흰 떡 위에 수많은 이빨이 돋아나고
우리는 무엇이든 꼭꼭 씹어먹고
모두들 별의 속도를
천천히 이해했다.
― 이장욱, ‘생년월일’(창비, 2011)에서
기념에는 기대와 ‘희망’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존 레논(John Lennon)이 태어난 날. 서랍을 열고 비틀스의 앨범을 꺼낸다. 내가 그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방식. 일주일에도 몇 번씩 비틀스를 듣는 나에게 오늘은 그다지 특별한 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큰맘 먹고 그를 또 한 번 서랍 속에서 불러낸다.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생일이라는 핑계로 새삼스레 호들갑을 떨고 싶은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 귀를 맡기고 잠깐이라도 세상에서 숨고 싶은 것이다. “식도가 있고/ 외로움이 있”는 동물은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보다 위로가 절실하다.
매일매일은 언제나 누군가의 기념일. 친구들과 둘러앉아 케이크를 자르고 폭죽을 터뜨린 날에 누군가는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울리지도 않는 휴대전화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수술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너와 내가 노을을 보면서 더없이 해맑게 웃고 있을 때 누군가는 참았던 울음을 끝끝내 터뜨릴지도 모른다. 불치병 환자가 더는 “생물”이 아니게 된 날, 옆집에서는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태어날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누군가와 싸늘하게 이별한 날, 앞으로 사랑할 또 다른 누군가를 운명처럼 만날 수도 있다. “지구의 공전”처럼, 우리의 삶은 불가항력처럼 끈질긴 데가 있다.
이렇게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펼쳐진 오늘을, 다가올 내일을 기념한다. 부침이 심했던 올해를 기념하고 여러모로 더 나을 내년을 기념한다. 이처럼 기념에는 다름 아닌 ‘희망’이 있다. 간혹 뒤뚱대긴 하지만 우리 인생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신뢰와 긍정과 기대가 있다. “지난해”가 시답잖은 “농담”처럼 사라질 때, 우리는 보신각종 앞에 모여 앉아 서른세 번의 종소리를 들으며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상상을 하는 것이다. 하늘로 솟구쳐 올라 단박에 별이 되는 것이다. 왠지 올해는 자신이 가장 빛나는 해가 될 것 같다는, 다소 허황된 꿈도 슬며시 품어보는 것이다.
처음으로 생일상을 받던 날을 떠올린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떡”을 집어 먹을 때, 입안에서는 하나 둘 “이빨이 돋아나고” 나는 이빨의 쓰임새에 대해 몸으로 배웠다. 살아가는 법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익히던 날이었다. 옹알이를 하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엄마”라는 단어를 나도 모르게 입 밖에 내버리고, 그 입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은 나 자신을 둘로 만들고, 그렇게 기념할 것이 또 하나 늘어나고.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바로 그 “흰 떡”을 먹으며, 흰 밥을 먹으며 살아간다. 나를 둘러싼 것에 나만의 이빨 자국을 내며. “꼭꼭 씹어먹”을 것은 사방에 넘쳐나지만, 우리의 “인내심”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우리 인생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기꺼이 나이를 먹고 만남과 이별을 반복할 것이다. 마침내 “별의 속도”를 이해할 때까지, 멀리 있는 것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깊어질 때까지.
*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