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대한민국에서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갇혔고, 업무 공백이 생겼다. 병원에선 검사와 수술을 하지 못했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를 방문해 호되게 질타했다. 대규모 정전사태 당시 행정안전부 재난위기종합상황실은 지식경제부나 한전으로부터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고 뉴스를 보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그 원인을 둘러싸고 전력거래소의 허위보고 때문인지, 아니면 지식경제부의 위기대처 능력 부족 때문인지 논란도 벌어졌다.
나라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는 중요한 상황을 관계부처에 알리지도 않고, 허위보고를 의심할 정도였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내에서 도대체 ‘소통(communication)’이 이뤄지고는 있단 말인가. 항상 되풀이되는 대형사고 이면에는 이른바 소통의 부재가 도사리고 있다.
현대 사회 발전의 필수 요소 ‘소통’
김무곤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원장은 몇 년 전 NQ(Network Quotient·공존지수)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앞으로는 NQ가 높은 사람이 IQ(지능지수)나 EQ(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을 제치고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소통하며 협력하는 사람이 잘 살게 된다는 얘기다.
소통은 가족 내에서도 무척 중요하다.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는 마음이 아픈 청소년을 많이 만난다. 비행 청소년, 학교 부적응 학생, 불안과 강박관념에 시달리거나 우울과 무기력감에 괴로워하는 아이…. 이와 같이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모와의 소통 부재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할라치면 부모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아니, 제가 아이와 대화를 나누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세요? 아이가 저와 대화를 나누려고 하질 않아요. 선생님이 저 대신 아이 속마음을 좀 알아봐주세요.”
필자는 마치 탐정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아이에게 접근한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한다”는 말 한 마디를 던지면 아이는 애기를 시작한다.
“부모님은 저를 이해해주지 않아요. 만날 뭐 하라고 지시만 하죠. 제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말하려 해도 들어주질 않아요.”
말하는 것과 듣는 것 모두 중요
이 대목이다. 아이와 부모의 소통이 막힌 이유는 상호 존중의 결핍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한다. 정답을 제시한 채 따르기를 요구한다. 아이는 부모의 올바른 말씀을 듣기보다 자기 마음을 부모가 알아주길 바란다. 소통을 잘하려면 일방향의 권위주의적 방식이 아닌, 쌍방향의 민주적 수평방식의 대화가 필요하다.
소통은 말하는 것과 듣는 것 둘 다 중요하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견과 지식을 열심히 말하려 든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지위, 계급, 성별 차이 등이 영향을 미치기 쉽다. 말하는 사람끼리 누가 더 강한 파워를 가졌는지 경쟁이 벌어진다.
소통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듣기’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먼저 들어야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하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다’가 영어로는 ‘understand’다. ‘under(아래에)’와 ‘stand(서다)’의 합성어인 ‘understand’는 다시 말해 ‘아래에 서다’라는 의미다. 즉, 아래에 서서 들어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낮추고 열린 귀로 듣는 배려의 자세가 소통의 기본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들면, 어느 틈에 자기만 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선뜻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려 하지 않은 채 우월한 사람의 지시를 따르거나 비위를 맞추려 애쓴다. 그러나 앞으로의 소통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서로 존중하면서 듣고 말하는 소통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할 것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소통이 우리 삶을 급속도로 변화시켰다. 소통이 발전하면 탐욕과 악행이 숨을 곳이 없다. 소통으로 다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 예전 같으면 쉬쉬 하면서 덮었을 비리와 문제점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누구나 알게 됐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훌륭한 사람과 선행이 속속들이 알려진다. 소통 수단이 발전한 덕분이지만, 누구에게나 소통 욕구가 있기에 자신의 관심을 끈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자 하는 데서 비롯한 일이다.
권력이 소통을 통제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럴 만한 힘도 없다. 권력을 갖고자 하는 사람은 이제 소통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소아정신과 질환 가운데 ‘의사소통장애’라는 것이 있다. 언어 발달이 더뎌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 표현하지 못하는 병이다. 대개 크면서 많이 좋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병적인 상태로 남기도 한다. 의사소통장애는 학습장애, 사회성 부족, 대인관계 문제 같은 후유증을 가져온다. 국가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 가운데 혹시 의사소통장애 상태에 있는 분은 없는지 살펴보자.
나라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는 중요한 상황을 관계부처에 알리지도 않고, 허위보고를 의심할 정도였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내에서 도대체 ‘소통(communication)’이 이뤄지고는 있단 말인가. 항상 되풀이되는 대형사고 이면에는 이른바 소통의 부재가 도사리고 있다.
현대 사회 발전의 필수 요소 ‘소통’
김무곤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원장은 몇 년 전 NQ(Network Quotient·공존지수)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앞으로는 NQ가 높은 사람이 IQ(지능지수)나 EQ(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을 제치고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소통하며 협력하는 사람이 잘 살게 된다는 얘기다.
소통은 가족 내에서도 무척 중요하다.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는 마음이 아픈 청소년을 많이 만난다. 비행 청소년, 학교 부적응 학생, 불안과 강박관념에 시달리거나 우울과 무기력감에 괴로워하는 아이…. 이와 같이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모와의 소통 부재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할라치면 부모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9월 15일 오후 전국적으로 정전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관 건물에서도 엘리베이터가 멈춰서는 등큰 혼란이 벌어졌다.
필자는 마치 탐정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아이에게 접근한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한다”는 말 한 마디를 던지면 아이는 애기를 시작한다.
“부모님은 저를 이해해주지 않아요. 만날 뭐 하라고 지시만 하죠. 제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말하려 해도 들어주질 않아요.”
말하는 것과 듣는 것 모두 중요
이 대목이다. 아이와 부모의 소통이 막힌 이유는 상호 존중의 결핍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한다. 정답을 제시한 채 따르기를 요구한다. 아이는 부모의 올바른 말씀을 듣기보다 자기 마음을 부모가 알아주길 바란다. 소통을 잘하려면 일방향의 권위주의적 방식이 아닌, 쌍방향의 민주적 수평방식의 대화가 필요하다.
소통은 말하는 것과 듣는 것 둘 다 중요하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견과 지식을 열심히 말하려 든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지위, 계급, 성별 차이 등이 영향을 미치기 쉽다. 말하는 사람끼리 누가 더 강한 파워를 가졌는지 경쟁이 벌어진다.
소통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듣기’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먼저 들어야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하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다’가 영어로는 ‘understand’다. ‘under(아래에)’와 ‘stand(서다)’의 합성어인 ‘understand’는 다시 말해 ‘아래에 서다’라는 의미다. 즉, 아래에 서서 들어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낮추고 열린 귀로 듣는 배려의 자세가 소통의 기본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들면, 어느 틈에 자기만 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선뜻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려 하지 않은 채 우월한 사람의 지시를 따르거나 비위를 맞추려 애쓴다. 그러나 앞으로의 소통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서로 존중하면서 듣고 말하는 소통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할 것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소통이 우리 삶을 급속도로 변화시켰다. 소통이 발전하면 탐욕과 악행이 숨을 곳이 없다. 소통으로 다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 예전 같으면 쉬쉬 하면서 덮었을 비리와 문제점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누구나 알게 됐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훌륭한 사람과 선행이 속속들이 알려진다. 소통 수단이 발전한 덕분이지만, 누구에게나 소통 욕구가 있기에 자신의 관심을 끈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자 하는 데서 비롯한 일이다.
권력이 소통을 통제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럴 만한 힘도 없다. 권력을 갖고자 하는 사람은 이제 소통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소아정신과 질환 가운데 ‘의사소통장애’라는 것이 있다. 언어 발달이 더뎌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 표현하지 못하는 병이다. 대개 크면서 많이 좋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병적인 상태로 남기도 한다. 의사소통장애는 학습장애, 사회성 부족, 대인관계 문제 같은 후유증을 가져온다. 국가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 가운데 혹시 의사소통장애 상태에 있는 분은 없는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