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보다 자존심을 택한 김태균(오른쪽)은 한국 복귀를, 지난해 7관왕을 독식한 이대호(왼쪽)는 일본 진출을 꾀하면서 벌써부터 스토브리그를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이후 추신수는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김태균과 이대호는 각각 한화와 롯데에 입단해 한국프로야구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두 동갑내기의 운명은 이후 크게 엇갈렸다. 김태균은 2001년 신인왕을 차지하며 첫해부터 주목을 끌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태균은 지난해 지바롯데 4번 타자로 타율 0.268(527타수 141안타), 21홈런, 92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프로야구 출신 타자 가운데 일본 진출 첫해에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며 연착륙에 성공했다.
그러나 올 시즌엔 불운이 계속됐다. 6월 16일 두 번째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뒤 ‘용병’으로선 이례적으로 6월 23일 한국에 들어와 부상 치료에 매달렸다. 그러나 허리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절친’인 이대호와의 전화통화에서 “병원 네 군데를 다닌다”며 하소연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7월 돌연 지바롯데에서 스스로 퇴단한 뒤 내년 시즌 한국 무대 복귀를 선언했다. 김태균의 계약 해지 의사를 처음 접한 지바롯데 국제편성담당 이문한 부장은 “돈을 받으면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마음이 불편한 듯했다. 허리 부상을 치료한다고 해도 새로 몸을 만들고 타격감을 찾으려면 어차피 올 시즌에는 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며 스스로 잔여연봉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고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한국 무대 컴백한 태균 어디로?
“처음에 나도 만류했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 깊이 생각한 듯했다. 가족과도 상의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구단 사장, 단장과 통화했는데 구단에선 ‘선수는 언제든 부상을 당할 수 있다. 허리 부상을 잘 치료해 내년 시즌에 잘하면 된다’고 말렸다. 그러나 김태균의 의사가 너무 확고해 구단도 선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론을 내렸다.”
김태균은 2010년 지바롯데와 계약금 1억 엔과 연봉 1억5000만 엔, 그리고 매년 인센티브 5000만 엔의 조건에 계약했다. 총 7억 엔(당시 환율로 90억 원)의 조건이었다. 그는 지난해 계약금 1억 엔, 연봉 1억5000만 엔, 인센티브 5000만 엔을 받았다. 김태균은 계약해지를 원하면서 잔여연봉을 포기하려 했지만, 일단 지바롯데는 올 시즌 연봉 1억5000만 엔은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더라도 김태균은 계약 조건 가운데 최대 2억5000만 엔(34억7500만 원)을 포기한 셈이다.
김태균은 큰 금액을 포기하며 국내 복귀를 선언했지만 그가 가진 상품성이 워낙 탁월해 벌써부터 스토브리그를 달굴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최근 그의 신분에 대해 “올 시즌 후 김태균과의 프리에이전트(FA) 협상 우선권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전 소속팀 한화는 물론 김태균을 잡으려는 몇몇 구단의 치열한 영입경쟁이 불가피해졌다. 2009년 말 한화는 그를 잡으려고 4년간 70억~80억 원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호, 일본 무대 도전장 던지나
김태균과 달리 이대호는 입단 초기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2004년 이후 뒤늦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대호는 한국 프로야구 전대미문의 타격 7관왕이라는 새 역사를 썼고, 9연속 경기 홈런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김태균에 비해 2년 늦게 FA 자격을 얻는 이대호는 2012년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대호는 시즌 후 행보에 대해 말을 아끼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일본에 진출하겠다는 속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헐값에라도 가겠다는 마음은 아니다. 최소한 ‘김태균 급’으로 자기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팀이 나타나면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 남을 공산이 크다. 만일 한국에 남는다면 ‘똑같은 조건’일 경우 롯데에 잔류하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이 나타나면 이적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올 초 KBO 연봉조정신청에서 구단에 패한 뒤 일찌감치 결심한 내용이다.
이대호는 “지금은 시즌 중이다. 롯데 유니폼을 입은 지금은 팀만 생각하겠다”며 아직 일본행을 도울 에이전트도 선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일본의 몇몇 구단이 그의 영입을 검토하기 시작하는 등 일본 진출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이 많다. 올 초부터 한신이 일찌감치 그의 영입에 관심 있음을 공공연히 밝힌 가운데, 라쿠텐과 오릭스도 그의 영입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균의 이탈로 오른손 거포 부재라는 숙제를 안은 지바롯데 역시 이대호 영입의 잠재적인 후보 구단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대호의 일본 무대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130kg이 넘는 거구인 그는 주루 플레이에 약점이 있다. 펜스를 맞히는 큰 타구를 날리고도 종종 1루에 머물 수밖에 없고, 사실상 내야 안타를 만들기 힘들다. 이는 이대호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 그러나 한때 3루를 봤을 정도로 유연한 수비 능력을 갖춰 1루 수비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무엇보다 주루 약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빼어난 타격 능력을 갖추고 있다. 2006년 생애 첫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던 이대호는 지난해 7관왕에 이어 올해도 또 한 번 타율, 홈런, 타점 등 다관왕에 도전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 몸담았다 1년 만에 돌아와 올 시즌 KIA에서 뛰는 이범호는 이대호에 대해 “정확한 콘택트 능력과 함께 홈런을 생산할 수 있는 이상적인 스윙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서 “일본에도 대호처럼 치는 타자는 없다. 타격 능력만 놓고 보면 일본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홈런과 안타를 골고루 치고 타점 능력까지 좋은 타자는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약점이 없는 타자”라고 평가했다.
이대호는 그의 바람대로 한국을 떠나 일본에 둥지를 틀 수 있을까. 김태균은 내년 시즌 국내 어느 팀에 몸담게 될까. 이대호의 일본 진출이 무산될 경우, 둘은 한국에서 FA 계약을 놓고 몸값 자존심 대결을 펼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올 스토브리그에서 뜨거운 관심을 끌 ‘1982년 동갑내기 오른손 두 거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