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노트(Blue Note). 흑인음악에 주로 쓰는 블루스 음계만의 독특한 음을 말합니다. 흔히 도레미파솔라시도 가운데 미와 시를 반음 내린 걸로 설명하죠. 로큰롤이나 리듬앤드블루스를 들을 때 장조도 단조도 아닌 묘한 느낌이 난다면 십중팔구 이 음을 사용한 경우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울적하고, 어딘지 모르게 자유로운, 뭔가 틀에서 벗어난 것 같은 소리 말입니다.
뜬금없이 화성악 이론을 떠올린 건 주말에 본 ‘나는 가수다’ 때문입니다. 박정현이 부른 ‘우연히’는 블루노트가 그득한 교과서적인 블루스 곡이죠. 문제는 이 블루노트가 정확히 반음을 내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4분의 1과 반음 사이 어디쯤,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그 어딘가가 바로 블루노트입니다.
박정현은 이 블루노트를 내는 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가수입니다. 같은 무대에 서는 김조한도 마찬가지죠. 이들의 애드리브가 ‘원단’ 흑인음악과 훨씬 비슷하게 들리는 것도 본능적으로 이 음을 미묘하게 걸치며 블루스 음계 위를 자유자재로 뛰어다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블루스 음계를 국악의 5음계에 접목한 신중현의 ‘미인’이나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는 김범수나 윤도현이 불러야 제맛이 날 겁니다.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박정현과 김조한이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는 사실과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라는 건 어쨌든 감성이고, 성장기에 그런 음악, 그런 소리를 얼마나 듣고 따라 불렀는지가 엄청난 영향을 끼치죠. 이건 흡사 영어의 R 발음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영어 공부를 아무리 해봐야 미묘한 차이를 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어떤 소리가 더 좋은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입니다만, 한국 대중음악이 미국 흑인음악을 상당 부분 차용한 게 현실이고 보면 이렇듯 교포 출신 가수들이 좀 더 ‘잘나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합니다. 국악보다 서양음악을 더 즐기는 대중의 취향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지만 왠지 좀 서글프다 싶지 않으십니까. 블루노트도 R 발음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저는, TV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넋두리입니다.
뜬금없이 화성악 이론을 떠올린 건 주말에 본 ‘나는 가수다’ 때문입니다. 박정현이 부른 ‘우연히’는 블루노트가 그득한 교과서적인 블루스 곡이죠. 문제는 이 블루노트가 정확히 반음을 내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4분의 1과 반음 사이 어디쯤,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그 어딘가가 바로 블루노트입니다.
박정현은 이 블루노트를 내는 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가수입니다. 같은 무대에 서는 김조한도 마찬가지죠. 이들의 애드리브가 ‘원단’ 흑인음악과 훨씬 비슷하게 들리는 것도 본능적으로 이 음을 미묘하게 걸치며 블루스 음계 위를 자유자재로 뛰어다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블루스 음계를 국악의 5음계에 접목한 신중현의 ‘미인’이나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는 김범수나 윤도현이 불러야 제맛이 날 겁니다.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박정현과 김조한이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는 사실과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라는 건 어쨌든 감성이고, 성장기에 그런 음악, 그런 소리를 얼마나 듣고 따라 불렀는지가 엄청난 영향을 끼치죠. 이건 흡사 영어의 R 발음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영어 공부를 아무리 해봐야 미묘한 차이를 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어떤 소리가 더 좋은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입니다만, 한국 대중음악이 미국 흑인음악을 상당 부분 차용한 게 현실이고 보면 이렇듯 교포 출신 가수들이 좀 더 ‘잘나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합니다. 국악보다 서양음악을 더 즐기는 대중의 취향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지만 왠지 좀 서글프다 싶지 않으십니까. 블루노트도 R 발음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저는, TV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넋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