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68) 씨
경기 이천 출신. 현재 서울 강북구 창동 거주. 경찰공무원으로 30년간 근무하고, 2001년 정년퇴직. 아내, 미혼인 아들과 딸.
김원식(67) 씨
경남 거제 출신. 현재 경기 용인시 죽전 거주. A은행에서 28년간 근무하다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 아내와 아들 2명. 아들 1명은 결혼.
전성민(67) 씨
서울 중구 필동 출신. 현재 서울 노원구 하계동 거주. 중소기업에서 30년간 근무하다 2002년 정년퇴직. 아내와 미혼인 아들 1명.
곽삼덕(66) 씨
전북 군산 출신. 현재 서울 도봉구 방학동 거주.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21년간 근무하다 1998년 명예퇴직. 남편 사별. 아들 2명 모두 미혼.
1970~80년대 먹고사느라 ‘은퇴설계’라는 말조차 모른 채 젊은 시절을 보낸 퇴직 10년 차들이 만나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진 왼쪽부터 장기수, 김원식, 곽삼덕, 전성민 씨.
이들이 젊은 시절을 보낸 1970~80년대는 먹고살기 바쁜 시대였다. 은퇴준비는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은퇴를 앞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은퇴설계’라는 단어는 생소했다. 대부분 준비 없이 노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또 이들의 고민은 뭘까.
‘주간동아’는 한국은퇴자협회의 도움을 받아 퇴직한 지 10년 이상 된 60대 중·후반 시니어 4명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봄비가 내리던 4월 18일 늦은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한 중식당에 모인 이들은 술이 한두 잔씩 들어가자 조금씩 속내를 털어놨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지
▼ 요즘 어떻게들 지내시나요.
곽삼덕(이하 곽) : 저는 상담원 일을 하고 있어요. 2009년부터 복지관에서 청소년 성상담을, 노인대학에서는 노인 성상담과 성교육을 하고 있죠.
장기수(이하 장) : 한 달에 보름 정도는 친구들을 만나고 봉사활동을 합니다. 주말에는 가족과 등산도 가고요. 그게 건강을 위해서도 좋으니까요.
김원식(이하 김) : 2년 전부터 한국은퇴자협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하는 일은 없어요.
전성민(이하 전) : 저도 특별히 하는 것이 없어요. 직장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은퇴자협회에서 봉사하는 게 전부예요.
▼ 수입은 좀 있습니까.
곽 : 성상담과 성교육을 하면서 용돈 정도 벌어요. 1998년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하면서 일시불로 받은 연금을 남편 사업에 모두 투자했는데 결국 부도가 났어요. 남편은 그 사업을 3~4년간 끌고 가다 뇌출혈로 쓰러져 5년간 병원에서 생활하다 죽었죠. 너무 힘들었어요.
김 : 저도 수입이 없어요. 퇴직한 지 13년 흘렀는데, 그동안 퇴직금을 곶감 빼먹듯이 빼 쓰며 살았어요. 국민연금이라고 해봤자 50만 원 정도 받아요. 그 돈으로 겨우 점심값 정도를 해결하죠. 그러니 생활은 말이 아니에요. 이제 경비라도 서야 할 지경이에요.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죠. 90세, 100세까지 산다는데 아이들에게 손 벌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에요.
장 : 저는 먹고사는 데 큰 걱정은 없어요. 연금으로 월 250만~300만 원 나오고, 상가 임대수입이 조금 있습니다.
전 : 저도 동대문 쪽에 상가건물이 있는데, 그 임대수입과 국민연금 78만 원 정도를 합치면 매달 350만 원 정도가 들어옵니다. 아내는 서울 강남 쪽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고요. 아들이 이제 대학 3학년이지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어요.
아내와 사이 진짜 나빠져
▼ 자녀가 직장에 다니면 도움을 조금 받을 수도 있지 않나요.
김 : 제가 장남인데, 부모님을 30년 이상 모셨어요. 거기에 아이들 키워야지, 집 사야지…. 그동안 정말 악을 쓰며 살았죠.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절대 기대하지 않아요. 부모 모시고 사는 것은 우리 세대로 끝이에요.
곽 : 그래서 우리가 낀 세대인 거예요. 우리는 (부모를) 모셨지만, 아이들한테는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 은퇴 이후 부인이나 자녀와의 관계가 대부분 나빠진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김 : 아휴~, 말로 형언할 수 없죠. 그걸 다 풀면 책을 몇 권 쓰고도 남을 정도예요. 특히 아내와 사이가 정말 나빠져요.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한 2~3%나 될까. 대부분의 아내가 남편이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해요. 옛날에 남편이 출근한 뒤에 자유롭게 하고 다니던 것이 모두 들통 나거든. 또 남편이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도 싫고. 남편이 ‘지금 뭐하는 거야?’ ‘당신 어디 가?’ ‘왜 이렇게 늦게 와?’ 그러면 아내는 그걸 일일이 대답하기가 골치 아프거든요. 답변하기 싫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집에 오는 전화를 잘못 받았다가 아내에게 혼난 이후 집 전화는 일절 손도 안 댄다고 하더라고요.
장 : 저는 안 그래요. 달라질 게 뭐 있어야지. 퇴직한 후에도 한 달에 보름 이상 밖에 나가거든요. 옛날에는 일 때문에 집에 거의 못 들어왔는데, 요즘은 100% 집에 들어오니까 오히려 아내가 좋다고 그래요.
전 : 저 같은 경우는 직장생활을 할 때, 또 퇴직하고 자영업을 할 때까지는 부부 사이가 좋았어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였죠. 여행도 다니고, 심지어 일요일에는 마트도 함께 가고.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예요. 내가 집에서 놀고 있어서 그런지, 함께 어디 가는 걸 싫어해요. 아이도 엄마 편만 들어요. 아빠와는 세대 차이가 난다고 별로 말도 안 하고. 그러다 보니 집에서 거의 혼자 생활해요. 평일에는 집에서 혼자 신문이나 TV 보고, 주말에는 식구들을 피해 배낭을 메고 산에 가요. 엊그제 일요일에도 불암산에 다녀왔어요. 지금은 집에 있기가 싫어요. 식구들도 나와 마주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낮에는 마주칠 일이 없어요. 저녁에 마주치는데, 그러면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요. 거실에서 TV라도 보면서 같이 앉아 있지도 않아요. 아이는 자기 방에서 책 보고 컴퓨터 하고, 아내는 안방에서 그날 일 정리하고 TV 보고. 식구가 셋인데, 각자 방에서 따로 지내요. 그렇게 달라지더라고요. 은퇴 후에도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김 : 나하고 똑같네. 나는 아내와 각방 쓴 지 4~5년 됐는데….
곽 : 이런, 두 분 다 저한테 성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네요(웃음).
▼ 은퇴 후 아내와 안 좋아진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 : 자산관리 권리를 넘겨준 게 잘못 같아요. 대부분의 아내는 남편 월급으로 한 푼 두 푼 저축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 돈으로 집 사서 집값이 조금 오르면 자기가 다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야~, 참. 그다음부터 남편을 우습게 보는 거죠. ‘그동안 월급 얼마나 갖다 줬어. 2년 전에 집 산 게 1억 원 남았어’라면서 마치 남편을 세상을 잘못 살아온 사람처럼 몰아버리거든. 자기가 돈 번 것은 동네방네, 친척들에게 다 자랑하면서. 그때 속으로 땅을 치며 깨달았죠. 자산관리를 다 맡기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장 선생은 샘물(수입)이 계속 나오잖아요. 그러니 아내가 잘 모셔야지.
곽삼덕 씨
곽 : 네, 동의해요. 그동안 수백 명을 상담해봤는데 남편들이 불쌍한 것 같아요. 경제권을 왜 아내에게 다 맡기는지 모르겠어요. 있을 때는 맡겨도 되지만, 없을 때는 자기가 쓸 돈은 남겨두고 맡겨야지. 노인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인데, ‘3대 바보 노인’이 있다고 해요. 친구가 만나자는데 손자 봐야 한다고 못 나가는 사람이 첫 번째 바보고, 두 번째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식에게 자기 재산을 다 상속해주는 사람, 세 번째 바보가 결혼한 아들, 딸 식구가 오면 잠을 재워야 하니까 큰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람이래요. 자식이나 며느리는 부모 집에서 자고 싶지 않는데, 부모만 그 속을 모르고 넓은 집 유지하면서 재워주려고 하는 거죠. 남편이 아내에게 재산권을 다 맡기는 것은 여기서 말한 두 번째 바보와 비슷해요.
김 : 맞아요. 그래서 남편들은 사이드 주머니(비자금 통장)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아내가 비토를 놓을 때 ‘그래 마음대로 해’라는 자신감이 생기죠. 저처럼 빈털터리는 아무 말도 못해요. 기자 양반, 아직 먼 일인 것 같지? 얼마 남지 않았어요. 20~30년 금방 갑니다. 내가 은행에 취직했을 때, 아버지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봉급쟁이는 봉급 몇 번 받으면 끝난다’고.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은퇴하고 이런 고생을 해보니까 그 속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겠더라고요. 직장을 그만둘 때에 대비하고, 또 사이드 주머니라도 챙기라는 뜻이 담겨 있었던 거죠.
직장 선후배 2~3년 지나면 안 봐
장기수 씨
장 : 과거 직장동료나 선후배와는 관계 유지가 잘 안 돼요. 길어야 2~3년 이어지나. 대부분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을 중심으로 한 친목회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만든 모임에 자주 나가죠. 모임이 10여 개 되니까 한 달에 보름 이상은 약속이 있는 셈이에요. 노후 대비 ‘4대 조건’이라는 게 있어요. 첫째, 마누라가 있어야 한다. 둘째, 돈이 있어야 한다. 셋째, 친구가 있어야 한다. 넷째,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곽 : 그건 남자들 얘기고, 여자에게는 첫째가 재산이에요. 둘째가 건강, 셋째가 남자친구, 넷째가 강아지. 농담이지만, 남편은 그중에 없어요(웃음).
전 : 저는 모임이 4개 정도 되는데, 그런 모임에 나가는 것도 경제적으로 뒷받침돼야 가능해요. 회비는 2만~3만 원인데, 문제는 회원들 애경사죠. 시간적인 부담보다 금전적인 부담이 훨씬 커요.
전성민 씨
김 : 준비한 게 없어요. 우리 세대는 일 속에 파묻혀 살았거든요. 공무원이든, 군인이든, 회사원이든 다 마찬가지예요. 봉급이 적어도 직장생활을 한다는 자체가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죠. 직장에 취직하는 것만으로도 높게 평가받았거든요. 오로지 일에 매진하면서 살았어요. 일이 많을 때는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죠. 그러니 무슨 은퇴준비를 할 여유가 있었겠어요.
전 : 옛날에는 은퇴라는 용어도 아예 없었어요. 그러니 은퇴설계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았죠.
장 : 우리 때는 하루하루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어요. 은퇴설계나 은퇴 후 생활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었죠. 물론 정보도 없었고요. 그때에 비하면 요즘 세대는 행복한 거예요. 정보도 많고. 그런데도 은퇴설계를 안 하는 사람은 ‘막가는’ 인생을 사는 거죠.
▼ 만일 지금 30~40대 직장인이라면 은퇴준비를 어떻게 하시겠어요.
김원식 씨
장 : 저는 공부를 더 해서 제대로 된 자격증을 하나 따고 싶어요. 나중에 그 자격증을 활용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싶거든요. 그 대가로 얼마의 수입이 생기면 더 좋고요. 지금 내가 가진 자격증이라는 게 운전면허증 하나밖에 없어요. 아직 은퇴 전인 세대는 늦지 않았어요. 그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반드시 계획을 세워서 하라고. 그래야 미래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