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기자, 10년 뒤 모습 상상해봤나요?”
4월 12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호텔 아리아에서 만난 오종남(59) 박사는 ‘노후행복론’을 기대했던 기자에게 ‘인생설계론’이라는 예상 밖 화두를 던지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 박사는 대통령비서실 재정경제비서관, 통계청장,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를 역임한 대표적 엘리트 경제 관료. 현재도 서울대 과학기술혁신최고과정 주임교수,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삼성증권과 한국GM의 사외이사로서 현역 때 못지않은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을 맡았다. 화려한 이력 한편으로 그는 ‘은퇴 후 30년을 준비하라’를 내는 등 노후의 ‘참행복’을 전파하는 ‘행복론 전도사’로도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설계하는 습관 몸에 배야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0세 정도지만 매년 0.5세씩 길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현재 35세인 사람의 예상수명은 100세가 될 것이다. 남은 100세까지의 긴 시간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은 채 50대 후반 혹은 60대 초반 은퇴를 맞이한다면? 남은 40여 년의 시간을 무위도식하며 허송세월하게 된다. 오 박사가 은퇴 이후에 대비해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5월 초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4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My Life Plan in 2100’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합니다. 강연회에 오는 학생이 대부분 20대 초반이니 그들이 2100년까지 사는 것은 결코 꿈같은 소리가 아니죠. 과연 100세가 됐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그려보라는 것이 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입니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벌써 은퇴한 50~60대가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계획 없이 사회에 나온 만큼 “국어와 산수라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웬 국어와 산수?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재미있는 설명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국어와 산수 시간에 배운 ‘주제’와 ‘분수’를 알라는 겁니다(웃음). 현실은 냉엄하기 때문이죠. 일단 지출을 줄여야 해요. 사업이나 주식투자는 말리고 싶습니다.”
그가 젊은이에게 지금부터라도 인생계획을 세우라고 말하는 것도 자기 세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 당장 직장에 잘 다닌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에 안주하고 만다. 그럴 때면 오 박사는 10~20년, 나아가 60~70년 뒤 자기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 고개를 저을 것이다.
결국 노후행복도 젊은 시절 인생계획을 얼마나 철저히 세우고 실천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는 인생을 설계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인생설계 예찬론자’다. 이렇게 된 데는 미국 유학시절의 경험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82년 경제학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MBA를 들었습니다. 그때 전사관리(Total Enterprise Management)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마지막 수업과제가 ‘20년 후 자기 모습을 그려오라’는 것이었죠. 당시 제가 제출한 내용이 좋다고 해서 발표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때 그렸던 저의 모습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큰 동기가 됐습니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단순히 거창한 목표를 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에 이르는 긴 삶의 궤적을 어떻게 걸어갈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해야 하며, 일 년 동안 무엇을 해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이다.
그는 인생계획을 세우면서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평생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은퇴준비는 없다.
자신이 그린 인생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평생직업을 찾게 되는 ‘선택의 순간’이 있다. 그러나 평생직업과 현재 직장이 다를 때 갈등이 생긴다. 이때 그는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하라고 말한다.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른 만큼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밤을 새우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지를 되새겨본다. 만일 그런 일을 발견했다면 과감히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오 박사의 주장이다.
차별화한 자기만의 브랜드
많은 사람이 선택의 순간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는 데 심정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행여 소득이 줄어들거나 미래가 불확실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오 박사는 평생직업을 찾았는데 현실적인 이유로 꺼려진다면, 자신이 처한 수준에 맞게 생활하면 된다고 명쾌하게 결론 내린다.
“와인 마시던 거 소주 마시면 됩니다. 예전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고 했지만, 요즘에는 굶어 죽진 않습니다. 밥만 먹고 사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평생직업을 찾으려고 현직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종사하는 일이 천직일 수도 있다. 다만 그때도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브랜드의 중요성은 삼성, LG, 애플, 구글 같은 기업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 친구가 없으면 회사의 중요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같은 식이죠. 외국어 하면 누구, 네트워크 하면 누구 이런 식으로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지녀야 자연스레 경쟁력도 높아집니다.”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자기 브랜드를 높이려면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것이 평생학습이다. 학교에서 배우든, 스스로 공부하든 타고난 소질을 개발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계획한 대로 부지런히 살면서 은퇴 후 삶을 맞이한다면 그때는 ‘Not for a living. But for fun’, 즉 생계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생을 이모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온대 기후대에서는 이모작으로 여름에 벼농사, 겨울에 보리농사를 짓죠. 은퇴 전 삶이 벼농사였다면, 은퇴 이후 삶은 보리농사입니다. 은퇴 이후에도 이전과 똑같이 활동하려 든다면 겨울에도 벼농사를 짓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30대 기자에게 오 박사는 2시간 남짓 여러 화두를 던졌다.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와서인지 그의 말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10년 뒤, 아니 50년 뒤 기자의 모습은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 즈음 그가 결정타를 날렸다.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과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는 사람은 10년 뒤 반드시 차이가 납니다. 매순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길 바랍니다.”
4월 12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호텔 아리아에서 만난 오종남(59) 박사는 ‘노후행복론’을 기대했던 기자에게 ‘인생설계론’이라는 예상 밖 화두를 던지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 박사는 대통령비서실 재정경제비서관, 통계청장,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를 역임한 대표적 엘리트 경제 관료. 현재도 서울대 과학기술혁신최고과정 주임교수,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삼성증권과 한국GM의 사외이사로서 현역 때 못지않은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을 맡았다. 화려한 이력 한편으로 그는 ‘은퇴 후 30년을 준비하라’를 내는 등 노후의 ‘참행복’을 전파하는 ‘행복론 전도사’로도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설계하는 습관 몸에 배야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0세 정도지만 매년 0.5세씩 길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현재 35세인 사람의 예상수명은 100세가 될 것이다. 남은 100세까지의 긴 시간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은 채 50대 후반 혹은 60대 초반 은퇴를 맞이한다면? 남은 40여 년의 시간을 무위도식하며 허송세월하게 된다. 오 박사가 은퇴 이후에 대비해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5월 초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4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My Life Plan in 2100’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합니다. 강연회에 오는 학생이 대부분 20대 초반이니 그들이 2100년까지 사는 것은 결코 꿈같은 소리가 아니죠. 과연 100세가 됐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그려보라는 것이 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입니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벌써 은퇴한 50~60대가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계획 없이 사회에 나온 만큼 “국어와 산수라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웬 국어와 산수?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재미있는 설명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국어와 산수 시간에 배운 ‘주제’와 ‘분수’를 알라는 겁니다(웃음). 현실은 냉엄하기 때문이죠. 일단 지출을 줄여야 해요. 사업이나 주식투자는 말리고 싶습니다.”
그가 젊은이에게 지금부터라도 인생계획을 세우라고 말하는 것도 자기 세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 당장 직장에 잘 다닌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에 안주하고 만다. 그럴 때면 오 박사는 10~20년, 나아가 60~70년 뒤 자기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 고개를 저을 것이다.
결국 노후행복도 젊은 시절 인생계획을 얼마나 철저히 세우고 실천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는 인생을 설계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인생설계 예찬론자’다. 이렇게 된 데는 미국 유학시절의 경험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82년 경제학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MBA를 들었습니다. 그때 전사관리(Total Enterprise Management)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마지막 수업과제가 ‘20년 후 자기 모습을 그려오라’는 것이었죠. 당시 제가 제출한 내용이 좋다고 해서 발표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때 그렸던 저의 모습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큰 동기가 됐습니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단순히 거창한 목표를 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에 이르는 긴 삶의 궤적을 어떻게 걸어갈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해야 하며, 일 년 동안 무엇을 해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이다.
그는 인생계획을 세우면서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평생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은퇴준비는 없다.
자신이 그린 인생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평생직업을 찾게 되는 ‘선택의 순간’이 있다. 그러나 평생직업과 현재 직장이 다를 때 갈등이 생긴다. 이때 그는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하라고 말한다.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른 만큼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밤을 새우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지를 되새겨본다. 만일 그런 일을 발견했다면 과감히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오 박사의 주장이다.
차별화한 자기만의 브랜드
많은 사람이 선택의 순간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는 데 심정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행여 소득이 줄어들거나 미래가 불확실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오 박사는 평생직업을 찾았는데 현실적인 이유로 꺼려진다면, 자신이 처한 수준에 맞게 생활하면 된다고 명쾌하게 결론 내린다.
“와인 마시던 거 소주 마시면 됩니다. 예전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고 했지만, 요즘에는 굶어 죽진 않습니다. 밥만 먹고 사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평생직업을 찾으려고 현직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종사하는 일이 천직일 수도 있다. 다만 그때도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브랜드의 중요성은 삼성, LG, 애플, 구글 같은 기업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 친구가 없으면 회사의 중요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같은 식이죠. 외국어 하면 누구, 네트워크 하면 누구 이런 식으로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지녀야 자연스레 경쟁력도 높아집니다.”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자기 브랜드를 높이려면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것이 평생학습이다. 학교에서 배우든, 스스로 공부하든 타고난 소질을 개발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계획한 대로 부지런히 살면서 은퇴 후 삶을 맞이한다면 그때는 ‘Not for a living. But for fun’, 즉 생계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생을 이모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온대 기후대에서는 이모작으로 여름에 벼농사, 겨울에 보리농사를 짓죠. 은퇴 전 삶이 벼농사였다면, 은퇴 이후 삶은 보리농사입니다. 은퇴 이후에도 이전과 똑같이 활동하려 든다면 겨울에도 벼농사를 짓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30대 기자에게 오 박사는 2시간 남짓 여러 화두를 던졌다.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와서인지 그의 말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10년 뒤, 아니 50년 뒤 기자의 모습은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 즈음 그가 결정타를 날렸다.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과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는 사람은 10년 뒤 반드시 차이가 납니다. 매순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