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이거 진짜 웃겨요. 흐흥.” 옆자리 후배의 허파 바람 빠지는 소리에 호기심이 일어 아이폰을 들었다. 네이버 웹툰인 김규삼(36) 작가의 ‘쌉니다 천리마마트’(이하 천리마). “흐흥, 흐흥.” 줄줄 새는 허파 바람을 막을 수 없었다. 주말 내내 침대에 딱 붙어 전작인 ‘입시명문 사립정글고등학교’(이하 정글고)까지 완전정복. 튀어나올 기세인 눈알과 빠질 듯 저린 팔을 마사지하다 보니 물음표가 생겼다. ‘한류스타 Q3’(큐삼=규삼, 작가의 닉네임)이라는 사람, 대한민국 정규교육을 받고 상상력이 어쩜 이렇지? 알고 보니 이 남자, 청소년 사이에서 아이돌급이다. 햇살 눈부신 4월 1일 Q3의 근거지인 경기 시흥시로 향했다.
웹툰 돌풍 주역 ‘정글고’ 최근 완결
김 작가는 2000년 만화잡지 ‘영챔프’로 데뷔했다. 그가 이름을 알린 것은 2006년 네이버에 웹툰 ‘정글고’를 연재하면서. 입시 압박, 과도한 체벌, 사학재단 비리 속에서 번민하는 고교생들을 실감 나게 그려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을 위한 만화’라는 별칭을 얻었다. 덩달아 그도 ‘웹툰계 아이돌’로 떠올랐다. ‘정글고’는 두 달 전 456회로 완결됐다.
‘정글고’를 보다 보면 먼지 쌓인 학창시절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만큼 고교생 일상의 틈새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래서 멋대로 단정했다. 작가는 교육정책을 완벽 숙지하고, 학생들을 심층 취재한 뒤,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작품 얼개를 치밀하게 탐구했을 거라고.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김 작가가 ‘그런 질문은 이제 그만’이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의도를 지니고 작업한 에피소드는 단 한 편도 없어요. 명왕성을 제외한 캐릭터도 모두 즉흥으로 탄생했죠. 나이가 들었으니 뉴스를 챙겨 보긴 하지만, 교육정책을 특별히 공부하진 않아요. 일전에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저에게 ‘사학비리’ 관련 코멘트를 요청한 적이 있는데, ‘저는 교육자가 아닌 만화가’라며 정중히 거절했죠. 취재도 따로 하지 않아요. 다만 요즘은 학생이 인터넷에 자발적으로 사생활 이야기를 올리는데, 간접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죠.”
‘정글고’ 최고 인기 캐릭터는 불사조. 전국 1등을 도맡는 모범생이지만 반골 기질이 있어 왕왕 선생님께 대들며 학생들을 통솔한다. 불사조 버금가는 인기 캐릭터는 정글고 이사장 정안봉. 뚱뚱한 몸집에 모차르트 머리 모양을 하고 입버릇처럼 “입시천국 빈둥지옥”을 외친다. 두 사람은 물고 물리는 앙숙관계. 불사조가 “학교 주인은 학생 아니냐”고 따지면 이사장이 “학교의 주인은 나”라고 외치는 식이다(정글고 건학이념은 ‘내가 곧 학교니라’다). 작가는 두 캐릭터를 어떻게 바라볼까.
“불사조가 사랑받을지도, 이사장이 인기를 끌 줄도 몰랐어요. 특히 이사장은 처음에 악당으로 생각했지만, 인기를 얻으면서 방향을 바꿨죠. 현실 비판적인 불사조와 현실적인 속물 이사장 둘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상과 현실 간 균형이 중요하잖아요.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는 명왕성이에요. 못 말리는 꼴통이지만 사귀고 보면 괜찮은 캐릭터를 좋아하거든요.”
김 작가는 종종 학생 독자로부터 e메일을 받는다. 내용은 “타잔의 구애에 제인이 ‘난 고졸이랑은 안 사귀어’라고 한다면, 타잔은 숲 속 친구를 몽땅 팔아서라도 대학에 갈 것이라는 이사장 훈화에 공부할 결심을 세웠다”는 감사 인사에서부터, “학교를 비난하는 척하면서 공부를 강요하는 만화”라는 지적까지 다양하다.‘정글고’를 마칠 때는 “정글대학을 연재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 고등학교는 특수하다. 때리면 맞고, 청소하라고 하면 비질을 해야 한다. 대학생은 상대적으로 자율이 커져 그 맛이 떨어지리라고 생각했다. 대학 비리를 종합적으로 그리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정글고에서 멈추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연재 중인 ‘천리마’ 매력의 요체는 진지하게 웃기기다. 잘나가던 대마그룹 정복동 이사는 차에 바르면 털이 나는 왁스를 반대하다가 천리마마트로 좌천당한다. 그는 그룹에 복수하려고 ‘마트 말아먹기’ 작전에 돌입한다. ‘손님은 왕’이라는 표어를 비웃듯 직원들에게 왕 옷을 입히고, 빠야족을 대거 고용해 카트부에 배치한다(이들은 등짝에 바구니를 메고 카트처럼 일한다). 하지만 작전을 쓸수록 마트 매출은 쑥쑥 오르고, 정 이사는 시름에 빠진다. 이런 ‘비틀기’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대단한 메시지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에요. 그저 회사와 직원들이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정 이사는 마트를 망치고자 이익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는데, 그럴수록 마트는 더 흥해요.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 작가는 만화를 흠모하다 직접 그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사준 교육 만화를 보고 처음 만화의 재미에 빠졌다. 중학교 2학년 때 형이 사온 일본 만화 ‘시티헌터’ ‘공작왕’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국내 명랑만화와 다른 만화의 신세계를 맛본 것. 이후 그는 학교에서 ‘만화 그리는 아이’가 됐다.
“‘시티헌터’‘공작왕’을 본 이후 공책에 볼펜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따라 그리기도 하고, 손 가는 대로 그리기도 하고, 패러디도 하고. 기억나는 건 ‘오국지’라는 패러디 만화인데, 폼 나는 캐릭터에는 친한 친구들의 이름을 붙였죠(웃음).”
오늘의 Q3을 만든 데는 두 명의 일등공신이 있다. 중1 수학 선생님과 고3 담임선생님이다. 반 친구들은 그가 그린 만화를 돌려봤는데, 이따금 공책이 적발되면 매를 맞고 작품을 빼앗겼다. 하지만 두 선생님은 꾸중 대신 따뜻한 격려를 보내줬다. 그는 “두 분 다 숨만 잘못 쉬어도 때릴 만큼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한데 만화 그리는 것을 이해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만화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국내 만화계는 제3의 물결을 맞고 있다. 종이만화에서 웹툰을 거쳐 앱툰(애플리케이션용 만화)시대를 눈앞에 둔 것. 김 작가는 종이만화의 쇠락과 웹툰의 부흥을 몸소 체험했다. 만화 잡지가 폐간되면서 만화가로서 생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서 웹툰으로 기사회생한 것. 만화 시장에 대한 고민을 묻자 목소리가 커졌다.
“웹툰이 성공했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해 ‘네이버 웹툰’이 성공한 거죠. 웹툰을 다루는 업체가 적어도 3군데 정도는 있어야 시장이 안정됐다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웹툰 덕분에 만화 인구가 늘어난 건 사실이에요. 접근성과 다양성 덕분에 만화를 보지 않던 사람들이 웹툰을 일상적으로 즐기게 됐으니까요.”
김 작가는 만화만큼 웃기지는 않았다. 진지한 가운데 이따금 장난기를 보였다. 그의 만화는 눈물 나게 웃기면서도 묘하게 현실을 비트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한데 본인은 명랑만화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명랑하게 그려도 ‘블랙’이 묻어나는 이유를 묻자 Q3은 “작가가 구김살이 많아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웹툰 돌풍 주역 ‘정글고’ 최근 완결
김 작가는 2000년 만화잡지 ‘영챔프’로 데뷔했다. 그가 이름을 알린 것은 2006년 네이버에 웹툰 ‘정글고’를 연재하면서. 입시 압박, 과도한 체벌, 사학재단 비리 속에서 번민하는 고교생들을 실감 나게 그려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을 위한 만화’라는 별칭을 얻었다. 덩달아 그도 ‘웹툰계 아이돌’로 떠올랐다. ‘정글고’는 두 달 전 456회로 완결됐다.
‘정글고’를 보다 보면 먼지 쌓인 학창시절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만큼 고교생 일상의 틈새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래서 멋대로 단정했다. 작가는 교육정책을 완벽 숙지하고, 학생들을 심층 취재한 뒤,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작품 얼개를 치밀하게 탐구했을 거라고.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김 작가가 ‘그런 질문은 이제 그만’이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의도를 지니고 작업한 에피소드는 단 한 편도 없어요. 명왕성을 제외한 캐릭터도 모두 즉흥으로 탄생했죠. 나이가 들었으니 뉴스를 챙겨 보긴 하지만, 교육정책을 특별히 공부하진 않아요. 일전에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저에게 ‘사학비리’ 관련 코멘트를 요청한 적이 있는데, ‘저는 교육자가 아닌 만화가’라며 정중히 거절했죠. 취재도 따로 하지 않아요. 다만 요즘은 학생이 인터넷에 자발적으로 사생활 이야기를 올리는데, 간접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죠.”
‘정글고’ 최고 인기 캐릭터는 불사조. 전국 1등을 도맡는 모범생이지만 반골 기질이 있어 왕왕 선생님께 대들며 학생들을 통솔한다. 불사조 버금가는 인기 캐릭터는 정글고 이사장 정안봉. 뚱뚱한 몸집에 모차르트 머리 모양을 하고 입버릇처럼 “입시천국 빈둥지옥”을 외친다. 두 사람은 물고 물리는 앙숙관계. 불사조가 “학교 주인은 학생 아니냐”고 따지면 이사장이 “학교의 주인은 나”라고 외치는 식이다(정글고 건학이념은 ‘내가 곧 학교니라’다). 작가는 두 캐릭터를 어떻게 바라볼까.
“불사조가 사랑받을지도, 이사장이 인기를 끌 줄도 몰랐어요. 특히 이사장은 처음에 악당으로 생각했지만, 인기를 얻으면서 방향을 바꿨죠. 현실 비판적인 불사조와 현실적인 속물 이사장 둘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상과 현실 간 균형이 중요하잖아요.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는 명왕성이에요. 못 말리는 꼴통이지만 사귀고 보면 괜찮은 캐릭터를 좋아하거든요.”
김 작가는 종종 학생 독자로부터 e메일을 받는다. 내용은 “타잔의 구애에 제인이 ‘난 고졸이랑은 안 사귀어’라고 한다면, 타잔은 숲 속 친구를 몽땅 팔아서라도 대학에 갈 것이라는 이사장 훈화에 공부할 결심을 세웠다”는 감사 인사에서부터, “학교를 비난하는 척하면서 공부를 강요하는 만화”라는 지적까지 다양하다.‘정글고’를 마칠 때는 “정글대학을 연재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 고등학교는 특수하다. 때리면 맞고, 청소하라고 하면 비질을 해야 한다. 대학생은 상대적으로 자율이 커져 그 맛이 떨어지리라고 생각했다. 대학 비리를 종합적으로 그리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정글고에서 멈추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연재 중인 ‘천리마’ 매력의 요체는 진지하게 웃기기다. 잘나가던 대마그룹 정복동 이사는 차에 바르면 털이 나는 왁스를 반대하다가 천리마마트로 좌천당한다. 그는 그룹에 복수하려고 ‘마트 말아먹기’ 작전에 돌입한다. ‘손님은 왕’이라는 표어를 비웃듯 직원들에게 왕 옷을 입히고, 빠야족을 대거 고용해 카트부에 배치한다(이들은 등짝에 바구니를 메고 카트처럼 일한다). 하지만 작전을 쓸수록 마트 매출은 쑥쑥 오르고, 정 이사는 시름에 빠진다. 이런 ‘비틀기’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대단한 메시지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에요. 그저 회사와 직원들이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정 이사는 마트를 망치고자 이익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는데, 그럴수록 마트는 더 흥해요.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 작가는 만화를 흠모하다 직접 그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사준 교육 만화를 보고 처음 만화의 재미에 빠졌다. 중학교 2학년 때 형이 사온 일본 만화 ‘시티헌터’ ‘공작왕’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국내 명랑만화와 다른 만화의 신세계를 맛본 것. 이후 그는 학교에서 ‘만화 그리는 아이’가 됐다.
“‘시티헌터’‘공작왕’을 본 이후 공책에 볼펜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따라 그리기도 하고, 손 가는 대로 그리기도 하고, 패러디도 하고. 기억나는 건 ‘오국지’라는 패러디 만화인데, 폼 나는 캐릭터에는 친한 친구들의 이름을 붙였죠(웃음).”
오늘의 Q3을 만든 데는 두 명의 일등공신이 있다. 중1 수학 선생님과 고3 담임선생님이다. 반 친구들은 그가 그린 만화를 돌려봤는데, 이따금 공책이 적발되면 매를 맞고 작품을 빼앗겼다. 하지만 두 선생님은 꾸중 대신 따뜻한 격려를 보내줬다. 그는 “두 분 다 숨만 잘못 쉬어도 때릴 만큼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한데 만화 그리는 것을 이해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만화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국내 만화계는 제3의 물결을 맞고 있다. 종이만화에서 웹툰을 거쳐 앱툰(애플리케이션용 만화)시대를 눈앞에 둔 것. 김 작가는 종이만화의 쇠락과 웹툰의 부흥을 몸소 체험했다. 만화 잡지가 폐간되면서 만화가로서 생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서 웹툰으로 기사회생한 것. 만화 시장에 대한 고민을 묻자 목소리가 커졌다.
“웹툰이 성공했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해 ‘네이버 웹툰’이 성공한 거죠. 웹툰을 다루는 업체가 적어도 3군데 정도는 있어야 시장이 안정됐다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웹툰 덕분에 만화 인구가 늘어난 건 사실이에요. 접근성과 다양성 덕분에 만화를 보지 않던 사람들이 웹툰을 일상적으로 즐기게 됐으니까요.”
김 작가는 만화만큼 웃기지는 않았다. 진지한 가운데 이따금 장난기를 보였다. 그의 만화는 눈물 나게 웃기면서도 묘하게 현실을 비트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한데 본인은 명랑만화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명랑하게 그려도 ‘블랙’이 묻어나는 이유를 묻자 Q3은 “작가가 구김살이 많아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