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이 촘촘히 박힌 한우고기. 쇠고기 맛을 제대로 즐기려는 사람에게는 이 지방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마블링을 중심으로 쇠고기에 등급을 매기게 된 것은 1992년 도체등급제 시행부터다. 1980년대만 해도 쇠고기 마블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블링이 좋은 쇠고기가 맛있다는 것은 세계인의 일반적 기준도 아니다. 일본인이 마블링 쇠고기를 특히 선호한다. 어떤 음식이든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쇠고기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취향을 따라 생긴 것이 ‘마블링 쇠고기 신화’다.
일본인이 쇠고기를 먹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교 영향으로 오랜 기간 소를 잡아먹지 못하다가 메이지시대에 와서야 그 금기를 없앴다. 어찌 보면 그들은 쇠고기 맛을 잘 모르는 것이다. 쇠고기를 먹은 지 오래된 유럽인의 눈으로 보면 마블링 쇠고기는 아주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일본만의 독특한 쇠고기 식용 습성을 한국이 이어받은 것인데, 이는 한국 축산 관련 종사자가 일본에서 많은 것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앞선 축산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좋았지만 그들의 특별난 기호까지 배워올 것은 아니었다. 심하게 말하면, 입맛의 식민화라고도 할 수 있다.
도체등급제 실시 이후 한우는 온통 지방질 범벅 쇠고기가 됐다. 마블링이 촘촘히 박혀야 높은 등급이 나오고 그래야 소를 비싸게 팔 수 있으니 축산 기술은 ‘어떻게 하면 지방질을 올릴까’ 하는 데만 집중됐다. 사정이 이러니 고기 맛은 중요하지 않게 됐다. 1++ 등급 등심을 구우면 기름 맛만 날 뿐, 고기 맛이 맹탕인 것이 수두룩하다. 지방이 얼마나 많은지, 고기를 먹는 건지 기름을 먹는 건지 모를 일이 됐다.
도체등급제 실시 이후 소비자의 쇠고기에 대한 미각도 크게 왜곡됐다. 쇠고기를 오직 기름 맛으로 먹는 것이다. 인기가 있다는 몇몇 고깃집에 가보면 가관이다. 테이블에는 가운데가 움푹한 무쇠 솥 모양의 불판이 올려져 있다. 여기에 쇠고기를 굽기 전 기름덩이 하나를 올려놓는다. 불판에 쇠고기가 붙지 말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기름 향을 더하기 위한 것이다. 콩팥 옆에 있는 두태라는 기름덩이인데, 무척 고소한 맛을 낸다. 이 두태가 녹으면 쇠고기를 굽는다. 쇠고기에서도 기름이 나오면서 무쇠 솥 모양의 불판은 기름으로 꽉 찬다. 쇠고기를 쇠기름에 튀긴다고 해야 맞을 정도다. 쇠고기를 쇠고기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기름 맛으로 먹는 것이다.
가끔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수입 쇠고기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을 일이 있는데, 스테이크를 칼로 썰면 붉은 살코기만 보이고 기름은 안 보인다. 그 촉촉한 살코기를 입 안에 넣어 쇠고기의 깊은 육향을 느끼기도 한다. 그 순간 기름 범벅의 한우고기를 한번 떠올려보자. 어떤 게 진짜 쇠고기 맛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