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 내부의 권력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 친이계 내부의 파워게임, 청와대와 내각 인선을 둘러싼 친이계 소계파별 막후 쟁투, 이명박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의 ‘상왕정치’ 공방 등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0%를 넘나든다. 2명 중 1명꼴로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셈이다.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고, 내년 총선까지 1년 정도 남은 상황에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으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이들이 체감하는 민심은 여론조사 결과와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설 때 만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무척 차가웠다. 서울 및 수도권 의원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 의원들 역시 이미 지난 연말부터 지역구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민심 간의 괴리가 이처럼 큰 까닭은 뭘까. 그리고 실제 이 대통령과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밑바닥 민심은 어떨까.
‘주간동아’는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5개 도시 택시(운전)기사를 대상으로 표적집단면접법(FGI)을 활용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택시기사는 직업 특성상 거주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가장 근거리에서 느끼는 직업군이다. 조사 대상 택시기사는 지역별로 10명씩, 모두 50명으로 정했다.
여론조사와 큰 차이…지역별로 극명한 대비
FGI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여론을 듣는 정성(定性)조사 방법 중 하나다. 보통 6~12명을 한자리에 모아 토론을 유도하는 방식인데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토론자들이 솔직하지 못할 수 있다는 단점도 안고 있다. 이에 본지는 조사 대상자들을 상대로 동일한 설문지에 응답(정량(定量)조사)하게 하고, 개별 혹은 2~3명 소그룹으로 인터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지역별로 대상자를 10명씩 정한 것은 이 정도 규모로도 지역 민심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조사 결과, 밑바닥 민심은 일반 여론조사 결과와 차이가 컸다. 5대 도시 택시기사들이 전한 이 대통령에 대한 택시 승객들의 평가는 ‘부정적인 내용’이 76%로 ‘긍정적인 내용’ 22%보다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50%에 달한다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정확한 것 같지 않다’는 응답자가 62%로, ‘비교적 정확한 것 같다’는 응답자 38%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지역별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것. 광주는 택시기사 10명 중 9명이, 대전은 10명 중 8명이 여론조사 결과를 불신했다. 그만큼 이 대통령에 대한 승객들의 불만이 많다는 이야기다. 반면 부산과 대구는 반으로 나뉘었고, 서울은 오히려 10명 중 7명이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개헌, 무상급식…서민들은 관심 하나 없다
택시 승객들이 가장 자주 거론하고, 이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정치인은 단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였다. FGI에 참여한 택시기사 50명 중 82%에 이르는 41명이 박 전 대표를 1순위로 꼽았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1순위로 꼽은 택시기사는 2명에 불과했고, 비록 1명이지만 그나마 1순위로 거론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시자,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정도였다. 2순위는 김 지사 24%, 손 대표 18%, 오 시장 14%로 줄을 이었고, 3순위는 손 대표 26%, 오 시장 16%로 나타났다.
1순위에 3점, 2순위에 2점, 3순위에 1점의 가중치를 적용할 경우 300점 만점을 기준으로 박 전 대표의 인기도는 130점으로 독보적이었고, 37점을 얻은 손 대표가 2위, 김 지사와 오 시장이 각각 29점과 25점을 얻어 3, 4위를 차지했다.
택시기사들이 전하는 지역 민심은 현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해 ‘비교적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거나 ‘적극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응답한 택시기사가 72%에 달했다.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는 택시기사는 16%에 불과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택시기사의 68%가 ‘불안해하는 승객이 많다’고 답했다. 하지만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 정책을 놓고는 ‘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거나, ‘지금의 정책을 고수하는 게 좋다’는 승객이 많았다는 택시기사가 46%나 됐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커진 민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민심은 어떨까. 현 정부 출범 초 대부분의 국민은 이 대통령에게 ‘도덕성’을 요구하기보다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어느 정도 해결해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요즘 물가는 치솟고, 전셋값 급등으로 인한 ‘전세난민’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3년 전보다 먹고살기 힘들어졌다고 토로하는 택시기사가 68%에 달했다.
현 정부에 대한 기대치는 급락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한 승객이 많다는 택시기사는 22%에 그친 반면, 78%의 택시기사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거나 ‘나빠질 것’으로 전망한 승객이 많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치권 최대 이슈로 떠오른 ‘개헌’이나 ‘무상급식’에 서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개헌에 대해서는 택시기사의 80%가 승객들이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거나 ‘전혀 하지 않는다’라고 답했고,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66%의 택시기사가 같은 답변을 했다.
반면 이 대통령과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승객들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거나 ‘많이 하는 편’이라고 답한 택시기사가 60%를 넘었다. 이런 승객은 주로 물가상승 이외에도 대기업 위주의 정책과 이 대통령의 독선적인 국정운영 방식, 일자리 문제, 4대강 사업에 대한 불만 등을 토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FGI에 참여한 택시기사들에 따르면 요즘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은 대부분 중산층과 서민층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은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택시기사들도 수입 측면에서 서민층에 해당한다. 이번 조사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분명 한계를 안고 있다. 또 FGI 표본 추출을 ‘단순무작위 추출방식’으로 했기 때문에 모집단인 택시기사 전체를 조사한 것과 차이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기사 경력 2년 이하의 ‘초짜 기사’부터 40년 가까운 ‘베테랑 기사’까지, 30대 초반부터 60대 후반까지 다양한 경력과 연령대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객관성은 담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지지하는 정당을 보더라도 한나라당 13명(26%), 민주당 10명(20%), 민주노동당 7명(14%), 자유선진당 5명(10%), 국민참여당 3명(6%), 진보신당 1명(2%), 기타 10명(20%) 등 다양하다는 점에서 정치적 편향성으로부터 자유롭다 하겠다. 무엇보다 택시기사를 통해 중산층과 서민층의 ‘밑바닥 민심’을 조사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MRCK 박동현 대표의 자문을 받아 실시했다. 박 대표는 “우리도 택시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FGI를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표본 추출과 섭외 등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혀 실패했다”면서 “그동안 어떤 여론조사 기관에서도 택시기사 집단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적이 없는 만큼 이번 조사는 나름대로 의미가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5대 도시 ‘달리는 민심’ 택시기사 50명에게 듣다
서 울
“경제 대통령이라더니…
호주머니 가볍지만 국정지지도 50% 믿을만”
북한의 포격을 받은 연평도. 서울 시민은 사회 현안 중 ‘남북문제’에 관심이 높았다.
“어, 난 40~50% 되는 것 같은데?”
2월 12일 서울 은평구 증산동 유풍운수 사무실.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50% 내외로 나왔다”는 기자의 말에 택시기사들이 두 패로 갈렸다. 10%에서 50%까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는 가운데, 저마다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물가’ ‘빚’ ‘서민정책’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설문조사 결과 ‘국정지지도 50%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서울 택시기사 10명 중 7명이 ‘비교적 정확한 것 같다’, 3명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 면담조사에서는 체감 지지도를 20~30%로 보는 의견이 우세했다. 국정지지도를 40~50%로 체감하는 기사는 단 2명이었다.
“기업인 출신이라 경제는 꽉 잡을 줄 알았지. 한데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먹고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져.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큰 거지.”
승객들과 대화를 즐긴다는 2년 차 택시기사 김모(42) 씨는 “경기가 이보다 나쁠 수 없다”며 국정지지도를 10%로 내다봤다. 면담조사에서 지지도를 낮게 본 택시기사 대부분이 ‘경제’를 그 이유로 들었다. ‘(손님들이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긍정적인 내용이었나, 부정적인 내용이었나’라는 항목에 대한 답변도 이를 뒷받침한다. 3명을 제외한 7명 모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경제 전망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손님들은 전반적으로 올해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어떻게 보는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7명이 ‘(지금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 시민들은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특정 집단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손님들 중 여당을 지지하는 분이 더 많은 것 같은가, 아니면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6명이 ‘엇비슷하다’라고 답했다. 경력 3년의 50대 박모 씨는 “어디 대통령 혼자만의 책임이겠느냐. 대통령, 정치인, 서울시장 등을 골고루 탓하는 손님이 많다”라고 전했다.
‘4대강 사업’ ‘개헌’ ‘무상급식’ 등 정치 현안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취재 중 만난 택시기사들은 “본인과 관련된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다. 대체로 ‘돈’과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어르신들이 이따금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남북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은 편이었다. ‘손님들이 남북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느냐’라는 항목에 6명이 ‘많이 하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50대 택시기사 임모 씨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과 관련한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면 손님 대부분이 의견을 덧붙였다”라며 말을 이었다.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70대 어르신이 택시에 탔어요. 그분이 흥분하며 ‘북한이 한 짓이 뻔한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아, 그래요?’라고 반문했죠. 그랬더니 나한테 ‘정신 나간 빨갱이’라고 역정을 내면서 택시에서 바로 내리더군요. 다른 정치 현안은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남북문제에 대한 정서는 나누기가 쉬워서 그런지 종종 화제에 올라요.”
차기 대선주자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거론하는 승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손님들이 자주 거론하는 차기 대선주자 1, 2, 3순위를 묻는 질문에 7명이 1순위로 박 전 대표를 꼽았다. 2순위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3명), 김문수 경기지사(2명)가 뒤를 다퉜다. 하지만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장 큰 관심사는 ‘가벼운 호주머니’였다. “우리 같은 서민은 이제 잘 먹고 잘사느냐는 관심도 없다. 적당히 먹고살기만 해도 좋겠다”는 한 택시기사의 말이 지쳐버린 서울의 민심을 대변했다.
“대출금이 올라 가계 빚이 어깨를 짓누르고,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 돼 더 힘들어지고…. 서민들은 이제 지친 것 같다.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고, 적당히 쉬고 적당히 놀면서 살기만 해도 좋겠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부 산
“정치 얘기 꺼내지도 마소…
사고 쳤다고 호적에서 팔 수 있능교?”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시민들이 상인들과 흥정을 벌이며 생선을 둘러보고 있다.
2월 13일 오전 부산역에서 탄 택시가 번영로(부산 제1고속화도로)에 오를 때쯤, 택시기사는 흘깃 기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물정 모르는 서울 사람이 창밖의 한적한 부산항만큼이나 한가로운 질문을 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관해 물을 때였다.
기자는 2월 13~14일 이틀간 기사식당, 운수회사 등에서 부산지역 택시기사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포함한 FGI(표적집단면접법) 여론조사를 했다.
부산은 2007년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표(득표율 58%)를 몰아준 지역이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현 정부에 대한 반응은 ‘무관심’이 대세였다. 부산 금사동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의 말이다.
“한나라당 지지 성향도 있지만 ‘경제는 이명박’이라기에 뽑아줬다 아입니꺼. 그런데 물가는 오르지예, 택시 손님은 없지예. 요즘 사납금(12만3000원) 내려면 15시간 운전해야 합니데이. 우리 같은 서민들은 죽어나지예.”
10명의 택시기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읽혔다. ‘손님들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느냐’는 질문에 8명이 ‘별 차이 없거나 나빠질 거라고 말한다’고 답했다. ‘3년 전과 비교한 기사들의 체감 경기’에 대해서도 9명이 ‘힘들어졌다’고 응답했다. 택시기사들이 전한 승객들의 대표적인 민생고(民生苦)는 장바구니 물가와 기름값 인상, 일자리 부족. 현재 정부가 나서 직접 기업을 압박해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다급함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민생고는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손님들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묻는 설문에서도 8명이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했고, 택시기사 중에서도 7명이 ‘일을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일을 못하는 사례’에 대해선 콕 짚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구제역 대처 미숙’ ‘강부자 내각’ ‘물가 인상’ ‘천안함 폭침 당시 무력함’이 ‘이명박 정부=일 못하는 정부’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와 수출 호조, G20 정상회의, 아덴만 여명작전 등은 잘한 일로 꼽았지만 이 역시 민생고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58%의 유권자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도시인 만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여당과 야당을 지지하는 승객의 비율은 5대 2. 택시기사들은 부산 시민들의 의리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부산 사람들은 의리가 있다 아입니꺼. 지금 먹고살기 어렵다고 우리가 민 대통령을 욕만 할 수 있능교. 자식이 사고 친다고 호적에서 지아뿔 수(지울 수) 없다 아입니꺼. 그놈이 잘할 때까지 지켜봐야지예.”
차기 대권후보에 대한 하마평은 무성했지만 ‘결론은 박근혜’였다.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차기 대통령’과 택시기사들이 지지하는 차기 대통령 모두 80% 이상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꼽았다. 퍼스트레이디와 국회의원, 당 대표를 거치며 국정을 익혔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패배 때도 ‘깨끗하게 승복’한 대범한 정치인이라는 게 이유였다. 생활이 어려워질수록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짙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에 따라 부산 민심이 크게 요동칠 가능성도 엿보였다. 현재 동남권 신공항은 부산이 가덕도를, 대구·울산·경남·경북이 경남 밀양을 밀고 있다. 부산 반송동에서 만난 택시기사의 전언이다.
“승객 수나 물동량을 보면 당연히 부산이 유치해야지예. 일자리도 생기고 택시 손님도 늘 거 아입니꺼. 근데 박 전 대표가 (지역구가 대구여서) 밀양을 밀면 되겠능교? 손님들도 이번에 유치 못하면 부산 출신 국회의원 다 바깠뿐다(바꾼다) 한다고예.”
부산과 밀양 어느 곳에 신공항이 들어서도 여당으로선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악재(惡材)임이 분명했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대 구
“대놓고 욕할 수도 없고…
싸움질만 하는 거 벼르고 있다카이”
“대통령 말인교? 머라 머라 케쌌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대구는 좀 다르다 아잉교. 그래도 우리가 대통령 맹글었는데 인터넷에서처럼 대놓고 욕해서야 되겠심까?”
동대구역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모(50) 씨는 기자가 대구 민심에 대해 묻자 ‘대구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주간동아’의 FGI 조사에 응한 대구지역 10명의 기사 중 7명이 ‘손님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씨의 말처럼 직접적으로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대구 시민들은 싸움박질만 하는 국회의원, 무능한 정부 여당, 정치하는 사람 모두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미워도 내 새끼’란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다만 대통령이 지나치게 독선적이란 점에는 이구동성이었다.
대구 시민들은 개헌과 같은 정치적 이슈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택시기사 곽모(60) 씨는 “당장 먹고살기가 바쁜데 정치인들은 신선 노름을 하고 앉았다 아잉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손님들 중에서 개헌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답한 택시기사가 8명에 이르렀다. 설사 개헌에 대한 얘기가 나오더라도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개헌 추진에 찬성한다(4명)’보다는 ‘개헌 필요성은 공감하되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은 반대(5명)’란 의견이 우위를 차지했다. 개헌 논의가 나온 것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이가 많았다.
정작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가와 4대강 사업, 동남권 신공항 같은 지역 현안사업이었다. 택시기사들은 대형마트 때문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살기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LPG 가격 상승을 비롯한 물가 상승은 모든 서민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식재료 값이 너무 올라 밥 한 그릇 사먹기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런데도 벌이는 갈수록 시원찮다. 40분을 기다려 겨우 기본요금에 해당하는 거리만 가는 손님을 태우다 보니 차를 몰 엄두가 안 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다 보니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들은 현 정부가 출범한 3년 전보다 먹고살기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6명)’는 의견이 다수였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선 예상과 달리 ‘비교적 반대하는 손님이 많다(5명)’고 답했다. 택시기사 신모(43) 씨처럼 “4대강 사업이 어려운 대구 경기에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통령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에 대해선 거부감을 보이는 이가 더 많았다. 택시기사 박모(56) 씨는 “설사 4대강 사업을 하더라도 대통령의 일방적인 주도가 아닌 반대편과 대화와 합의를 거쳐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권과 갈등을 빚고 있는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선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밀양으로 선정돼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무상급식에 대해선 필요성은 인정하되 ‘재정 상태에 맞춰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6명)’가 다수였다.
대통령의 강경 대북 정책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택시기사들은 ‘손님들이 전 정권에 비해 남북관계를 조금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5명)’고 전했다. 하지만 향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선 ‘대북 정책을 더 강경하게 나가거나 지금의 정책을 고수하는 게 좋다(5명)’는 의견과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5명)’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전 정권에서 북한에 과도하게 지원을 한 것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대구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택시기사들은 승객들이 얘기하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절대 다수(9명)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꼽았다. 택시기사 김모(52) 씨는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도덕성을 갖춘 이가 지도자가 돼야 한다”며 지지 이유를 밝혔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세가 압도적이긴 했지만 한나라당에 대해선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대구 시민들은 “한나라당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 시민들 한나라당에 불만 많습니데이. 지역 현안 단디 못 챙기고 만날 정치 싸움질만 하는 거, 진짜로 벼르고 있다카이. 텃밭이라 생각한다 카먼 큰코다칠 낍니더.”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대 전
“충청권 핫바지 취급
‘땡박’신의를 누가 믿슈”
대북정책에서만큼은 대전 민심이 현 정부의 기조에 공감했다. 지난해 12월5일 서부전선 육군부대 초소를 방문한 김관진 국방부장관.
택시기사 조모(60) 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운행을 중단하고 ‘불편한’ 대전의 민심을 쏟아냈다.
2월 13일 대전지역 택시기사 10명을 직접 만나 들은 지역 민심은 예상보다 싸늘했다.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충청권 지역의 성향이 무색하리만큼 가시 돋친 반응 일색이었다.
FGI 조사에 참여한 10명 중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택시기사도 4명이나 됐다. 하지만 이들 역시 악화돼가는 지역 민심,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고 등으로 서서히 돌아서고 있었다. 이들 중 이 대통령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이는 1명에 지나지 않았다.
택시기사들은 현 정부의 정책과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일관성이 없다” “신의가 없다” “쇼맨십이 강하다” “대통령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승객들의 평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큰 이유로 충청권 공약 및 관련 정책 추진의 잡음, 미이행을 꼽는다.
택시기사 박모(56) 씨는 “행정수도 이전, 과학벨트 대전 유치 같은 충청권에 대한 공약 등에 대해 대통령은 아예 안 지키려 한다는 게 대부분 대전 시민의 생각”이라며 “심지어 어떤 손님은 ‘대통령이 대전과 충청권을 핫바지로 본다’고 말하는데, 바로 이런 감정이 상당 부분 민심에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냉각된 민심은 정부 정책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하는 손님이 많다’는 택시기사가 7명이나 됐고, 기사들 중에서도 6명이 반대한다고 답했다.
택시기사 김모(53) 씨는 “강바닥에 몇십조 원을 묻어버린 게 아니냐고 말하는 손님이 부지기수”라고 답했다. 30년간 군 하사관으로 복무한 뒤 전역해 운전대를 잡았다는 개인택시기사 오모(64) 씨도 “손님들은 4대강 사업을 왜 한 번에 하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며 “나 역시도 먼저 한 곳을 해본 뒤 단계적으로 사업을 펼쳐야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 한 해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물가상승 등으로 지난해 서민경제가 상당히 위축된 점을 고려할 때 올해 역시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셈이다. 택시기사들도 10명 중 7명이 정부가 출범한 3년 전보다 먹고살기가 힘들어졌다고 답했다. 여성 택시기사인 김모(45) 씨의 말이다.
“‘경제 대통령’이라 처음엔 기대했는데, 정작 먹고살기는 더 어려워졌잖아요. 100원 벌어서 50원은 저축하고 싶은데, 아무리 아껴도 200원을 쓸 수밖에 없으니 정부에 대한 감정이 좋겠어요. 이제는 손님들이 대통령 얘기만 나오면 ‘땡박’이라고 해요. 땡~!쳤다고.”
경제 양극화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택시기사 8명이 3년 전보다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답했다. 택시기사 이모(61) 씨는 “정부가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것을 더 늘려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다 보니 점점 서민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대전 역시, 차기 대권주자에 대해선 박 전 대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 택시기사 10명 중 9명이 승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박 전 대표를 꼽았다. 개헌 자체에 대한 관심은 적지만, 개헌을 거론하는 승객은 대부분 4년 중임제 도입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만큼은 현 남북 대치 상황이 불안하지만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민심이 설득력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택시기사들 사이에선 대북 강경정책을 더욱 고수해야 한다는 답변보다 북한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4대 6 정도로 높았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광 주
“MB도 민주당도 싫소…
이젠 박근혜만 믿는당께”
광주 충장로 거리를 방문해 광주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50% 지지율) 절대 나올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택시 타믄 다들 격하게 한마디 허죠. 임기 끝나믄 이 대통령은 이 나라를 떠나든지 해야 한다 케요. 전부 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서울서 내려온 사람도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 찍었는데 발등 찍고 죽고 잡다고 그래요. 근디 50% 나온다? 리서치 회장이 이 대통령 친구라는 ‘괴담’까지 있더만요(웃음).”
택시기사 한두 명의 이야기가 아니다. 광주지역에서 FGI 조사에 참여한 택시기사 10명 모두 이 대통령에 대한 승객들의 이야기가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니 여론조사 결과를 믿는 택시기사가 전무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는 노릇.
여론조사와 민심 간에 이처럼 심각한 괴리가 나타나는 것에 대해 택시기사들은 저마다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다. “우리 국민은 앞에서는 웃다가도 뒤돌아서면 욕한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지지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여론을 조사하는 그들만의 지지율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택시기사들이 전하는 광주지역 승객들의 이야기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토로가 주를 이룬다. 이는 ‘4대강 사업’과 ‘남북관계’ ‘호남 홀대하는 인사정책’ ‘대기업과 부자들만을 위한 정부’라는 불만으로 이어진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승객들의 평가’를 묻는 질문에 택시기사 10명 중 8명이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답했고, 나머지 2명도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답했다.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고 답한 택시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이전 정부에 비해 ‘많이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 4명, ‘조금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 4명 등 택시기사 10명 중 8명이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고 전했다. 향후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10명 모두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게 필요하다는 사람이 많다’고 답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아쉬움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민주당에 호의적이지도 않다. 택시기사 배모(53) 씨의 이야기다.
“민주당이 광주에 해준 게 뭐가 있어라. 도청 빼갖고 갔지, 무안공항 새로 지어서 광주공항 죽여부렀지. 민주당이 머시간디, 이제 믿지도 않고 필요도 없어요.”
실제 지난해 10월 27일 치러진 광주 서구청장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는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다시피 해 지원유세를 폈는데도 무소속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일까. 택시기사들이 전한 광주지역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 대한 결과는 의외였다. 택시기사 10명 중 6명이 승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꼽았다. 민주화의 성지이자 영원한 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광주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라고 답한 택시기사는 2명에 그쳤다.
광주지역에선 여당보다 야당을 지지하는 택시 승객이 많고, FGI 조사에 참여한 택시기사들의 지지정당을 보면 민주당 3명, 민주노동당 4명 등 진보적인 성향이 절대 다수인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광주지역 민심을 더없이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현 정권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어떤 택시기사는 “이런 말 하면 잡혀가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가 하면, 어떤 택시기사는 “잡혀가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이 마치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던 독재정권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택시기사 이모(59) 씨는 “촛불집회에 유모차 부대로 참여했던 한 아줌마를 몇 개월간 추적해서 고소하고, 인터넷에 글 하나 잘못 올렸다고 잡아넣는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광주지역 밑바닥 민심은 현 정부와 이 대통령은 물론 민주당으로부터도 깊은 상처를 받았다. 이들의 마음을 과연 어떤 정치인이 제대로 보듬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