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3400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다가 중단한 김포시 고촌면 향산리 일대.
현대건설은 2007년 이 일대 40만여㎡(약 12만 평)에 3400세대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를 건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현재 개발 계획 을 잠시 보류한 상태다.
어디든 개발 과정에 복잡한 송사가 얽히게 마련이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향산리 지역주민(토지 소유주)들과 현대건설 간에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매매가격이나 권리를 둘러싼 소송이 아니라 ‘허위 계약서’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게 특이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개발 주체가 바뀌고 매매 대행업체 및 업무 대행업체 대표의 사망·구속, 시행사 부도 등으로 계약 변경 과정에 문제의 소지가 많았다.
당초 이 일대를 개발하려던 곳은 동아건설이다. 개발 대상도 당초엔 6만6000여㎡(약 2만 평)였다. 동아건설은 1997년 지역주민 24명에게서 이 용지를 매입했다. 그러나 1999년 자금난에 빠진 동아건설은 이 토지에 대한 채권을 그해 11월 24일 현대건설에 양도했다.
위증과 무고 고소·고발 남발
계약 인수가 효력을 얻으려면 계약 당사자의 동의와 승계를 위한 재계약(이하 재계약)이 필요하다. 현대건설은 동아건설로부터 양도받은 날 대행업체인 Y사에 토지매매 계약 체결 및 사업 인허가에 관한 권한을 위임했고, Y사는 다시 2000년 2월 H공영에 용역을 맡겼다. 이런 복잡한 과정은 여러 송사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동안 지역주민과 현대건설 등 개발업체 관련자 사이에는 위증과 무고에 의한 고소 및 맞고소가 남발했다. 재판 결과 대부분 현대건설 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관련 재판 서류에 따르면 현대건설이 동아건설로부터 인수한 용지는 현대건설이 2007년 발표한 전체 개발 예정지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지역주민 24명 중 한 사람이라도 재계약을 거부할 경우 개발 계획 자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현대건설 측은 2000년 5~6월 이 가운데 11명과 재계약에 합의했다. 나머지 13명 중 재계약을 명백히 거부한 1명을 뺀 12명을 상대로 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해당 부동산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냈다.
향산리는 서울에 인접해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시골이어서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었다. 법원으로부터 가처분 결정통지를 받았다고 해도 법적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현대건설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 근거로 제출한 ‘매매계약서’다. 현대건설이 직접 체결한 것이 아니라 대행업체인 Y사를 통해서 받은 이 계약서의 일부가 위조된 사실이 나중에 한 재판을 통해 드러난 것.
향산리에 대지와 논 등 6필지 모두 4129㎡를 소유한 허모(65) 씨는 Y사로부터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당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 자신의 땅에 2000년 12월 법원으로부터 처분금지 결정이 내려진 사실을 알았다.
김포시 고촌면 향산리 일대 위성사진.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깝고 도로 접근성도 뛰어난 데다 한강 조망권까지 갖춘 지역이어서 주목받았던 곳이다. 확대한 부분이 개발예정지.
현대건설 측은 허씨의 소송에 전혀 법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현대건설은 그 대신 2008년 허씨를 상대로 동아건설과 체결한 매매계약 해지에 따른 양수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매매계약서가 위조 논란에 휩싸인 사건은 또 있다. 현대건설이 향산리 주민 기모(58) 씨를 상대로 2005년 11월 제기한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 소송이 그것이다. 기씨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상속받은 땅을 반환하라는 게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이다. 현대건설은 그 근거로 1999년 11월 24일 기씨의 아버지와 체결한 계약서를 제시했다.
소유주와 필적 다르고 막도장 날인
기씨의 아버지는 1997년 9월 1일 동아건설에 향산리 토지 3251㎡를 19억6000여만 원에 매각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해 매매대금의 절반인 9억8000여만 원을 받은 상태였다. 나머지 9억8000여만 원이 잔금으로 남은 상태. 현대건설은 이 토지의 매입권을 1999년 11월 24일 동아건설로부터 사들였고, 당일 기씨의 아버지와 재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2004년 8월 사망했다.
하지만 기씨가 보기엔 현대건설에서 제시한 계약서 자체에 문제가 많았다. 기씨 측은 계약서에 기재된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이름 등이 아버지 필적과 다르고, 도장도 인감도장이 아닌 막도장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기씨 아버지는 평소 자필로 서명하고 인감도장을 사용해왔고 한다.
기씨 측은 여기에 현대건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Y사가 2000년 7월 28일자로 아버지에게 보낸 “매매계약 체결에 협조하지 않으므로 부득이 수용권을 발동하려 한다”는 취지의 통고서를 반론 근거로 제시했다. 만약 현대건설 측의 주장대로 1999년 11월에 계약을 체결했다면 이런 통고서를 보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현대건설은 이에 대행업체인 Y사 C전무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C전무는 계약 체결일에 대해 “현대건설이 문안을 보내줘서 사인한 것인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잘못된 것이었다”면서 계약 체결일을 2000년 9~10월이라고 변경했다. C전무는 이어 계약서 작성 현장에 있었다면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당시 Y사 대표 이OO 씨가 계약서를 준비했다. 계약서 중간에 계좌번호를 쓰게 돼 있는데, 계좌번호는 계약서 작성 당시 기OO 씨(기씨의 아버지)로부터 직접 듣고 이씨가 현장에서 직접 기재했다. 기OO 씨가 서랍에서 꺼내 이씨에게 준 도장은 막도장이었고, 이씨는 그 도장을 계약서에 날인했다.”
기씨의 아버지는 물론,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Y사 대표 이씨마저 2002년 사망한 마당에 C전무는 유일한 증인이었다.
하지만 그 후 문제의 계약서에 결정적인 하자가 발견됐다. 이씨가 기씨의 아버지로부터 직접 듣고 적었다는 계좌번호가 3년 전인 1997년 9월 이미 해지된 폐쇄계좌였다는 것. 이는 앞서 허씨의 위조 계약서와 형식, 필체, 1997년 폐쇄된 계좌번호가 기재된 점까지 모두 똑같았다. 다른 점이라고는 계약 당사자인 기씨의 아버지는 사망했고, 허씨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씨는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Y사가 다른 지주와 체결한 매매계약서 중에도 막도장이 찍힌 게 있다는 점 △계좌의 폐쇄 여부는 통장의 마지막 면을 봐야 알 수 있고, 계약 당시 75세의 고령으로 병석에 있던 기OO 씨가 착오로 폐쇄된 계좌번호를 불러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 △Y사 대표 이OO 씨가 이미 알고 있던 계좌번호를 이용해 위조했다면 폐쇄된 계좌가 아니라 2차 중도금이 지급된 계좌번호를 적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이유로 기씨 측의 주장을 모두 부인했다.
2심에 이어 대법원도 같은 이유로 현대건설 측의 손을 들어줬다. “C전무의 증언을 뒤집고 계약서가 위조됐다고 볼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사건은 종결되지 않았다. 기씨가 2008년 현대건설 측에서 내세운 Y사 C전무 등을 위증 혐의로 형사 고소하자 현대건설 측도 무고죄로 맞대응했다. 팽팽한 진실공방 중 기씨 측은 현대건설 측에서 제시한 문제의 계약서를 실제 작성한 사람을 찾아내 C전무의 위증을 입증하면서 주도권을 잡았다.
계약서를 실제 작성한 사람은 Y사의 대행 용역을 맡은 H공영 총무 이모 씨. 그는 진술서와 방배경찰서 조서에서 “계약서 모든 필체는 자신의 필체이며, 2000년 1월 H공영 사무실에서 (Y사 대표) 이OO의 지시에 따라 작성한 것으로, 그 인장 역시 이OO이 직접 가지고 있던 한글 막도장으로 날인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C전무는 결국 이씨의 진술로 위증 및 무고 혐의로 각각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이씨가 재판 과정에서 “이OO이 가지고 있던 막도장을 날인했다는 부분은 착각이고 잘못 진술했다”고 번복하면서 C전무의 혐의 중 일부는 유죄, 일부는 무죄판결이 났다. Y사 대표가 계좌번호를 계약 현장에서 직접 적었다고 증언한 것은 위증인데, 기씨의 아버지로부터 도장을 받아서 찍었다는 부분은 위증으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김포시는 2008년부터 고촌면 향산리와 걸촌면 일대에 270만㎡ 규모의 대규모 영상복합단지인 ‘한강시네폴리스’(가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개발지 수용을 앞두고 이주대책 보장을 요구하는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기씨 측은 2009년 6월 C전무의 위증 사실을 근거로 다시 서울고법에 재심 청구를 했지만 담당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앞두고 돌연 조정절차에 들어갔다가 판사 교체 이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기각 결정을 내렸다. “C전무의 위증 혐의 중 유죄를 받은 부분은 증명력이 약한 반면, 무죄를 받은 부분은 증명력이 높기 때문”이라는 게 판결 요지다.
기씨 측은 2010년 4월 다시 대법원에 재심 상고심을 제기했다. 현대건설은 이에 그 두 달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에서 물러난 변호사를 포함해 대형 로펌 소속 변호인으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결국 대법원은 기각 결정했다.
기씨 측 변론을 맡았던 안천식 변호사는 “사문서 진위 입증 책임은 현대건설 측에 있다. 그게 법 원칙이다. 그런데 그동안 재판부의 판결을 보면 마치 우리가 위조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것처럼 돼 있다”고 지적했다.
기씨 측과 향산리 지역주민들에 따르면 현대건설이 이처럼 소송에 전력을 투구한 데는 이유가 있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패소할 경우 2000년 당시 현대건설과 합의를 했던 지역주민들이 잇따라 소송을 제기할 여지가 많다는 것.
현대건설 관계자는 그러나 “허씨와 기씨 등 2~3명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주민과는 잔금 미지급 기간이 길어진 데 따른 법정 이자 등을 지급하는 선에서 모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Y사에서 이주단지 조성 계획 등 또 다른 사업을 진행하다 부도덕하게 계약서를 위조한 경우가 많아 위약금을 무는 등 우리도 손해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위조계약서를 둘러싼 잇따른 소송. 현대건설은 한 번은 지고 한 번은 이겼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