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일 충남 청양군 충남축산기술연구소 인근에서 키우던 소와 송아지가 살처분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2000년, 2002년, 2010년 1월과 4월 등 모두 4차례 구제역이 발생했다. 그러나 다행히 초기 방역에 성공해 이번만큼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표 참조). 그래서 2010년 5월 TBS, TV도쿄 등 일본 방송사는 일본과 한국의 구제역 대처상황을 비교하며 일본 방역당국이 미야자키(宮崎) 현의 구제역에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태를 키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야자키 현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것은 2010년 3월 26일. 하지만 방역당국은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4월 9일 두 번째 신고가 있었지만 3주가 지난 20일에야 양성으로 확진했다. 구제역 감염이 확인된 뒤에도 살처분 가축의 매몰지를 선정하지 못해 시간을 지체했으며, 법적 근거가 없어 확산 방지를 위한 예방적 살처분도 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5월 하순에 이르러서야 예방적 살처분이 가능하도록 한 구제역특별조치법(2012년 3월 말까지 한시법)을 긴급 제정했다.
일본 언론이 칭송해 마지않던 우리의 방역시스템이 겨우 6개월 만에 무너진 이유는 도대체 뭘까. 어떻게 안동발 구제역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일까.
구제역 재앙의 첫 번째 원인은 구제역 긴급행동지침을 지키지 않은 정부의 직무유기와 도덕적 해이로 인한 초기 방역 실패다.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2010년 10월 구제역 긴급행동지침을 개정해 “구제역 의심신고를 받은 시장·군수 및 시도 가축방역기관장은 ‘의사환축 발생신고서’를 작성해 시·도지사 및 수의과학검역원장에게 통보해야 하며, 시·도지사는 의사환축 발생 사실을 농식품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지침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의 직무유기와 도덕적 해이
2011년 1월 4일 김포시 월곳면 한 축산농가의 축사가 구제역 돼지에 대한 살처분 이후 텅 비었다.
가축은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1~2주가 지나야 항체가 형성된다. 따라서 항체 간이 진단 키트 검사는 바이러스가 가축 몸에 들어왔더라도 항체가 형성되지 않으면 음성으로 판정되기 때문에 초기 진단법으로 전혀 쓸모가 없다. 정확한 판정을 위해서는 항원(바이러스)의 유무를 확인하는 항원 간이 키트 검사, 항원 ELISA(효소 결합 면역 분석), 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등의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
구제역과 같은 고위험군 바이러스의 항원 검사를 하려면 특수 차폐시설을 갖춘 생물안전등급(Biosafety Level) 3등급 이상의 시설을 갖춰야 한다. 현재 3등급 이상 시설은 전국 18곳에 불과하며, 구제역 항원검사를 실시할 수 있는 곳은 경기 안양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하 검역원)이 유일하다. 농식품부도 이러한 방역시스템의 허점을 알고 있기에 2010년 1월 15일 “구제역 신고 때 초기 검사체계를 개선해 시·도의 가축방역관이 구제역 의심 증상 신고가 들어오면 의무적으로 검역원에 통보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농식품부가 이런 발표를 한 것은 2010년 1월 경기 포천시에서 발생한 구제역 사례에서 이미 안동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월 2일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는 구제역 항체 형성 유무를 확인하는 간이 키트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자 구제역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아무런 방역조치도 하지 않았으며 검역원에 정밀검사 의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제역 의심 증상은 계속 나타났고,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는 1월 6일에 이르러서야 해당 농장을 다시 방문해 농식품부에 신고했다. 검역원에서 항원을 검사하는 정밀검사를 한 결과 1월 7일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왔다. 당시 검역원은 구제역 조기진단을 위해 “‘이상 증세가 발견되면 즉시 검역원에 신고하라’는 긴급행동지침을 책자로 만들고 매년 3~5월 구제역 특별대책기간에 일선 방역기관에 홍보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검역원은 당시 구제역이 추가로 발생한 이유에 대해 “일선 방역기관이 긴급지침을 무시하고 간이 키트에 의존해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식품부는 2010년 3월 10일 “구제역 방역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개선하고 축산업 선진화를 위해 가축질병 관련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팀(TF)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5월 14일 농식품부는 구제역 대처를 잘했다고 ‘재난 및 안전관리’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7월 20일에는 축산단체, 농협, 대한수의사회, 농촌진흥청, 검역원, 지방자치단체, 축산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제도개선 TF의 논의를 통해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하지만 축산업 선진화를 이룩하겠다던 정부의 공약은 그야말로 빈말이 되고 말았다. 서류상으로 아무리 훌륭한 방안을 만들어내도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축산농가 방역의식 미비
구제역 예방을 위해선 농장 인근에 샤워장을 설치해 모든 차량과 사람의 소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검역원은 2010년 5월 17일 ‘2010년 구제역 역학조사·분석 결과’ 중간발표를 통해 “구제역 유입 원인에 대해 경기 포천(구제역 바이러스 A형)은 농장에 고용된 동북아시아 출신 농장노동자, 인천 강화(구제역 바이러스 O형)는 동북아시아 국가를 여행한 농장주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1년이 채 안 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것이다.
안동의 경우 구제역 발생 전후로 분뇨처리 시설업체 관계자들이 최초 발생 농가를 두 차례나 방문한 것도 문제다. 해당 업체 관계자들은 분뇨 샘플 채취를 위해 11월 17일 1차로 이 농가를 다녀왔고, 25일 또 방문해 이튿날인 26일 경기 파주시로 돌아왔다. 이후 이 업체는 별다른 방역조치를 하지 않고 경기도의 여러 농가를 방문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분변에서 여름철엔 14일, 겨울철엔 무려 6개월 동안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역학관계상 분뇨 차량이 경기 연천·양주 구제역 확산의 도화선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사료 차량과 도축 차량도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다. 구제역이 경북 남부지역으로 전파된 경로로 사료 차량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으며, 강원과 경기 남부로 퍼진 것은 도축 차량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안동에서 구제역 확정 판정이 나기 전까지 이 차량은 안동의 양돈농가에서 강원 원주시 도축장으로 가축을 실어 날랐으며, 경기 여주, 강원 강릉, 경북 영주 등의 소도 운반했다. 유럽 등에서는 도축 차량이나 사료 차량이 축사를 출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외부 출하대를 따로 설치해 일상적으로 차단 방역을 실시한다.
역학조사를 통해 2010년 1월과 4월에 발생한 구제역의 전파 경로는 축산 관련자 모임, 농장주나 농장노동자의 오염지역 방문, 사료 운송, 송아지 운송과 아울러 약품판매상, 대인소독기 배송차량, 농장 컨설턴트, 치킨 배달차량, 수의사의 진료, 방역 관련 종사자, 인공수정사 등의 방문으로 밝혀졌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신발이나 의복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60~100일이나 된다. 따라서 축산업 종사자들의 개인위생과 방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뿐 아니라 개, 고양이, 쥐 등도 구제역을 옮기는 전파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개별 농장의 청소와 소독을 소홀히 하면 절대 안 된다.
구제역 재앙의 세 번째 요인은 계절적 요인이다. 37년 만의 한파와 폭설로 방역작업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구제역 차단 방역에 사용하는 생석회는 수분과 접촉해 발생하는 열과 강알칼리 성분으로 소독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도로와 농장 주변에 물을 뿌릴 경우 한파로 인해 빙판이 형성돼 사고위험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분말만 살포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영하 10℃ 안팎의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 탓에 소독약이 얼어붙어 자동살포기 등 방역설비도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웠다.
구제역 재앙의 네 번째 요인은 정부의 초기 백신정책 실패다.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12월 22일 긴급 가축방역협의회를 열어 백신정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정부는 30만 두분의 백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항원 120만 두분을 구입해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북, 경기, 강원 3개 시·도 16개 지역에서 48건의 구제역 발생을 확인한 상황임에도 경북 안동과 예천, 경기 파주, 고양, 연천 등 5개 지역의 구제역 발원지를 중심으로 10km 반경 지역만 백신 접종 대상으로 정했다. 게다가 돼지를 제외하고 소에게만 링(Ring) 백신을 접종하기로 했다.
돼지는 소에 비해 약 3000배 많은 고농도의 바이러스를 공기 중으로 내뿜는다. 소는 호흡을 통해 하루 평균 12만5000개 정도의 구제역 바이러스를 배출하는 반면, 돼지는 코와 입을 통해 약 4억 개를 배출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구제역이 소에서 발생하면 농장에서 500m 떨어진 곳까지만 살처분 지역으로 삼지만, 돼지에서 발생하면 그 범위를 3km로 늘린다. 그만큼 돼지의 전염성과 전파력이 크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농식품부는 돼지를 백신 대상에서 계속 제외해오다 2011년 1월 7일이 돼서야 안성, 이천, 충주, 보령 등 13개 지역에 한정해 씨돼지와 어미돼지 21만 마리의 백신 접종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5개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링 백신 접종지역은 계속 불어났다. 정부는 2010년 12월 26일 여주, 이천, 양평 3개 지역도 예방접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으며, 28일에는 충주, 강화, 양주, 포천을 추가했다. 2011년 1월 5일 전국 49개 지역으로 확대했으며, 11일에는 103개 시·군 9만7908농가의 211만9831마리로 늘렸다.
전국 백신 접종이 마지막 카드
결국 정부는 1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구제역 긴급대책회의에서 백신 예방접종을 전남·북, 경남 등 전국으로 확대키로 했다. 전국 백신 접종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빼든 것. 정부는 일본에서 백신 20만 개를 대여해오고 1월 말까지 650만 개를 수입할 예정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0년 12월 1일 기준 전국에서 총 1323만3000마리의 소와 돼지를 사육했으나(소 335만2000마리, 돼지 988만1000마리) 현재 소의 3.6%, 돼지의 13%를 살처분했고 소 57%, 돼지 2.2%가 백신을 접종받았다.
백신 접종 후 항체가 형성되려면 최소 1~2주가 필요하다. 항체 형성을 증강하기 위해선 1개월 후 추가 접종을 해야 한다. 접종하면 소는 85%, 돼지는 40% 정도 방어율이 형성되고, 항체 효과는 6개월간 지속된다. 소는 추가 접종으로 97.5%까지 방어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물론 항체가 형성되기 전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가 보균자(carrier)가 돼 구제역 바이러스를 3년 이상 지속적으로 퍼뜨릴 위험이 있고, O형이 아닌 다른 혈청형의 바이러스가 새롭게 유입될 경우 구제역이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백신 접종과 양성 가축의 살처분 및 매몰 병행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만약 1월 말까지 구제역이 종식되지 않는다면, 2월 초 설 연휴 때 전국적인 대규모 이동으로 구제역이 더욱 퍼질 위험이 높다. 자칫 국내 축산업을 붕괴시킬 대재앙이 될 수도 있다. 국가적 재난으로 확대돼버린 구제역 사태가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멈출 수 있도록 각계에서 더욱 노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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