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 유머도 자꾸 하는 게 좋아”
“반은 선천적이고 반은 후천적이에요. 저는 어머니의 유머 감각을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곧잘 웃기는 편이었죠. 하지만 유머도 창의력의 산물이기에 노력으로 기를 수 있어요. 방법이요? 출발은 무엇보다 ‘단어’죠.”
유머 감각을 기르는 실질적인 팁을 알려달라는 주문에 그는 ‘단어 활용법’을 꺼내들었다. 유머란 기발한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 다시 말해 기발한 단어 간의 조합을 머릿속에 저장해두면 적재적소에 써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가불해달라”는 상대방의 말에 “가불은 불가”라고 답하거나, “이혼하자”는 요구에 “이혼하면 혼이나”라고 받아치는 식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금만 연습하면 정말로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시도하려니 어려웠다. 고민하는 기자에게 그가 추가 팁을 던져줬다.
“단어를 거꾸로 생각하는 연습, 비슷한 단어를 연상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몇 가지 리듬이 잡혀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단어도 즉각 응용할 수 있는 감각이 생기는데, 그게 곧 유머 감각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깨는 것이에요. 내가 먼저 망가지고 많이 웃으면 자연스럽게 남을 웃길 에너지가 솟아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 박 대표는 10월 14일 당 소속 여성 의원들과 가진 오찬에서 ‘썰렁 유머’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그 유머는 바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세 단계는?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20년 전부터 귀에 왁스가 앉도록 들어온 유머의 고전이지만, 박 전 대표는 그 유머를 자신의 메시지로 만들었다. “현실적으론 불가능한데 말로만 하면 그럴듯한 것이 있지 않느냐”라는 코멘트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 신 교수는 “재미를 떠나 노력을 통해 자리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일부 정치인은 개그작가 출신의 조언자를 곁에 두고 있어요. 꾸준히 유머를 써주면 외웠다가 필요한 자리에서 활용하는 거죠. 솜씨 없는 며느리가 요리를 하려다 음식을 태워먹으면 더 사랑스럽듯, 유머를 배우려는 의지는 칭찬할 만하죠.”
2% 모자란 유머 감각은 비단 박 전 대표의 고민만은 아닐 터.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유머 감각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무기다. 특히 최근 유머 감각은 리더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자질로 통한다. 그래서 상당수 최고경영자(CEO)나 정치인이 유머 책을 뒤적이거나 작가들의 도움을 받는다. 신 교수는 “유머는 의사소통뿐 아니라 조직 내 소통과 분위기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짐 캐리가 그랬죠. 유머가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해도 상처 난 곳에 붙이는 반창고 노릇은 할 수 있다고. 유머 있는 리더가 이끄는 회사는 분위기가 좋고 감동이 살아나게 돼요. 자연히 직원들의 창의력과 사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요. 높은 분들이 먼저 몸을 낮추고 많이 웃어야 합니다. ‘단어 활용법’도 많이 연습하시고요.”
신 교수는 코미디 작가 출신이다. 1986년부터 활동하며 ‘일요일 일요일 밤에’ ‘폭소클럽’ ‘시사터치 코미디파일’ 등 히트작을 쏟아냈다. 2004년 KBS 방송연예대상 작가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2006년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프로그램에서 잘렸고, 절친하게 지내던 개그맨 김형곤 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둘도 없는 유머 동지 김형곤 씨의 영정을 들었는데, 똑 닮은 외모에 사람들은 그를 동생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김형곤 씨와는 같은 기러기 아빠에 코드가 잘 맞아 형제처럼 지냈어요. 제가 유머 강사로 인생 2모작을 시작하게 된 것도 김형곤 씨 덕분이고요. 김형곤 씨가 세상을 떠나 ‘펑크’ 난 강의를 제가 대신 맡아 한 뒤 전업을 하게 됐거든요.”
초등생부터 유머 교육해야
“유머러스한 사람은 인간관계도 좋고 행복할 것만 같죠? 늘 웃으니까요. 하지만 코미디를 하려는 제자 중에 결손가정 아이가 굉장히 많아요. 엄마나 아빠가 한 명 더 있는. 유년의 상처를 놓고 자신이 웃는 것을 넘어 상대를 웃기는 코미디로 극복하려는 거죠. 하지만 노력에도 한계가 있어요. 고 최윤희 씨도 ‘행복전도사’로 웃음이 넘치는 분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앓던 병으로 700가지 고통이 있었다지만, 그렇다면 800가지 고통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겠어요. 그럼에도 고인의 선택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 오랜 시간 코미디 주변에 머물렀지만 마음은 심각한 날이 많았다. 코미디 작가를 하면서 출연진에게 매일같이 아이디어를 독촉했고, 때로는 심하게 ‘쪼았다’. 당시에는 ‘코미디 하는 후배들의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자위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프로그램 시청률을 위한 것이었고, 진정으로 코미디를 사랑하진 않았다. 자연히 일상에서는 찌푸리는 일이 잦았다. 코미디를 만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유머의 여유를 전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진짜 웃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당신하고 못 살겠다”라는 아내의 돌발 선언이 계기가 됐다.
“성인의 아내가 대부분 악처인 이유를 아세요? 밖에서는 공염불을 해도 집구석에서 하는 꼴을 보면 아내로선 닦달할 수밖에 없죠. 저도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다줬는데 어느 날 아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충격이더군요. 그때부터 작정하고 아내에게 따뜻한 유머를 건네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우리 부부 사이가 좋아진 뒤로 아들의 얼굴이 밝아져서 좋아요.”
학교 강의와 외부 강의 일정으로 다이어리가 빼곡하지만, 그는 넘치는 유머 본능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꾸미는 중이다. 바로 대한민국에 유머 교육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유머는 머리가 ‘국어 빨대’가 되기 전 몸으로 익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이를 위해 일산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유머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최초의 코미디 라이터로 청와대에 입성해 ‘살가운 정치’를 구현하고 싶다. 이렇듯 대한민국을 웃음 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한 신 교수의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 중이다.
“‘구글’이나 ‘픽사’는 분위기가 놀이터 같잖아요? 편안함과 유머는 곧 창의력과 직결돼요. 학교가 웃고 학생이 웃어야 미래를 밝힐 수 있는 거죠. 재미있는 교사, 웃긴 남편과 아내, 개그콘서트를 여는 아이들이 널린 사회를 꿈꿔요.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 조금씩 보여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