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정릉3동 꼬불꼬불 주택가 속에 대문이 활짝 열린 ‘영락그린빌’. 마당에 곧게 뻗은 초록 나무들과 사이사이 잘 닦인 산책로만 보면 일반 빌라촌의 모습이지만, 이곳에는 특별한 가족들이 산다. ‘영락그린빌’의 또 다른 이름은 ‘영락모자원’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한경직 목사와 밥 피어스 선교사가 한국 최초로 설립한 부녀보호시설로, 설립 초기에는 배우자와 사별 또는 이혼한 여성이 많았지만 최근 미혼모의 입주가 크게 늘었다. 현재 영락모자원에 머물고 있는 31가정 중 22가정, 즉 3분의 2가 미혼모 가정이다. 유순도 원장은 “처음 모자원에 부임한 2008년만 해도 이혼, 사별 가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거주자, 신청자 대다수가 미혼모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
“집이 좁은데 어떡하죠. 어서 들어오세요.”
B동 4층 준서(5)네 집. 9평 남짓한 집은 거실 겸 침실에 부엌 한 칸, 화장실이 전부지만 아늑했다. 한 달 전 이사할 때 새로 바른 꽃무늬 벽지가 산뜻했다. 남들에게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이 집은 준서 엄마 최형숙(38) 씨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다. 최씨는 2005년 혼자 준서를 낳고 고군분투하다, 결국 1년간의 대기 끝에 이전 전셋집을 처분하고 이곳에 들어왔다.
2층 혜영이(2·가명)네도 가족이 단출하다. 혜영이 엄마 김모(37) 씨는 2008년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낳은 후 ‘중간의 집’이라는 그룹홈에 들어갔다. 아이와 엄마가 방 1개씩을 쓰고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을 다섯 가정이 함께 써야 하는 그룹홈에서 10개월가량 지내는 동안 김씨는 늘 짐을 싸놓고 살았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신청한 지 1년 만에 성북구청으로부터 “영락모자원에 자리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 모자원에 들어왔다. 당시 혜영이네는 같이 지내던 모든 미혼모의 부러움을 샀다.
한 해 시설에 입소하는 미혼모의 수는 2000여 명. 특성상 통계에 잡히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은 미혼모가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국가청소년위원회는 “해마다 5000~6000명의 청소년 미혼모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청소년 미혼모는 물론이고 성인 미혼모도 생활능력이 없거나 혼자 가계를 꾸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최씨는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서 미혼모 170명의 취업 실태를 조사했는데, 출산 후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 복귀한 사람은 단 3명뿐이었다. 그나마 그중 2명은 미혼모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경우”라고 말했다. 최씨 역시 스물여덟 살에 서울로 와 7년간 직장 다니며 돈도 적잖이 모아뒀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매년 생활비로 1000만~2000만 원을 쓰다 보니 통장 잔고가 금세 바닥났다. 미혼모 중 고정 수입이 없는 경우에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도 벅차다.
그런 미혼모들에게 2~3년간 집 걱정을 덜어주는 모자원은 ‘생명의 동아줄’이다. 신청자는 많지만 서울시내 6개 모자원에 입소 기회를 얻는 모자 가정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영락모자원에 입소를 신청한 가정은 모두 60가구.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로 관할구청에 신청한 뒤 순서대로 입소하는데 보통 1~2년 기다려야 한다.
미혼모들이 모자원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 원장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입양을 보내지 않고 양육까지 하는 미혼모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혼모 김씨는 “이혼하거나 사별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사회 경험도 있는 경우가 많아 월세집이라도 구해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만, 어린 미혼모들은 모자원을 선호한다”며 “대부분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자마자 모자원 입소를 신청한다”고 덧붙였다. 유 원장의 아내 이희승 씨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어린 엄마들을 볼 때마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지키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입양됐거나 고아원에 보내졌겠죠. 직접 데리고 살아보겠다고 하는 게 얼마나 착해요.”
보육실 있어 젊은 엄마들 미래 설계
미혼모가 증가하면서 모자원 아이들의 평균연령도 낮아졌다. 2008년까지는 대부분이 초등학생이었지만 현재 영락모자원에 초등학생은 단 3명. 중학생, 고등학생도 각각 4명뿐이고, 나머지 24명이 모두 만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이다. 엄마들 대부분이 일을 하기 때문에 오전에 아이를 사설 어린이집에 맡긴다. 하지만 퇴근할 때까지 어린이집에 맡겨놓을 순 없으므로 영락모자원은 올 6월부터 미취학 아동을 오후 6시부터 엄마가 올 때까지 돌봐주는 보육실을 만들었다. 오후 6시가 넘으면 낮 동안 어린이집에 있었던 아이들이 속속 보육실로 온다. 정규 보육교사 2명과 대학생 자원봉사자 4명이 17명 내외의 아이를 돌보다 보니 보육실은 금세 난장판. 간식도 먹고 게임도 하니 아이들은 신이 났다. 김진선 과장은 “보육실이 있기 전엔 엄마들이 일 끝나고 허둥지둥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육실이 생기니 편하게 퇴근해 매우 좋아한다”며 “보육실 때문에 영락모자원에 지원하는 미혼모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모자원 중 별도의 보육실이 있는 곳은 영락모자원뿐이다. 영락모자원도 보육실을 만들 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공사비 총 4000만 원을 영락사회복지재단에서 부담했다. 이후 고용한 보육교사 월급도 재단 몫이다. 유 원장은 “미혼모가 계속 증가하는 만큼, 다른 모자원에도 미취학 아동이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예산을 출연해 다른 모자원에도 미취학 아동 보육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낮 동안 모자원은 조용하다. 집집마다 문이 닫혀 있고, 정원을 오가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 모자원 엄마들 중에는 간호조무사, 미용보조, 음식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는 사람도 많고, 보수는 적지만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자활근로 프로그램을 하는 이도 많다. 여성인력개발원에서 무상직업훈련을 실시하지만 현재 직업교육을 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당장 나가서 돈을 벌지 않으면 매달 국민기초수급권자로서 받는 1인당 13만2000원(2인 가족은 26만 원, 3인 가족은 39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 전문 직업교육을 받지 않으면 나중에 분식집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일 안 하고 정부가 주는 교육수당만으론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유 원장은 “정부가 직업훈련수당을 현실화해야 엄마들이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자립해서 탈수급권자가 된다. 그러면 정부 재정에도 보탬이 되니 일석이조”라고 덧붙였다. 사정상 취업교육을 받지 못한 모자원 엄마들 상당수는 고등검정고시에 응시하거나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이곳에 ‘모자원’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으니 몇몇 아이가 부끄러워하더군요. 중·고등학생 중에는 일부러 빙 둘러서 집에 오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그린빌’로 바꾼 겁니다.”
유 원장도 어렸을 때 1년간 모자원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당시 유 원장은 부끄러운 마음에 친구를 집에 데려오기는커녕 집 주소를 말하지도 않았다. 유 원장은 “지금 영락모자원에 있는 아이들이 나 같은 아픔을 겪으면 무척 속상할 것 같아 모자원을 부끄럽지 않은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자원의 정원을 예쁘게 가꿔 주민도 오갈 수 있도록 했고, 모자원에 사는 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오는 것도 환영이다.
“모자원 아이를 따라 놀러 온 초등학생 한 명이 ‘여기엔 운동장도 있고 체력단련실도 있어서 좋다’며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퇴소 시 500만 원·무상임대주택 지원도
입소 후 최장 3년까지 머물 수 있는데, 2년 이상 거주한 가정이 퇴소할 때는 자립금 500만 원을 제공한다. 하지만 모든 가정은 들어오는 순간부터 퇴소가 걱정이다. 3년간 모은 돈과 자립금으로는 모자원 같은 좋은 환경의 거처를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 이를 위해 2009년 영락모자원은 SH공사에서 연립주택 건물 한 동을 무상 임대해 ‘영락드림빌’을 세웠다. 모자원에서 퇴소하는 사람 중 준비가 안 된 경우는 무상으로 드림빌에서 2년간 지낼 수 있게 해준다. 총 12가구 중에 2009년 4가구가 찼다. 유 원장은 “정부 측에서 자립 의지를 가진 미혼모 가정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모자원이나 무료 주택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집 걱정을 덜어주고 직업교육을 시키고 양육을 도와주는 이 세 가지만 하면 미혼모는 금방 자립할 수 있습니다. 미혼모들이 아이를 잘 길러야 저출산 문제도 극복하고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김씨는 이곳에 와서야 인생을 계획하며 살게 됐다. 올 3월 세계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1학기 성적장학금을 받았고,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장애인 학생의 학습을 보조는 일자리도 얻었다. 그렇게 하루 7시간 주5일 근무해서 버는 돈은 매달 70만 원 내외. 국민기초수급권자로 매달 정부와 모자원에서 받는 약 30만 원을 합하면 총수입은 100만 원 정도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쪼개고 쪼개 30만 원짜리 정기적금도 들고 청약통장도 만들었다. 2012년 10월 퇴소 때까지 최대한 모아 고향 전라도 나주로 돌아가 혜영이랑 알콩달콩 살고 싶다.
“아기를 보면 ‘눈 깜짝할 사이 내 인생이 이렇게 변했구나’ 하며 서글퍼질 때가 있어요. 그래도 말도 제법 하고 밥도 잘 먹는 아기 보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기가 없을 때는 세금만 냈지 나라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는데, 모자원에 온 뒤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기가 아니었다면 집도 직업도 없이 아기를 어떻게 키웠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
“집이 좁은데 어떡하죠. 어서 들어오세요.”
B동 4층 준서(5)네 집. 9평 남짓한 집은 거실 겸 침실에 부엌 한 칸, 화장실이 전부지만 아늑했다. 한 달 전 이사할 때 새로 바른 꽃무늬 벽지가 산뜻했다. 남들에게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이 집은 준서 엄마 최형숙(38) 씨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다. 최씨는 2005년 혼자 준서를 낳고 고군분투하다, 결국 1년간의 대기 끝에 이전 전셋집을 처분하고 이곳에 들어왔다.
2층 혜영이(2·가명)네도 가족이 단출하다. 혜영이 엄마 김모(37) 씨는 2008년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낳은 후 ‘중간의 집’이라는 그룹홈에 들어갔다. 아이와 엄마가 방 1개씩을 쓰고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을 다섯 가정이 함께 써야 하는 그룹홈에서 10개월가량 지내는 동안 김씨는 늘 짐을 싸놓고 살았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신청한 지 1년 만에 성북구청으로부터 “영락모자원에 자리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 모자원에 들어왔다. 당시 혜영이네는 같이 지내던 모든 미혼모의 부러움을 샀다.
한 해 시설에 입소하는 미혼모의 수는 2000여 명. 특성상 통계에 잡히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은 미혼모가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국가청소년위원회는 “해마다 5000~6000명의 청소년 미혼모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청소년 미혼모는 물론이고 성인 미혼모도 생활능력이 없거나 혼자 가계를 꾸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최씨는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서 미혼모 170명의 취업 실태를 조사했는데, 출산 후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 복귀한 사람은 단 3명뿐이었다. 그나마 그중 2명은 미혼모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경우”라고 말했다. 최씨 역시 스물여덟 살에 서울로 와 7년간 직장 다니며 돈도 적잖이 모아뒀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매년 생활비로 1000만~2000만 원을 쓰다 보니 통장 잔고가 금세 바닥났다. 미혼모 중 고정 수입이 없는 경우에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도 벅차다.
그런 미혼모들에게 2~3년간 집 걱정을 덜어주는 모자원은 ‘생명의 동아줄’이다. 신청자는 많지만 서울시내 6개 모자원에 입소 기회를 얻는 모자 가정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영락모자원에 입소를 신청한 가정은 모두 60가구.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로 관할구청에 신청한 뒤 순서대로 입소하는데 보통 1~2년 기다려야 한다.
미혼모들이 모자원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 원장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입양을 보내지 않고 양육까지 하는 미혼모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혼모 김씨는 “이혼하거나 사별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사회 경험도 있는 경우가 많아 월세집이라도 구해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만, 어린 미혼모들은 모자원을 선호한다”며 “대부분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자마자 모자원 입소를 신청한다”고 덧붙였다. 유 원장의 아내 이희승 씨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어린 엄마들을 볼 때마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지키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입양됐거나 고아원에 보내졌겠죠. 직접 데리고 살아보겠다고 하는 게 얼마나 착해요.”
보육실 있어 젊은 엄마들 미래 설계
요즘 부쩍 질문이 많아진 다섯 살 준서와 준서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의 행복한 보금자리.
전국 모자원 중 별도의 보육실이 있는 곳은 영락모자원뿐이다. 영락모자원도 보육실을 만들 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공사비 총 4000만 원을 영락사회복지재단에서 부담했다. 이후 고용한 보육교사 월급도 재단 몫이다. 유 원장은 “미혼모가 계속 증가하는 만큼, 다른 모자원에도 미취학 아동이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예산을 출연해 다른 모자원에도 미취학 아동 보육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낮 동안 모자원은 조용하다. 집집마다 문이 닫혀 있고, 정원을 오가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 모자원 엄마들 중에는 간호조무사, 미용보조, 음식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는 사람도 많고, 보수는 적지만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자활근로 프로그램을 하는 이도 많다. 여성인력개발원에서 무상직업훈련을 실시하지만 현재 직업교육을 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당장 나가서 돈을 벌지 않으면 매달 국민기초수급권자로서 받는 1인당 13만2000원(2인 가족은 26만 원, 3인 가족은 39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 전문 직업교육을 받지 않으면 나중에 분식집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일 안 하고 정부가 주는 교육수당만으론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유 원장은 “정부가 직업훈련수당을 현실화해야 엄마들이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자립해서 탈수급권자가 된다. 그러면 정부 재정에도 보탬이 되니 일석이조”라고 덧붙였다. 사정상 취업교육을 받지 못한 모자원 엄마들 상당수는 고등검정고시에 응시하거나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이곳에 ‘모자원’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으니 몇몇 아이가 부끄러워하더군요. 중·고등학생 중에는 일부러 빙 둘러서 집에 오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그린빌’로 바꾼 겁니다.”
유 원장도 어렸을 때 1년간 모자원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당시 유 원장은 부끄러운 마음에 친구를 집에 데려오기는커녕 집 주소를 말하지도 않았다. 유 원장은 “지금 영락모자원에 있는 아이들이 나 같은 아픔을 겪으면 무척 속상할 것 같아 모자원을 부끄럽지 않은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자원의 정원을 예쁘게 가꿔 주민도 오갈 수 있도록 했고, 모자원에 사는 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오는 것도 환영이다.
“모자원 아이를 따라 놀러 온 초등학생 한 명이 ‘여기엔 운동장도 있고 체력단련실도 있어서 좋다’며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퇴소 시 500만 원·무상임대주택 지원도
입소 후 최장 3년까지 머물 수 있는데, 2년 이상 거주한 가정이 퇴소할 때는 자립금 500만 원을 제공한다. 하지만 모든 가정은 들어오는 순간부터 퇴소가 걱정이다. 3년간 모은 돈과 자립금으로는 모자원 같은 좋은 환경의 거처를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 이를 위해 2009년 영락모자원은 SH공사에서 연립주택 건물 한 동을 무상 임대해 ‘영락드림빌’을 세웠다. 모자원에서 퇴소하는 사람 중 준비가 안 된 경우는 무상으로 드림빌에서 2년간 지낼 수 있게 해준다. 총 12가구 중에 2009년 4가구가 찼다. 유 원장은 “정부 측에서 자립 의지를 가진 미혼모 가정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모자원이나 무료 주택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집 걱정을 덜어주고 직업교육을 시키고 양육을 도와주는 이 세 가지만 하면 미혼모는 금방 자립할 수 있습니다. 미혼모들이 아이를 잘 길러야 저출산 문제도 극복하고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김씨는 이곳에 와서야 인생을 계획하며 살게 됐다. 올 3월 세계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1학기 성적장학금을 받았고,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장애인 학생의 학습을 보조는 일자리도 얻었다. 그렇게 하루 7시간 주5일 근무해서 버는 돈은 매달 70만 원 내외. 국민기초수급권자로 매달 정부와 모자원에서 받는 약 30만 원을 합하면 총수입은 100만 원 정도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쪼개고 쪼개 30만 원짜리 정기적금도 들고 청약통장도 만들었다. 2012년 10월 퇴소 때까지 최대한 모아 고향 전라도 나주로 돌아가 혜영이랑 알콩달콩 살고 싶다.
“아기를 보면 ‘눈 깜짝할 사이 내 인생이 이렇게 변했구나’ 하며 서글퍼질 때가 있어요. 그래도 말도 제법 하고 밥도 잘 먹는 아기 보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기가 없을 때는 세금만 냈지 나라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는데, 모자원에 온 뒤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기가 아니었다면 집도 직업도 없이 아기를 어떻게 키웠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