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금(金)추’가 널려 있네요.”
배추 품귀현상으로 식당에서 김치가 사라지고 배추를 사재기하는 사람까지 나타나자, 시중에선 천정부지로 값이 오른 배추를 금에 빗대 ‘금추’라 부르는 우스갯소리마저 생겨났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30년째 배추농사를 짓는 김윤수(65) 씨의 1만6529㎡(약 5000평) 밭에선 11월 출하를 앞두고 ‘금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번 배춧값 상승으로 큰돈 벌었겠다”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이러나저러나 받는 게 비슷해. 지난해처럼 파묻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지.”
배보다 배꼽이 큰 배추
9월 생선과 채소 등 신선식품 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5%나 올랐다. 열무와 상추는 3배 이상 뛰었고, 배추와 무도 2배 넘게 비싸졌다. 한 달 전과 비교해서도 상승폭은 컸다. 호박·상추가 각각 131.4%와 101%, 파·배추도 2배 가까이 올랐다. 채소 가격이 오르면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를 기록해 8개월 만에 3%를 넘어섰다. 특히 신선식품 중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추의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8월 하순까지 2500원에 머물던 배춧값은 불과 며칠 사이에 5000원을 뛰어넘더니 9월 한때 1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배춧값이 폭등한 까닭은 올여름 유독 비가 많았던 탓으로 분석된다. 8월부터 9월 말까지 강원도내 김장채소 주산단지 3곳에 내린 평균 강수량은 736.7㎜로, 지난해 295.0㎜보다 무려 441.7㎜의 비가 더 내렸다. 잦은 비로 일조시간이 크게 줄어 올해 3곳의 평균 일조시간은 235.7시간으로 지난해보다 61.7시간이나 줄었다. 강수량이 늘면서 7, 8월에 파종한 배추가 제때 출하되지 못하자 배춧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시적으로 수급이 불안정하면 저장품 등을 통해 조절해야 하지만, 저장이 어려운 배추는 그렇게 수급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배추대란의 원인이 모두 ‘기후 탓’일까. 안양대 무역유통학과 김동환 교수는 “배추의 가격 변동폭이 큰 이유 중 하나가 농산물 유통시스템의 전근대성이다. 유통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언제든 제2, 제3의 배추대란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유통시스템 때문에 수급이 불안정하니 가격도 덩달아 불안정하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배추는 ‘농민-산지유통인-도매시장-중·도매인-소매상’이란 다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해진다. 그 과정은 배추 농가들이 밭떼기를 하는 데서 시작한다. 밭떼기란 생산자가 밭작물을 밭에 있는 채로 몽땅 파는 것을 일컫는다. 생산자 편에서는 상품가격이 급격히 하락해 발생하는 손실을 줄이고, 중개상은 상품가격이 상승해 발생하는 손실을 대비할 수 있어 배추 농가의 80% 이상이 밭떼기를 한다.
7월 초 김씨는 배추밭 3305㎡((약 1000평)에 심어놓은 배추 1만5000포기를 550만 원에 산지유통인에게 밭떼기로 넘겼다. 배추 1포기당 그가 받은 가격은 367원. 김씨는 “배추가 귀해지면서 한때 1000원 가까이 오르긴 했지만, 대략 농민이 받는 금액은 300~700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산지유통인에게 넘겨진 배추에는 운송비·하역비 명목의 물류비가 추가된다. 배추는 부피가 커서 물류비가 많이 드는 데다, 중간유통 과정에서 손실(감모)이 많이 생긴다. 1t 트럭 기준으로 50만 원 정도의 물류비가 든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물류비가 소매가격의 10~15%를 차지한다. 감모비가 10~11%, 점포임대료 같은 간접비용이 10% 내외, 중간상인 및 유통업체의 이윤이 30~35%를 차지한다.
공판장 경매를 통해 등급별로 분류된 배추는 1포기에 1000~3000원으로 중·도매인에게 경락된다. 경매 전후의 가격 차가 적게는 200~300원, 많게는 1000~ 2000원 발생하며 이는 중간상인의 마진이다. 중간상인은 이 마진의 7%를 경매수수료로 공판장에 납부한다. 경락받은 중·도매인은 경락가의 4%를 붙여 유통점이나 산매상(소매상)에 넘긴다. 소매상에서는 적정 마진(약 25%)을 남기고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단돈 몇백 원에 출하된 배추는 어느덧 3000~4000원으로 몸값이 올라 있다. 배(원가)보다 배꼽(유통마진)이 훨씬 커진 셈이다. 이 상황에서 산지공급량이 줄면 가격이 폭등하고, 늘면 폭락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계약재배 및 직거래 늘려야
농수산물유통공사의 ‘농산물 유통실태 조사’(2008년)에 따르면, 국내 농산물 유통비용은 소비자 지급액의 44.5%로 추정된다. 출하단계 11.8%, 도매 10.6%, 소매 22%의 유통비용이 붙는다. 소비자가 100원을 지급하면 그중 45원이 유통과정에서 사라지는 셈이다. 배추만이 아니다. 당근의 유통비용은 75%, 양파 71.5%, 무 70.9%이며 파는 무려 81.5%에 이른다.
그동안 유통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산물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유통시스템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정부와 농협,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농산물 유통 개선사업에 해마다 수조 원을 쏟아붓는다고는 하지만 풍작이면 밭을 갈아엎어 보상하고, 흉작이면 배추대란에서 보듯 외국에서 곧장 수입하는 땜질식 처방에 그쳤던 것이다.
정부는 이번엔 다르다며 농산물 유통시스템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10월 18일 이명박 대통령은 “일부 중간상인의 독과점이나 담합으로 산지 농민은 고생해서 싼값에 팔고 소비자들은 비싼 값에 사먹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앞으로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이러한 불공정한 사례가 없도록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12월 말까지 유통단계 축소를 통한 직거래 확대 등의 수급안정 비상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계약재배’와 ‘산지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늘려 중간 유통단계를 크게 줄이는 것이다. 생활협동조합은 파종기에 생산자와 계약재배 방식으로 미리 값을 정해, 최근 채소값 폭등에도 시중가의 30%대에 농산물을 팔았다. 김동환 교수는 “농협중앙회를 통해 계약재배를 확대하면 수급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병옥 박사는 “유통시스템 개선을 위해선 생산자의 마케팅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과일류도 배추처럼 변동성이 심했다. 한-칠레 FTA 체결 이후 정부는 산지유통 활성화 정책사업을 실시해 산지유통센터(APC) 시설을 마련해주고 농가단체를 조직화해 농가의 마케팅 능력을 키웠다. 그 결과 생산자의 취급물량이 많아지면서 수급이 안정됐다”고 말했다.
무섭게 오르던 배춧값도 이제 한풀 꺾여 3000원대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오히려 중국산 배추 유입 증가, 가을배추 작황의 호전, 월동배추의 조기 출하 등이 겹치면서 배춧값 폭락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단기간에 유통시스템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배춧값이 폭락해 생산자들이 손해를 보는 또 다른 ‘배추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단지 천재(天災)라고 치부하기엔 인재(人災)적 요소가 너무도 큰 현실이다.
배추 품귀현상으로 식당에서 김치가 사라지고 배추를 사재기하는 사람까지 나타나자, 시중에선 천정부지로 값이 오른 배추를 금에 빗대 ‘금추’라 부르는 우스갯소리마저 생겨났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30년째 배추농사를 짓는 김윤수(65) 씨의 1만6529㎡(약 5000평) 밭에선 11월 출하를 앞두고 ‘금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번 배춧값 상승으로 큰돈 벌었겠다”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이러나저러나 받는 게 비슷해. 지난해처럼 파묻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지.”
배보다 배꼽이 큰 배추
9월 생선과 채소 등 신선식품 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5%나 올랐다. 열무와 상추는 3배 이상 뛰었고, 배추와 무도 2배 넘게 비싸졌다. 한 달 전과 비교해서도 상승폭은 컸다. 호박·상추가 각각 131.4%와 101%, 파·배추도 2배 가까이 올랐다. 채소 가격이 오르면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를 기록해 8개월 만에 3%를 넘어섰다. 특히 신선식품 중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추의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8월 하순까지 2500원에 머물던 배춧값은 불과 며칠 사이에 5000원을 뛰어넘더니 9월 한때 1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배춧값이 폭등한 까닭은 올여름 유독 비가 많았던 탓으로 분석된다. 8월부터 9월 말까지 강원도내 김장채소 주산단지 3곳에 내린 평균 강수량은 736.7㎜로, 지난해 295.0㎜보다 무려 441.7㎜의 비가 더 내렸다. 잦은 비로 일조시간이 크게 줄어 올해 3곳의 평균 일조시간은 235.7시간으로 지난해보다 61.7시간이나 줄었다. 강수량이 늘면서 7, 8월에 파종한 배추가 제때 출하되지 못하자 배춧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시적으로 수급이 불안정하면 저장품 등을 통해 조절해야 하지만, 저장이 어려운 배추는 그렇게 수급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배추대란의 원인이 모두 ‘기후 탓’일까. 안양대 무역유통학과 김동환 교수는 “배추의 가격 변동폭이 큰 이유 중 하나가 농산물 유통시스템의 전근대성이다. 유통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언제든 제2, 제3의 배추대란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유통시스템 때문에 수급이 불안정하니 가격도 덩달아 불안정하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배추는 ‘농민-산지유통인-도매시장-중·도매인-소매상’이란 다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해진다. 그 과정은 배추 농가들이 밭떼기를 하는 데서 시작한다. 밭떼기란 생산자가 밭작물을 밭에 있는 채로 몽땅 파는 것을 일컫는다. 생산자 편에서는 상품가격이 급격히 하락해 발생하는 손실을 줄이고, 중개상은 상품가격이 상승해 발생하는 손실을 대비할 수 있어 배추 농가의 80% 이상이 밭떼기를 한다.
7월 초 김씨는 배추밭 3305㎡((약 1000평)에 심어놓은 배추 1만5000포기를 550만 원에 산지유통인에게 밭떼기로 넘겼다. 배추 1포기당 그가 받은 가격은 367원. 김씨는 “배추가 귀해지면서 한때 1000원 가까이 오르긴 했지만, 대략 농민이 받는 금액은 300~700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산지유통인에게 넘겨진 배추에는 운송비·하역비 명목의 물류비가 추가된다. 배추는 부피가 커서 물류비가 많이 드는 데다, 중간유통 과정에서 손실(감모)이 많이 생긴다. 1t 트럭 기준으로 50만 원 정도의 물류비가 든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물류비가 소매가격의 10~15%를 차지한다. 감모비가 10~11%, 점포임대료 같은 간접비용이 10% 내외, 중간상인 및 유통업체의 이윤이 30~35%를 차지한다.
공판장 경매를 통해 등급별로 분류된 배추는 1포기에 1000~3000원으로 중·도매인에게 경락된다. 경매 전후의 가격 차가 적게는 200~300원, 많게는 1000~ 2000원 발생하며 이는 중간상인의 마진이다. 중간상인은 이 마진의 7%를 경매수수료로 공판장에 납부한다. 경락받은 중·도매인은 경락가의 4%를 붙여 유통점이나 산매상(소매상)에 넘긴다. 소매상에서는 적정 마진(약 25%)을 남기고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단돈 몇백 원에 출하된 배추는 어느덧 3000~4000원으로 몸값이 올라 있다. 배(원가)보다 배꼽(유통마진)이 훨씬 커진 셈이다. 이 상황에서 산지공급량이 줄면 가격이 폭등하고, 늘면 폭락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30년째 배추농사를 짓는 김윤수 씨.
농수산물유통공사의 ‘농산물 유통실태 조사’(2008년)에 따르면, 국내 농산물 유통비용은 소비자 지급액의 44.5%로 추정된다. 출하단계 11.8%, 도매 10.6%, 소매 22%의 유통비용이 붙는다. 소비자가 100원을 지급하면 그중 45원이 유통과정에서 사라지는 셈이다. 배추만이 아니다. 당근의 유통비용은 75%, 양파 71.5%, 무 70.9%이며 파는 무려 81.5%에 이른다.
그동안 유통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산물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유통시스템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정부와 농협,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농산물 유통 개선사업에 해마다 수조 원을 쏟아붓는다고는 하지만 풍작이면 밭을 갈아엎어 보상하고, 흉작이면 배추대란에서 보듯 외국에서 곧장 수입하는 땜질식 처방에 그쳤던 것이다.
정부는 이번엔 다르다며 농산물 유통시스템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10월 18일 이명박 대통령은 “일부 중간상인의 독과점이나 담합으로 산지 농민은 고생해서 싼값에 팔고 소비자들은 비싼 값에 사먹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앞으로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이러한 불공정한 사례가 없도록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12월 말까지 유통단계 축소를 통한 직거래 확대 등의 수급안정 비상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계약재배’와 ‘산지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늘려 중간 유통단계를 크게 줄이는 것이다. 생활협동조합은 파종기에 생산자와 계약재배 방식으로 미리 값을 정해, 최근 채소값 폭등에도 시중가의 30%대에 농산물을 팔았다. 김동환 교수는 “농협중앙회를 통해 계약재배를 확대하면 수급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병옥 박사는 “유통시스템 개선을 위해선 생산자의 마케팅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과일류도 배추처럼 변동성이 심했다. 한-칠레 FTA 체결 이후 정부는 산지유통 활성화 정책사업을 실시해 산지유통센터(APC) 시설을 마련해주고 농가단체를 조직화해 농가의 마케팅 능력을 키웠다. 그 결과 생산자의 취급물량이 많아지면서 수급이 안정됐다”고 말했다.
무섭게 오르던 배춧값도 이제 한풀 꺾여 3000원대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오히려 중국산 배추 유입 증가, 가을배추 작황의 호전, 월동배추의 조기 출하 등이 겹치면서 배춧값 폭락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단기간에 유통시스템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배춧값이 폭락해 생산자들이 손해를 보는 또 다른 ‘배추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단지 천재(天災)라고 치부하기엔 인재(人災)적 요소가 너무도 큰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