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체인지’(대상 계열사)가 진행한 자기주도학습 특강. 2 사이버 학습 등 교육사업 영역이 다각화되면서 대기업이 속속 업계에 진출하고 있다. 3 한국학원총연합회는 9월부터 수차례 대기업을 규탄하는 광고를 일간지에 실었다.
9월 28일 5개 일간지에 일제히 이런 내용의 광고가 실렸다. 광고 하단에는 한국학원총연합회(이하 학원연합회)의 단체명이 또렷이 박혀 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대기업의 학원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일간지 광고가 게재됐다. 학원연합회와 이들 대기업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학원연합회 이승찬 차장은 “2, 3년 전부터 일부 대기업이 학원업계에 진출해 물을 흐리고 있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해서야 되겠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몰염치 대기업” vs “황당한 연합회”
“최근 몇 년간 학원가에 대기업이 몰려들고 있다. SK컴즈, KT, 웅진그룹, 대상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거대 자본을 내세워 강사의 몸값을 올리고, 소형 학원을 차례차례 집어삼키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국민 덕분에 성장했으면 기술개발이나 연구개발(R&D)을 해야지, 생계형 학원인들을 위협해서야 되겠느냐.”
하지만 광고에 거론된 4개 기업의 시각은 달랐다. 도의적으로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는 차치하더라도, 각자 나름의 이유를 들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각 기업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웅진은 다른 대기업과 다르다. 우리는 출판으로 시작해 다른 계열사로 사업 영역을 넓혀나갔다. 최근 학습지 시장이 좋지 않아 자구책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학원을 인수했다. 교육기업이 교육사업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웅진그룹 ‘웅진씽크빅’)
“KT는 여러 인터넷 채널을 갖고 있다. KT에듀아이는 이런 채널을 통해 제공할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2008년 설립됐다. 초기에 오프라인 고시 학원을 하다가 접었고, 지금은 온라인 사업에 주력한다. 학원연합회가 거대자본이라 욕하지만, 우리는 저소득층에 인터넷망과 강좌를 제공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도 많이 한다.”(KT ‘KT에듀아이’)
“‘더체인지’는 대상의 계열사로, 전신은 김종학 프로덕션이다. 영상사업, IT사업, 교육사업 등을 전개한다. 지난해부터 오프라인 학원 40여 개를 인수하고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하는 등 교육사업을 발굴 중이다. 학원연합회는 위기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학원장 중에서는 학원 콘텐츠와 경영이 선진화됐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이도 많다.”(대상 ‘더체인지’)
“지난 3년간 청솔학원·이투스와 연합해 교육사업을 하다가 지난해에 손뗐다. 다만 청솔학원에 이투스를 파는 과정에서 전환사채 500억 원을 받았고, 그 절반은 올해 주식으로 돌려 지분 19.9%를 갖고 있다. 앞으로도 교육사업을 할 생각이 없는데 광고가 나오니 황당할 따름이다.”(SK ‘SK컴즈’)
이들 중 학원연합회와 격한 대립각을 세우는 곳은 SK컴즈. 학원연합회는 “SK컴즈가 교묘하게 뒤로 빠져 학원사업에 진출할 기회를 본다”고 주장하고, SK컴즈는 “사업을 완전히 접었는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고 맞받아친다. 양측이 날선 공방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 다음은 한 학원 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광고는 학원연합회의 이름으로 나갔지만, 사실상 문상주 회장의 의견에 가깝다. 문 회장은 ‘비타에듀’ ‘고려학원’의 대표다. 한데 SK컴즈가 운영하던 이투스와 비타에듀는 경쟁 관계다. 연말 스타강사 스카우트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 문 회장이 광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2, 3년 전 스카우트 전쟁이 있을 때도 같은 광고가 게재됐다.”
SK컴즈 관계자와 이투스 관계자는 물론 KT에듀아이의 관계자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이번 광고는 사실상 이투스의 대주주인 SK컴즈를 겨냥한 것이다. 나머지 대기업은 끼워넣기 식으로 포함돼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사교육 잡기’ 정책으로 곤혹에 처한 학원업계가 SSM(슈퍼 슈퍼마켓) 등의 바람을 타고 대기업을 적으로 지목한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비타에듀의 스타강사 9명이 이투스로 자리를 옮겼다. 스타강사는 학원 매출을 쥐락펴락하는 온라인 입시교육 전쟁의 핵심. 스타강사를 모시기 위해 수십억 원대의 계약금과 지분을 제시하는 것은 이제 전형적인 코스로 자리 잡았다. 다음은 한 학원연합회 관계자의 설명.
“비타에듀와 이투스는 메가스터디 다음으로 큰 규모의 학원으로, 직접적인 경쟁 관계다. 최근 비타에듀의 강사진이 대거 이투스 이적을 결정했다. 이번 광고는 대기업보다 그에 대한 규탄으로 보인다. 현재 학원연합회는 내부감사의 고발로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인데, 광고료 지출 부분도 불투명하게 진행된 것으로 지적받았다.”
학원연합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승찬 차장의 의견은 어떨까. 그는 “광고 게재 여부는 내부 절차에 따라 결정됐다. 다만 연합회 규모가 크다 보니 일부 다른 의견도 나온 것”이라고 해명하면서도 양측 간 갈등은 부인하지 않았다. 이 차장은 “수백억 원을 들여 강사들을 빼갔다. 대기업이 자금을 동원해서 다른 회사의 핵심 강사(매출 80%를 차지하는)를 대거 데리고 가는데, 감정이 상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대기업 진출 막을 방법 없어
스타강사 영입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 “오히려 시장을 흐린 것은 문 회장”이라는 반박이 나오는 이유다. 이투스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강사들이 우리 쪽으로 오는 건 맞다. 하지만 엄청난 금액은 아니고, 통상적인 조건인 것으로 안다. 오히려 비타에듀가 2, 3년 전부터 먼저 강사들에게 파격적인 수익 배분율을 제시했다”라고 지적했다.
사교육 천국인 대한민국에서 교육사업은 분명 매력적이다. 웬만해서는 망하지 않는 안정성과 사업 영역의 다양성이란 점에서 대기업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 일부 대기업의 교육사업 진출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학원연합회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시장 논리와 소비자의 선택권을 들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음은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의 말이다.
“대기업의 진출로 학원 체질이 고급화, 표준화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들은 나쁠 게 없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합한 사이버 학습 등 콘텐츠도 탄탄해질 테니까. 하지만 자본을 내세워 마케팅과 강사 스카우트에 몰입하거나, 경영 마인드로만 학원을 운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학원연합회의 광고는 정부의 반(反)사교육 정책, 대기업의 진출을 처음부터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 그리고 특정 기업에 대한 반감 등이 낳은 합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원연합회의 위기의식과 별개로 법적으로 대기업의 진출을 막을 방법은 없다. 방과 후 학교, 이러닝 등 교육사업의 다각화는 사교육 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