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개그맨 정형돈이 결혼 1년 만에 혼인신고를 한 사실이 알려져 누리꾼 사이에 화제가 됐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왜 지금까지 혼인신고를 안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과 ‘바쁘면 그럴 수 있다’ ‘요즘 세대에겐 흔히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응이 엇갈렸다. 2006년 3년여의 결혼 생활 끝에 파경에 이른 가수 이승환·연기자 채림은 그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시간이 없어서”는 핑계에 불과
최근 결혼식은 올렸지만 일단 살아본 뒤 혼인신고를 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주)좋은만남 선우(이하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가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 356쌍을 대상으로 혼인신고 여부를 조사한 결과, 126쌍이 신고를 늦췄다고 대답했다. 선우는 신혼부부 혼인신고 미등록 비율이 2005년 22.3%, 2007년 36.4%로 느는 등 2007년 이후 혼인신고 지연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혼부부들은 왜 혼인신고를 미루는 것일까? 선우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부부의 71%가 ‘시간이 없어서’라고 꼽았지만, 전문가 대부분은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속내는 다를 것이라 예상했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부부 중 한 사람이 해도 혼인신고가 가능할 정도로 절차가 간단하고 비용 부담도 없기 때문에 시간 부족은 핑계라는 것이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린 회사원 김남호(28·가명) 씨는 결혼 생활 10여 개월 만에 이혼을 결정했다. 1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배우자와 성격이 잘 맞지 않았다. 김씨는 “여자 쪽에서 혼인신고를 보류하자고 제안했는데, 이혼을 하고도 기록이 남지 않으니 그 제안 따르길 잘한 것 같다”며 안도했다.
특히 결혼 후 수년 내에 이혼하는 부부가 많아지자 일부러 혼인신고를 늦추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최규련 교수는 “이혼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데다, 혼인관계증명서에 이혼 기록이 남는 것보다 서로 깨끗하게 헤어지는 편이 낫다는 일종의 계산이 깔려 있다”며 “결혼 생활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 혼인신고를 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하는 신혼부부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의 인생관, 결혼관이 변한 것도 한몫한다. 기성세대가 배우자에 대한 책임과 체면을 중요시했다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는 독립적 주체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더 가치를 둔다. 그래서 배우자와 성격 차를 느끼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면 인내하며 서로 맞추려고 노력하기보다 차라리 이혼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에는 혼인신고를 미루는 쪽이 주로 남성이었으나 최근에는 여성이 다수라는 점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예전에는 여성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자 혼인신고를 서둘렀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상황이 변했다”고 전했다. 더구나 이혼남보다는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어서 여자 쪽에서 혼인신고를 신중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혼인신고가 늦어지는 데는 부모들의 입김도 작용한다. 자녀의 배우자가 탐탁지 않을 때 부모가 나서서 혼인신고를 미루라고 권하는 것이다. 올해 초 결혼한 대학원생 전모(26·여) 씨는 결혼식을 올린 지 반년이 지났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종종 남편이 ‘나를 믿지 못하느냐’며 언짢아하지만, 친정에서는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말도록 종용했다. 이에 대해 조 상담위원은 “이혼 시 재산 분배와 서류에 흔적이 남는 문제 등을 염려해 부모 쪽에서 신고를 미루도록 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귀띔했다.
취업 문제로 혼인신고를 망설이는 부부도 있다. 현재 취업준비생으로 서비스업계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김지연(25·가명) 씨는 4년 동안 연애한 남자친구와 지난해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직장에서 같은 점수라면 기혼자보다는 미혼자를 뽑을 것 같다”며 “원하는 직장에서 일하게 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무책임한 결혼 생활로 이어질 수도
그렇다면 차라리 동거를 하지 왜 많은 비용을 들여 굳이 결혼식을 올릴까. 최 교수는 “서구에서는 남녀가 함께 살다가 아이를 낳은 후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해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동거 커플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쓰고 보기 때문에 이를 숨기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인신고를 미루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자칫 무책임한 결혼 생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혼인신고는 부부가 서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원만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혼이 많아지면서 이로 인한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배우자가 사실혼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상담을 의뢰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우리나라는 법률혼주의를 택했기 때문에 사실혼일 경우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 부부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를 모두 인정받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항이 ‘친족관계의 미발생 및 상속권의 제한’이다. 법무법인 화평 조현정 변호사는 “사실혼일 경우, 법률혼과 달리 배우자가 사망해도 상속권이 없다. 또 아이가 출생하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라야 하고, 아버지가 자녀를 인지한 경우에만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소득공제나 각종 금융, 보험 등의 혜택을 누리기도 어렵다. 특히 신혼부부 특별공급 등 현재 부동산 정책은 신혼부부에게 유리한 면이 많다. 스피드뱅크 이미영 분양팀장은 “간혹 청약저축을 오랜 기간 불입해온 사람이 유주택자인 배우자와 결혼할 때, 청약 1순위 자격을 유지하려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예가 있다. 하지만 청약 당첨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당첨될 확률이 더 높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혼인신고를 미루고 있는 부부들은 “인생이 좌우되는 부분인데 그 정도 경제적 불이익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이 없어서”는 핑계에 불과
최근 결혼식은 올렸지만 일단 살아본 뒤 혼인신고를 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주)좋은만남 선우(이하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가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 356쌍을 대상으로 혼인신고 여부를 조사한 결과, 126쌍이 신고를 늦췄다고 대답했다. 선우는 신혼부부 혼인신고 미등록 비율이 2005년 22.3%, 2007년 36.4%로 느는 등 2007년 이후 혼인신고 지연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혼부부들은 왜 혼인신고를 미루는 것일까? 선우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부부의 71%가 ‘시간이 없어서’라고 꼽았지만, 전문가 대부분은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속내는 다를 것이라 예상했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부부 중 한 사람이 해도 혼인신고가 가능할 정도로 절차가 간단하고 비용 부담도 없기 때문에 시간 부족은 핑계라는 것이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린 회사원 김남호(28·가명) 씨는 결혼 생활 10여 개월 만에 이혼을 결정했다. 1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배우자와 성격이 잘 맞지 않았다. 김씨는 “여자 쪽에서 혼인신고를 보류하자고 제안했는데, 이혼을 하고도 기록이 남지 않으니 그 제안 따르길 잘한 것 같다”며 안도했다.
특히 결혼 후 수년 내에 이혼하는 부부가 많아지자 일부러 혼인신고를 늦추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최규련 교수는 “이혼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데다, 혼인관계증명서에 이혼 기록이 남는 것보다 서로 깨끗하게 헤어지는 편이 낫다는 일종의 계산이 깔려 있다”며 “결혼 생활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 혼인신고를 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하는 신혼부부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의 인생관, 결혼관이 변한 것도 한몫한다. 기성세대가 배우자에 대한 책임과 체면을 중요시했다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는 독립적 주체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더 가치를 둔다. 그래서 배우자와 성격 차를 느끼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면 인내하며 서로 맞추려고 노력하기보다 차라리 이혼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에는 혼인신고를 미루는 쪽이 주로 남성이었으나 최근에는 여성이 다수라는 점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예전에는 여성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자 혼인신고를 서둘렀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상황이 변했다”고 전했다. 더구나 이혼남보다는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어서 여자 쪽에서 혼인신고를 신중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혼인신고가 늦어지는 데는 부모들의 입김도 작용한다. 자녀의 배우자가 탐탁지 않을 때 부모가 나서서 혼인신고를 미루라고 권하는 것이다. 올해 초 결혼한 대학원생 전모(26·여) 씨는 결혼식을 올린 지 반년이 지났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종종 남편이 ‘나를 믿지 못하느냐’며 언짢아하지만, 친정에서는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말도록 종용했다. 이에 대해 조 상담위원은 “이혼 시 재산 분배와 서류에 흔적이 남는 문제 등을 염려해 부모 쪽에서 신고를 미루도록 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귀띔했다.
취업 문제로 혼인신고를 망설이는 부부도 있다. 현재 취업준비생으로 서비스업계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김지연(25·가명) 씨는 4년 동안 연애한 남자친구와 지난해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직장에서 같은 점수라면 기혼자보다는 미혼자를 뽑을 것 같다”며 “원하는 직장에서 일하게 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무책임한 결혼 생활로 이어질 수도
결혼 1년 만에 혼인신고를 한 개그맨 정형돈(왼쪽).
혼인신고를 미루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자칫 무책임한 결혼 생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혼인신고는 부부가 서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원만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혼이 많아지면서 이로 인한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배우자가 사실혼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상담을 의뢰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우리나라는 법률혼주의를 택했기 때문에 사실혼일 경우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 부부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를 모두 인정받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항이 ‘친족관계의 미발생 및 상속권의 제한’이다. 법무법인 화평 조현정 변호사는 “사실혼일 경우, 법률혼과 달리 배우자가 사망해도 상속권이 없다. 또 아이가 출생하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라야 하고, 아버지가 자녀를 인지한 경우에만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소득공제나 각종 금융, 보험 등의 혜택을 누리기도 어렵다. 특히 신혼부부 특별공급 등 현재 부동산 정책은 신혼부부에게 유리한 면이 많다. 스피드뱅크 이미영 분양팀장은 “간혹 청약저축을 오랜 기간 불입해온 사람이 유주택자인 배우자와 결혼할 때, 청약 1순위 자격을 유지하려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예가 있다. 하지만 청약 당첨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당첨될 확률이 더 높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혼인신고를 미루고 있는 부부들은 “인생이 좌우되는 부분인데 그 정도 경제적 불이익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