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은 지난 10년간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었다. 실물 음반 시장이 무너지고 온라인 음원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불법 MP3 파일과 전쟁을 치른 과도기도 있었고 성인 주도의 음반 시장이 10대 주도로, 그리고 10대용 상품으로 개발된 ‘아이돌’이란 아이템이 전 연령용으로 바뀌면서 다시 성인 주도의 음반 시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대중음악의 격변기가 시작되던 10년 전에 데뷔해 최고의 여성 싱어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아는 그 10년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음악성으로 일본 시장 정복
보아가 데뷔하던 2000년도, 보아는 분명히 그녀와 같은 연령대를 공략하기 위한 상품이었다. 데뷔곡 ‘ID: Peace B’는 S.E.S.가 이미 노장이 된 상황에서 구심점을 잃고 있는 10대 팬덤을 타깃으로 한 전략이 제목에서부터 드러났다. 당대 영미권 팝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 ‘힙합 스타일의 리듬 트랙, 굴곡 강한 멜로디라인’이 두드러졌다. S.E.S.만큼은 아니었지만 보아는 ‘SM엔터테인먼트가 발굴한 최고의 원석’으로 평가됐고, 데뷔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5월 30일 첫 싱글 발표와 함께 쇼케이스로 데뷔한 보아는 ‘10대 아이돌의 천국’ 일본에서 대단히 차별화된 인기를 얻었다. 왜냐하면 일본의 소녀 스타들은 그렇게 강렬한 기교의 창법과 숙련된 댄스 스킬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리고 신선한 점만으로 승부하는 일본 10대 아이돌과의 경쟁에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는 것은 충분히 앞서나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원이었다.
보아는 결국 현지화에 성공했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성공보다 일본에서의 성공이 크게 보이는 이유는 단지 보아가 일본에서 ‘10대 소녀 스타’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싱글 몇 개를 히트시키고 오리콘 차트에 등장한 것으로 보아의 성공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보아는 황금시간대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넘어서 엠 플로(m-flo)처럼 음악성이 뛰어난 그룹의 노래에 피처링을 했다. 단지 연예인으로 활동해 인기를 얻고 매출을 신장시킨 것이 아니라 음악성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소녀 스타가 한국에서 활동하며 클래지콰이나 드렁큰 타이거의 음반에 피처링을 했다면? 우리는 그 소녀 스타가 ‘강심장’에 출연해 자기 고백이나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현지화에 성공하고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당당한 일본 대중음악계의 스타’가 됐음에도, 한국에서 보아는 모든 연령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수는 아니었다. 그것은 보아의 음악이 어필할 수 있는 대상이 매우 협소했기 때문이다. 즉, 대중음악을 폭넓게 듣는 ‘헤비 리스너’를 위한 아이템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이돌 수준 한 단계 업그레이드
안타깝게도 보아의 매니지먼트사는 보아를 특별한 아이템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들의 패턴화된 프로듀싱 안에 가둘 뿐이다. 보아는 그 실력과 경력으로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매진시키고도 남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10대 팬뿐 아니라 실질 구매력을 갖춘 성인들까지 움직일 수 있는 아티스트라는 말이다.
하지만 보아는 아직 전 연령대를 상대할 만한 작품으로 승부하지 못했다. 김동률, 지누 등 능력 있는 작곡자를 동원했으나 보아의 음반은 소녀시대나 F(x)의 음반과 다르지 않은 수준의 악곡만을 지니고 있다. 보아는 벌써 오래전에 성인 취향의 대중음악인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를 시도했어야 한다.
대단한 것은,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그렇게 받쳐주지 못하는데도 보아는 헤비 리스너, 그리고 전 연령대 청취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은 보아가 악곡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와 춤만으로 이뤄낸 것이다. 최근 히트곡 ‘허리케인 비너스’는 전 연령대, 헤비 리스너의 취향에 그리 맞지는 않지만 보아는 가창력만으로 그들을 설득해냈다.
보아는 지난 10년간 그룹이 아니라 솔로 활동으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다. 또한 솔로로 시작한 아이비, 손담비 등이 비주얼로 밀어붙였던 것에 비해 보아는 음악으로 승부해왔다.
보아라는 우량 제품이 아이돌군(群)에 끼어들면서 ‘한국의 아이돌 음악 필드’는 상당히 수준이 높아졌다. 이전까지 음악 자체가 아니라 섹시함, 귀여움 등의 ‘개념’에 기댔던 아이돌 시장은 우수한 음악적 함량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외모만 앞세운 아이돌이 가득한 한국 대중음악계지만, 가창력과 춤 솜씨만큼은 일정 수준을 갖춰야만 ‘기본적인 시장 진입’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최상급 벤치마킹 대상’인 보아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 기획의 업계에서는 가창력과 퍼포먼스, 비주얼 모두 뛰어난 연습생이 등장했을 때 ‘잘하면 제2의 보아’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진다.
지난해 미국 진출에서는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적어도 ‘행사용 아이돌’로 진출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 가요계에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일본의 천재 소녀 가수로 주목받았던 싱어송라이터 우타다 히카루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앨범을 발매해 비슷한 성적을 거둔 것은 보아가 현존하는 아시아 여성 가수 중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짐작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보아의 다음 10년을 시작하는 화두를 만날 수 있다. 보아가 ‘자신의 목소리’로 지난 10년을 승부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정신세계’로 승부해야 한다. 보아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프로듀싱에 참여해 셀프 프로듀싱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 성장해야 한다. 데뷔 시절 ‘멍청하고 섹시하기만 한 금발의 여가수’였던 마돈나가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노력 끝에 셀프 프로듀싱이 가능한 뮤지션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획사의 아이돌 스타 출신들이 무리한 셀프 프로듀싱으로 오히려 예전의 인기를 깎아먹은 경우도 있지만, 보아는 그들을 훨씬 뛰어넘는 음악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작사·작곡에 능란하고, 편곡을 지배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돼달라는 주문은 아니다. 기획사의 콘셉트를 그대로 따라가는 ‘단순 싱어’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 한다는 얘기다. 보아의 전성기는 이제부터다. 1986년생 보아는 아직 스물네 살밖에 안 됐다. 마돈나는 데뷔할 때 스물네 살이었다.
음악성으로 일본 시장 정복
보아가 데뷔하던 2000년도, 보아는 분명히 그녀와 같은 연령대를 공략하기 위한 상품이었다. 데뷔곡 ‘ID: Peace B’는 S.E.S.가 이미 노장이 된 상황에서 구심점을 잃고 있는 10대 팬덤을 타깃으로 한 전략이 제목에서부터 드러났다. 당대 영미권 팝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 ‘힙합 스타일의 리듬 트랙, 굴곡 강한 멜로디라인’이 두드러졌다. S.E.S.만큼은 아니었지만 보아는 ‘SM엔터테인먼트가 발굴한 최고의 원석’으로 평가됐고, 데뷔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5월 30일 첫 싱글 발표와 함께 쇼케이스로 데뷔한 보아는 ‘10대 아이돌의 천국’ 일본에서 대단히 차별화된 인기를 얻었다. 왜냐하면 일본의 소녀 스타들은 그렇게 강렬한 기교의 창법과 숙련된 댄스 스킬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리고 신선한 점만으로 승부하는 일본 10대 아이돌과의 경쟁에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는 것은 충분히 앞서나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원이었다.
보아는 결국 현지화에 성공했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성공보다 일본에서의 성공이 크게 보이는 이유는 단지 보아가 일본에서 ‘10대 소녀 스타’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싱글 몇 개를 히트시키고 오리콘 차트에 등장한 것으로 보아의 성공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보아는 황금시간대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넘어서 엠 플로(m-flo)처럼 음악성이 뛰어난 그룹의 노래에 피처링을 했다. 단지 연예인으로 활동해 인기를 얻고 매출을 신장시킨 것이 아니라 음악성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소녀 스타가 한국에서 활동하며 클래지콰이나 드렁큰 타이거의 음반에 피처링을 했다면? 우리는 그 소녀 스타가 ‘강심장’에 출연해 자기 고백이나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현지화에 성공하고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당당한 일본 대중음악계의 스타’가 됐음에도, 한국에서 보아는 모든 연령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수는 아니었다. 그것은 보아의 음악이 어필할 수 있는 대상이 매우 협소했기 때문이다. 즉, 대중음악을 폭넓게 듣는 ‘헤비 리스너’를 위한 아이템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이돌 수준 한 단계 업그레이드
안타깝게도 보아의 매니지먼트사는 보아를 특별한 아이템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들의 패턴화된 프로듀싱 안에 가둘 뿐이다. 보아는 그 실력과 경력으로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매진시키고도 남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10대 팬뿐 아니라 실질 구매력을 갖춘 성인들까지 움직일 수 있는 아티스트라는 말이다.
하지만 보아는 아직 전 연령대를 상대할 만한 작품으로 승부하지 못했다. 김동률, 지누 등 능력 있는 작곡자를 동원했으나 보아의 음반은 소녀시대나 F(x)의 음반과 다르지 않은 수준의 악곡만을 지니고 있다. 보아는 벌써 오래전에 성인 취향의 대중음악인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를 시도했어야 한다.
대단한 것은,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그렇게 받쳐주지 못하는데도 보아는 헤비 리스너, 그리고 전 연령대 청취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은 보아가 악곡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와 춤만으로 이뤄낸 것이다. 최근 히트곡 ‘허리케인 비너스’는 전 연령대, 헤비 리스너의 취향에 그리 맞지는 않지만 보아는 가창력만으로 그들을 설득해냈다.
보아는 지난 10년간 그룹이 아니라 솔로 활동으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다. 또한 솔로로 시작한 아이비, 손담비 등이 비주얼로 밀어붙였던 것에 비해 보아는 음악으로 승부해왔다.
보아라는 우량 제품이 아이돌군(群)에 끼어들면서 ‘한국의 아이돌 음악 필드’는 상당히 수준이 높아졌다. 이전까지 음악 자체가 아니라 섹시함, 귀여움 등의 ‘개념’에 기댔던 아이돌 시장은 우수한 음악적 함량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외모만 앞세운 아이돌이 가득한 한국 대중음악계지만, 가창력과 춤 솜씨만큼은 일정 수준을 갖춰야만 ‘기본적인 시장 진입’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최상급 벤치마킹 대상’인 보아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 기획의 업계에서는 가창력과 퍼포먼스, 비주얼 모두 뛰어난 연습생이 등장했을 때 ‘잘하면 제2의 보아’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진다.
지난해 미국 진출에서는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적어도 ‘행사용 아이돌’로 진출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 가요계에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일본의 천재 소녀 가수로 주목받았던 싱어송라이터 우타다 히카루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앨범을 발매해 비슷한 성적을 거둔 것은 보아가 현존하는 아시아 여성 가수 중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짐작게 한다.
보아는 인기를 몰아 직접 디자인한 주얼리 브랜드를 출시했다.
같은 기획사의 아이돌 스타 출신들이 무리한 셀프 프로듀싱으로 오히려 예전의 인기를 깎아먹은 경우도 있지만, 보아는 그들을 훨씬 뛰어넘는 음악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작사·작곡에 능란하고, 편곡을 지배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돼달라는 주문은 아니다. 기획사의 콘셉트를 그대로 따라가는 ‘단순 싱어’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 한다는 얘기다. 보아의 전성기는 이제부터다. 1986년생 보아는 아직 스물네 살밖에 안 됐다. 마돈나는 데뷔할 때 스물네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