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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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서울 달동네에 살고 있었네

뮤지컬 ‘빨래’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9-06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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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은 서울 달동네에 살고 있었네

    달동네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 만난 나영과 솔롱고. 솔롱고의 정성에 나영은 서서히 마음을 연다.

    대규모 외국 뮤지컬 속에서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는 창작 뮤지컬을 보면 ‘기특하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이름난 스타, 풍부한 재정 없이도 끊임없이 관객을 불러 모으는 창작 뮤지컬. 그 대표선수가 바로 ‘빨래’다. ‘빨래’는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극본·작사·작곡상을 받았으며 2005년 초연 이후 올 7월, 공연 1000회와 20만 관객 돌파 등 객석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한참 비탈길을 올라야 다다르는 산동네, 허름한 슈퍼마켓, 다닥다닥 붙어 옆방 소리가 다 들리는 쪽방 등 서울 달동네를 재현한 무대부터 심상치 않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들은 저마다 꼬깃꼬깃 접어놓았던 추억을 펼쳐본다.

    “난 이 동네가 좋아요. 여기는 하늘과 친해요. 당신과도 친하고 싶어요.”

    열심히 돈 벌어 못 마친 공부를 하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한 강원도 처녀 ‘나영’. 꿈도 희망도 사라지고, 5년 서울살이 끝에 남은 건 늘어난 나이뿐이다. 예전엔 시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지만 이젠 서점에서 일하는데도 책 한 권 읽기 힘들다. 나영은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가 이웃집에 사는 몽골 청년 ‘솔롱고’를 만난다. 솔롱고 역시 서울생활 5년차. 돈 벌러 이국땅에 왔지만 배운 건 “아파요, 욕하지 마요, 돈 주세요”라는 말뿐. 하지만 나영을 만난 뒤 솔롱고 마음에 무지개가 뜬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나영 역시 서서히 그에게 마음을 연다.

    단편적으론 흔한 사랑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풍부한 사연이 있다. 아들에게 버림받고 마흔 넘은 장애인 딸을 돌보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욕쟁이 할머니, 사장의 성희롱과 횡포, 부당 해고에 말 한마디 못하는 서점 직원들, 배고팠던 지난날은 다 잊고 악덕업주로 변해가는 서점 주인 ‘빵’, 죽도록 일해도 돈 한 푼 못 받고 ‘불법 인간’이라며 손가락질받는 이주노동자들…. 워낙 다양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어 뮤지컬에 모든 이야기를 ‘우겨넣었다’는 느낌을 준다. 5년 이상 무대에 오른 작품인 만큼 이미 진부해진 문제의식이지만 극의 구성, 복선이 탄탄해 그 부분을 감안하고도 극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뮤지컬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음악이다. 대학로 창작 뮤지컬 중에는 “노래가 아니라 단순히 대사 전달 수단”이란 느낌을 줄 정도로 함량미달인 뮤직 넘버가 많다. 하지만 ‘빨래’는 유난히 음악에 신경 쓴 티가 난다. 경쾌한 리듬과 유머러스한 가사가 돋보인 ‘서울살이 몇 해인가요’와 솔롱고가 나영에게 바치는 세레나데 ‘참 예뻐요’는 명곡이다. 특히 솔롱고 역을 맡은 배우 성두섭은 합창 부분에서도 목소리가 돋보일 정도로 음성이 좋다.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건네거나 한강 풍선 이벤트를 하지는 않지만, 마주보고 빙긋 웃는 모습이 나와 닮은 오래된 연인 같은 작품이다. 오픈런. 학전그린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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