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3

..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그 사람들

‘문학의 숲에서 동양을 만나다’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09-06 13:5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그 사람들

    김선자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343쪽/ 1만5000원

    고전에는 인류가 축적한 많은 지혜가 담겨 있어 고전을 가까이할수록 풍요로운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고전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때가 많다. 그래서 치밀한 준비 없이 접하다 보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즉 고전에 담긴 전체 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중국 고전도 다르지 않다. 수천 년 전 이야기가 익숙지 않아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고전과 고전 입문서를 같이 놓고 읽으라고 충고한다.

    김선자 교수가 쓴 ‘문학의 숲에서 동양을 만나다’는 동양 고전을 이해하는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김 교수는 동양 신화에 대한 탁월한 저서를 여러 권 갖고 있다. 그중 이 책에는 공자, 사마천, 굴원, 두보, 이탁오 등 익숙한 역사 인물부터 평범한 이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이 책은 바로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아냈던 그 ‘사람들’ 이야기다. 3000여 년 전 ‘시경’이나 2000여 년 전 ‘악부민가’에 담긴 시를 대중가요로 읽어내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고전이 지닌 권위의 무게를 털어버리고 당대 사람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찾아내는 데 진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 담긴,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다.

    연리지 이야기를 예로 보자. 우유부단한 남편과 매서운 시어머니, 여동생의 진정한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친정 오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길을 찾지 못했던 유란지가 결국 연못에 몸을 던지자 남편 초중경이 동남쪽 가지에 목을 맸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두 사람을 합장하고 무덤 양쪽에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심어주었는데 가지와 뿌리가 서로 이어져 연리지가 됐고 거기에 원앙새 두 마리가 나타나 밤마다 머리를 꼬고 울어대니 죽은 두 사람의 영혼이 연리지와 원앙새가 됐음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

    책에는 이외에도 ‘중국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관한경에 얽힌 일화, ‘중국의 햄릿’이라는 기군상의 비극을 그린 ‘조씨고아(趙氏孤兒)’ 같은 작품처럼 오늘날에도 수없이 변주되는 이야기의 원형이 소개된다. 이처럼 인간의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는 문학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언제나 새로운 시각에서 읽힐 여지가 많다. 그러므로 이런 사례를 통해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인간을 웃고 울리는 이야기가 갖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숙고해볼 수 있다.



    이야기를 잉태하는 것은 역사다. 궁형 치욕을 당하고도 ‘발분지서(發憤之書)’라 불리는 최고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완성한 사마천, 절필의 시를 쓰고 멱라수에 뛰어들어 자결한 ‘초사’의 시인 굴원, 나이 오십에 진정한 학문을 시작해 ‘분서’와 ‘장서’라는 당시로서는 이단의 책을 펴내는 바람에 혹세무민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칼로 목을 그어 자살한 사상가 이탁오 등의 삶을 그린 이야기는 특정한 시공간(역사)의 이야기를 어떻게 생성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책에는 특히 한 시대를 처절하게 살다 간 여성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연로한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을 대신해 무시무시한 전쟁터에 나가 10여 년 만에 돌아온 목란, 억울하게 죽어 장성 밑에 묻힌 남편의 유골을 수습하려고 눈물로 장성을 무너뜨린 맹강녀, 가곡 ‘동심초’의 원작자로 지음(知音)을 곁에 두고도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간결한 시에 담아낸 설도 등을 그린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애절했는지 확인시켜준다.

    저자는 “문학이 별건가,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인 것을.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전해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람과 사람이 참된 마음을 나누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문의 요체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오늘날 큰 이야기든 작은 이야기든 이야기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화 교양서이자 동양 고전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중국의 역사는 이야기의 보고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지금도 다양한 장르로 변주돼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을 따라 읽다 보면 동양적 이야기의 정수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그 이야기의 원형을 제대로 익힌 다음 세계에 통할 수 있는 새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면 문화 콘텐츠 시대의 주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