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학자 클라프로트가 번역한 책 ‘삼국총람도설’에 실린 지도.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뜻으로 노랗게 칠했다.
독도 영유권은 한일 간 끝없는 논쟁거리다. 일본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다케시마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치는 한편, 조직적인 연구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뒤늦게 발동이 걸린 한국도 최선을 다해 방어하고 있지만 어느 쪽도 결정적인 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일본의 전략은 독도 문제를 국가 간 영토분쟁으로 부각시켜 국제재판소까지 가져가고, 교과서를 통해 자국민을 의식화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가능한 한 조용하게 실효적 지배를 연장시킨다는 전략이다. 어느 날부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가요가 방송에서 들리지 않는 이유도 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일본 정부는 정해진 계획표에 따라 한국을 의식하지 않은 채 독도 영유권 주장의 단계를 높이고 수위를 조절해왔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루빨리 ‘조용한 대처’에서 벗어나 정당하게 목소리를 높여야 할 뿐 아니라, 학계는 추상적인 당위성을 주장하기보다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한다.
‘조용한 대처’ 버리고 목소리 높여라
지금까지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대략 두 가지다. 첫째, 12~13세기부터 일본 어선들은 독도 근해로 어로작업을 나갈 때마다 일본 지방 관서의 허가를 받았다는 증거가 있으며, 국제법에 따라 무주지를 선점해 1905년 자국 영토에 편입시켰다는 것이다. 둘째, 울릉도 주변에 죽도 등의 섬이 있고 우산도는 그중 하나일 뿐 독도를 지칭한 것은 아니므로 독도가 한국 영토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측 주장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첫째, 당시 일본 어부들은 태평양 쪽으로 고기잡이를 나갈 때도 지방 관서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만일 일본의 주장대로라면 태평양도 일본 영토라야 한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출어허가증’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1894년 9월 3일자는 ‘일본 해양 경계선’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 밖에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시마네현으로 편입되기 이전 자료여서 가치가 전혀 없다고 할 것이 틀림없다.
둘째, 울릉도와 독도는 수십 개의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으나 크게 보면 각각 2개의 주요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울릉도와 죽도(부속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큼), 동도와 서도가 그것이다. 예로부터 한국은 동도와 서도를 합쳐 ‘우산도’라 불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행히 이를 반박할 자료가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프티 주르날’에 실린 한·중·일 지도. 독도는 분명히 일본 해양 경계선 밖에 있음을 보여준다.
임자평의 글이 너무 간략해서인지 클라프로트는 이 책에 ‘대청통치(大淸統治)’라는 저자 미상의 저서를 추가로 번역해놓았다. 한국에 대한 소개를 170여 쪽 추가하면서 부록으로 3국 지도도 넣었다. 이 지도에서 한국은 북반부가 벌어지고 해안선이 부정확하게 그려졌다. 서울을 ‘왕의 수도’라 하고, 부산을 ‘부산만’이라고 기록한 것 외에 다른 지명은 나타나지 않으나 국호를 ‘조선 또는 한국’이라고 표시함으로써 조선과 한국이 같은 나라임을 밝혔다.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중요한 부분은 클라프로트가 이 지도에서 대마도를 일본과 같은 초록색 섬으로 표시하고, 울릉도와 독도(표기는 다케시마)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란색으로 칠했다는 점이다. 특별히 독도 밑에 ‘한국에 속하는 다케노시마-즉 다케시마’라는 주석을 달았다. 이 주석은 여러 의미가 있다. 단순히 앞선 지도 제작자가 그렇게 해놓은 것을 베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즉, 당시 독도 근해에서 어로 작업을 하던 일본인들이 그 섬을 일본식으로 ‘다케시마 또는 다케노시마’라고 불렀지만, 클라프로트는 그 섬이 ‘한국 땅’임을 확실히 밝힌 것이다. 이는 일부 일본인이 다케시마를 일본 영토라고 오해할 수 있음을 겨냥한 이색적인 설명이다.
명확한 근거 자료 어느 때보다 중요
클라프로트가 책에 실은 지도를 보면 독도는 2개의 섬으로 이루어졌고, 동도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으나 이는 중요하지 않다. 일본의 일부 연구자들은 울릉도와 우산도가 붙어 있는 섬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지도는 울릉도를 동해 연안 가까이에 그리고, 독도는 그로부터 떨어진 2개의 섬으로 그려 일본 측 주장을 일축한다.
마지막으로 다케시마라는 명칭을 분석해보자. 독도에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데 왜 ‘대나무 섬’이라는 뜻의 다케시마로 부르게 됐을까. 이는 일본인의 언어적 습관과 관계있다. 한국인은 사물을 크게 둘로 나눌 때 동과 서 또는 음과 양으로 양분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마쓰(松·소나무)와 다케(竹·대나무)로 나누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울릉도를 마쓰시마라 하고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일본인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한 쌍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울릉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은 한 번도 하지 않았으면서 왜 유독 독도만 따로 떼어 일본 땅이라고 하는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본이 촉발한 독도 영유권 논쟁에 대처하려면 우리는 명확한 근거와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다행히 필자는 1980년대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클라프로트가 번역 출간한 ‘삼국총람도설’과 부록인 지도를 수집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클라프로트의 책에 실린 한국 관련 내용이 번역되거나 연구된 바 없고, 임자평의 ‘삼국총람도설’ 원본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결국 이 자료들을 누가 먼저 발굴하고 심도 깊게 연구하느냐에 따라 독도 영유권 논쟁의 승패도 갈릴 것이다.
서정철 교수는 불문학자로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아내(이화여대 김인환 명예교수)와 함께 서양 고지도를 수집했으며, 2004년에는 30년간 수집해온 180여 점의 고지도를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부부는 고지도를 수집하면서 동해 표기 문제와 국경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현재 동해연구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