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을 담으려다 모두 놓친 영화 ‘비밀애’.
한 여자가 홈 비디오를 보며 울고 있다. 남편은 결혼한 지 수개월 만에 산에서 실족해 혼수상태다. 시든 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자 앞에 어느 날 남편과 외모와 목소리가 똑같은 남자가 나타난다. 남편에게 쌍둥이 동생 진호가 있었던 것이다.
‘비밀애’는 당신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줄 만큼 충분히 관능적이다. 시동생과 형수의 금단의 사랑이란 설정 외에도 축축하고 이국적인 베드신이 가득하다. 첫 정사장면인 차 안의 섹스는 병상에 누워 있는 형 진우를 뒤로하고 동생 진호가 골문 앞에서 형수에게 던지는 도발적인 발길질 같은 것이다. 물론 골키퍼는 애초 존재하지 않고, 여자는 밀폐된 공간에서 느끼는 두 허벅지 사이의 욕망을 막아낼 길이 없다. 비와 차 안. 이 모두 물레방앗간에서의 섹스만큼이나 오래된 영화 속 클리셰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등산이 삶의 전부인 진우에게 산은 사랑하는 여자 연이를 만났던 사랑의 시작점이자 죽음과도 맞닿아 있는 장소다. 이에 반해 해양생물학자인 동생 진호는 ‘물’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는 형의 여자를 만나자 열 길 물속보다 한 길 여자의 마음을 더 궁금해한다. 그러므로 진우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욕조에서 연이와 벌이는 두 번째 섹스는 연이의 입장에서 보면 형 진우의 육신을 빌린 동생 진호와의 은밀한 소통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전이는 점점 심해져 여자는 마침내 자신이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와 격렬한 섹스를 벌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격렬함 속에는 질투와 배신에 대한 굴욕감 등이 범벅된 한 남자의 지독한 불행감이 혼재한다. 류훈 감독은 강렬한 클로즈업이 충돌하는 교차편집 기법으로 베드신에 스릴러적인 긴장감을 더했다.
문제는 ‘비밀애’가 이러한 인물의 존재감뿐 아니라 과거와 현실의 시간까지 중첩시켰다는 것이다. 연이가 실상 진우와 결혼한 것은 자신을 산에서 구해준 진우에게 고마움과 운명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이와 정사를 벌이는 이 남자가 누군지 혼란스러운 것처럼 연이를 구해준 남자가 누군지 역시 아리송 다리송이다.
결과적으로 ‘비밀애’는 너무 여러 가지를 말하려다 결국 말하려는 바를 잃어버렸다. 정체성 탐구는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돼 멜로인지 스릴러인지 치정인지 순애보인지 스스로 미궁에 빠지고 만 것이다. 종착역에 다다를수록 ‘비밀애’는 어쩔 수 없이 신인 감독의 패기와 유지태, 윤진서 두 배우의 헌신적 노력 모두가 과잉이 돼버린, 미스터리 기차를 타고 만다. 많은 분량을 찍고 훨씬 많이 덜어낸 듯한 편집의 이음매 속에는 중간에 권지연 감독이 하차한 후, 데뷔작을 두고 많이 고심했을 류훈 감독의 근심이 묻어난다. 플롯의 곁가지를 조금 더 쳐내고 캐릭터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덮쳐보니 내 남편’이라는 이야기 한 가지로 플롯을 축약했다면 말이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여성의 육체에 대한 남성 감독의 성적 판타지의 구현이라는 흥행적 고려는 변함없이 남아 있었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