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세요?”
1월28일 서울 도산공원 근처 카페에서 박성혜(40) 씨를 만나자마자 기자가 건넨 질문이었다.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시나리오를 많이 읽은 게 도움이 됐나?”라며 멋쩍게 웃었다. 한창때 그는 하루에 시나리오를 서너 편씩 읽었다고 한다. 솔직히 기자는 박씨의 책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씨네21북스)에 대해 ‘매니저가 말하는 스타 이야기’ 정도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퇴근길 지하철에서 별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책에 푹 빠져들었고, 그만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고 말았다.
연예 매니지먼트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박성혜’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톱스타 김혜수, 전도연의 매니저였고 지진희 황정민 조승우 임수정 등을 발굴한 스타 제조기였으며, 국내 최대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 싸이더스HQ의 ‘넘버2’였던 그는 2008년 4월, 자신이 이뤄놓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돌연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10년 1월 한 권의 책을 들고 나타났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400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이 출간됐다.
“배우 매니저나 회사 중역이 아닌 ‘자연인’ 박성혜로 인터뷰를 하니 참 즐거워요. 사실 회사에 있던 시절, 제가 하는 일의 90% 이상이 온갖 종류의 ‘거절’이었거든요. 배우 인터뷰 거절, 캐스팅 거절. 그래서 다들 저를 ‘깐깐하고 센’ 여자로 생각했대요.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우습다’고 말해요.(웃음)”
싸이더스HQ 시절 그는 출판사로부터 매니지먼트 개론서나 에세이집을 내자는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글이라곤 ‘7시, 청담동, 카페 ABC’밖에 없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마음을 바꾼 건 뉴욕 시절 매일 아침 ‘모닝 페이퍼’를 쓰면서였다.
“제 이야기를 끼적이다 보니 다양한 추억, 특히 사람에 대한 애정과 회환, 감상 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어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 지난해 2월부터 5개월간 초고를 썼어요. 그게 그만 파일을 잘못 저장해 모조리 ‘날아가’버렸죠. 너무 기가 막혀 2주간 술만 마셨습니다. ‘포기할까’ 고민하다 그러면 다시는 책을 쓰지 못할 것 같아 ‘오기와 깡’으로 다시 5개월간 원고를 써서 완성했어요.”
스승 같은 김혜수, 징글징글 전도연
박씨가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1994년 매니지먼트 회사인 ‘스타써치’ 공채 2기로 선발되면서부터다. 당시 그는 스물네 살이었다. 그리고 동갑내기 톱스타인 김혜수의 매니저가 됐다. 박씨에 대한 김혜수의 첫인상은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티나 터너 머리에 키메라 화장, 가죽점퍼에 징 박힌 부츠를 신은 모습으로 나타나 김혜수를 경악시켰다. 그렇게 첫 대면에서부터 차갑게 얼어붙은 두 사람의 관계를 녹여버린 건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얼터너티브 밴드의 음악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밴드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긴 공감대가 둘을 급속히 가까워지게 했다. 이후 ‘베테랑 여배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매니저’에게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기회와 터전을 제공했다.
“매니저로서의 제 스승은 김혜수예요. 그런데 혜수 씨랑은 동갑이지만 한 번도 ‘성혜야’ ‘혜수야’라고 말해본 적이 없어요. 한번은 딱딱한 것 같아, 서로 이름을 불렀는데 너무 어색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었죠. 아마 혜수 씨가 처음 같이 일할 때 나이도 어리고 여자인 제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일부러 ‘씨’를 붙여줬던 것 같아요. 15년 동안 만났는데도, 지금도 카페 등에서 혜수 씨를 보면 눈에 확 띄어요. 김혜수만의 아우라가 있죠. 굉장히 대범하고 쿨하며,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멋진 친구죠.”
이후 그는 또 다른 톱스타인 전도연을 만났고, 보조 사진작가였던 지진희를 보고 반해 1년 동안 설득 끝에 배우의 길을 걷게 했다. 박씨에게 전도연은 징글징글한 여동생이고, 지진희는 산고 끝에 낳은 아들이었다.
“도연이는 어떤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착하고 예쁜 동생이에요. 제 이야기에 더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람이죠. 압구정동 한복판에서 술 취해 쓰러져 있는 저를 찾아내 집에 데려다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배우가 매니저도 없이 혼자 와서, 놀란 제 친구들을 뒤로한 채 저를 데리고 나갔죠.(웃음) 하지만 일에선 프로페셔널하고 열정으로 똘똘 뭉친 친구예요. 마치 비비안 리 같아요.
진희는 요즘 연기의 참맛을 느끼는 것 같아 정말 기뻐요. 카메라 셔터만 누르던 친구를 카메라 앞에 세웠으니, 본인이 처음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진희는 사진을 정말 잘 찍어요. 제 책에 나오는 사진 대부분이 진희가 찍어준 거랍니다.”
2000년 국내 최대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싸이더스가 출범했고, 박씨는 매니지먼트3팀장으로 합류했다. 이미 톱스타였던 김혜수와 전도연, 전도 유망한 신인 지진희와 함께였다. 이후 그는 황정민을 시작으로 임수정 공효진 윤진서 하정우 김성수 공유 염정아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과 일하게 됐다. 2002년 싸이더스는 다시 싸이더스와 싸이더스HQ로 분할됐다. 그는 싸이더스HQ에 남아 매니지먼트 사업본부장, 콘텐츠 사업부문장 등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인디 음악인 발굴해 키우고파”
이 시기 박씨는 “나만의 소신 몇 가지는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첫째, 전체 드라마 제작비 중 배우의 출연료 비중이 30%를 넘어가지 않게 한다는 것. 그는 “내 소신 때문에 배우들이 출연료를 많이 받지 못했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 문제로 불만을 토로한 배우는 없었다”며 허허 웃었다.
둘째, 배우들의 ‘연애’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 최근 이슈가 된 김혜수, 유해진 커플에 대해서도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입도 ‘자물쇠’로 꽉 채웠다.
셋째, 이른바 ‘끼워 팔기’(주연급 배우를 출연시키는 조건으로 같은 소속사의 다른 배우를 조연으로 출연시키는 것)를 하지 않는다는 것. 박씨는 “딱 한 번 ‘끼워 팔기’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원래 캐스팅된 배우 대신 그의 회사 신인을 출연하게 했던 것. 하지만 감독이랑 원래 캐스팅됐던 배우를 볼 때마다 미안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신인은 자신의 역할을 잘 소화해내 현재 잘나가는 배우로 성장했지만, 그때 이후로 다시는 ‘끼워 팔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저는 ‘반짝반짝’ 빛났죠. 아니, 사람들이 보기엔 제가 가장 빛나 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개인적으론 정말 힘들었어요. 모든 사람이 인간 ‘박성혜’가 아닌 본부장 ‘박성혜’로만 대했기 때문이죠. 제 배우들에게도 미안했어요. 회사일 챙긴다는 명목으로 한 명 한 명 보살펴주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고, 앞뒤를 재지 않은 채 사표를 던졌어요. 물론 지금도 그때의 결정이 참 잘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뉴욕에서 박씨는 혼자만의 삶을 만끽했다. 한 번도 혼자서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며,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지 않았던 그가 처음으로 혼자 자전거를 탔다. 그림을 배웠고, 블로그 만들어서 글을 썼으며, 살사댄스를 추러 다녔고, 바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한동안 듣지 않던 음악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담은 책과 함께 돌아왔다. 이제 그의 꿈은 무엇일까.
“원래 전 배우 매니저보다 가수 매니저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가수를 보면 마치 ‘연예인’ 같아서 설레요.(웃음) 그 초심을 살려 이젠 인디 음악 하는 친구들을 발굴해 키우고 싶어요. 또 제대로 된 한국 매니지먼트 개론서를 쓰고 싶어요. 아, 박사과정도 밟을 예정이에요. ‘가방끈 짧다’는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런지 공부를 계속 하고 싶더군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마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아이처럼 말이죠.”
1월28일 서울 도산공원 근처 카페에서 박성혜(40) 씨를 만나자마자 기자가 건넨 질문이었다.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시나리오를 많이 읽은 게 도움이 됐나?”라며 멋쩍게 웃었다. 한창때 그는 하루에 시나리오를 서너 편씩 읽었다고 한다. 솔직히 기자는 박씨의 책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씨네21북스)에 대해 ‘매니저가 말하는 스타 이야기’ 정도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퇴근길 지하철에서 별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책에 푹 빠져들었고, 그만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고 말았다.
연예 매니지먼트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박성혜’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톱스타 김혜수, 전도연의 매니저였고 지진희 황정민 조승우 임수정 등을 발굴한 스타 제조기였으며, 국내 최대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 싸이더스HQ의 ‘넘버2’였던 그는 2008년 4월, 자신이 이뤄놓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돌연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10년 1월 한 권의 책을 들고 나타났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400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이 출간됐다.
“배우 매니저나 회사 중역이 아닌 ‘자연인’ 박성혜로 인터뷰를 하니 참 즐거워요. 사실 회사에 있던 시절, 제가 하는 일의 90% 이상이 온갖 종류의 ‘거절’이었거든요. 배우 인터뷰 거절, 캐스팅 거절. 그래서 다들 저를 ‘깐깐하고 센’ 여자로 생각했대요.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우습다’고 말해요.(웃음)”
싸이더스HQ 시절 그는 출판사로부터 매니지먼트 개론서나 에세이집을 내자는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글이라곤 ‘7시, 청담동, 카페 ABC’밖에 없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마음을 바꾼 건 뉴욕 시절 매일 아침 ‘모닝 페이퍼’를 쓰면서였다.
“제 이야기를 끼적이다 보니 다양한 추억, 특히 사람에 대한 애정과 회환, 감상 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어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 지난해 2월부터 5개월간 초고를 썼어요. 그게 그만 파일을 잘못 저장해 모조리 ‘날아가’버렸죠. 너무 기가 막혀 2주간 술만 마셨습니다. ‘포기할까’ 고민하다 그러면 다시는 책을 쓰지 못할 것 같아 ‘오기와 깡’으로 다시 5개월간 원고를 써서 완성했어요.”
스승 같은 김혜수, 징글징글 전도연
박씨가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1994년 매니지먼트 회사인 ‘스타써치’ 공채 2기로 선발되면서부터다. 당시 그는 스물네 살이었다. 그리고 동갑내기 톱스타인 김혜수의 매니저가 됐다. 박씨에 대한 김혜수의 첫인상은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티나 터너 머리에 키메라 화장, 가죽점퍼에 징 박힌 부츠를 신은 모습으로 나타나 김혜수를 경악시켰다. 그렇게 첫 대면에서부터 차갑게 얼어붙은 두 사람의 관계를 녹여버린 건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얼터너티브 밴드의 음악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밴드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긴 공감대가 둘을 급속히 가까워지게 했다. 이후 ‘베테랑 여배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매니저’에게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기회와 터전을 제공했다.
“매니저로서의 제 스승은 김혜수예요. 그런데 혜수 씨랑은 동갑이지만 한 번도 ‘성혜야’ ‘혜수야’라고 말해본 적이 없어요. 한번은 딱딱한 것 같아, 서로 이름을 불렀는데 너무 어색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었죠. 아마 혜수 씨가 처음 같이 일할 때 나이도 어리고 여자인 제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일부러 ‘씨’를 붙여줬던 것 같아요. 15년 동안 만났는데도, 지금도 카페 등에서 혜수 씨를 보면 눈에 확 띄어요. 김혜수만의 아우라가 있죠. 굉장히 대범하고 쿨하며,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멋진 친구죠.”
이후 그는 또 다른 톱스타인 전도연을 만났고, 보조 사진작가였던 지진희를 보고 반해 1년 동안 설득 끝에 배우의 길을 걷게 했다. 박씨에게 전도연은 징글징글한 여동생이고, 지진희는 산고 끝에 낳은 아들이었다.
“도연이는 어떤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착하고 예쁜 동생이에요. 제 이야기에 더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람이죠. 압구정동 한복판에서 술 취해 쓰러져 있는 저를 찾아내 집에 데려다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배우가 매니저도 없이 혼자 와서, 놀란 제 친구들을 뒤로한 채 저를 데리고 나갔죠.(웃음) 하지만 일에선 프로페셔널하고 열정으로 똘똘 뭉친 친구예요. 마치 비비안 리 같아요.
진희는 요즘 연기의 참맛을 느끼는 것 같아 정말 기뻐요. 카메라 셔터만 누르던 친구를 카메라 앞에 세웠으니, 본인이 처음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진희는 사진을 정말 잘 찍어요. 제 책에 나오는 사진 대부분이 진희가 찍어준 거랍니다.”
2000년 국내 최대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싸이더스가 출범했고, 박씨는 매니지먼트3팀장으로 합류했다. 이미 톱스타였던 김혜수와 전도연, 전도 유망한 신인 지진희와 함께였다. 이후 그는 황정민을 시작으로 임수정 공효진 윤진서 하정우 김성수 공유 염정아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과 일하게 됐다. 2002년 싸이더스는 다시 싸이더스와 싸이더스HQ로 분할됐다. 그는 싸이더스HQ에 남아 매니지먼트 사업본부장, 콘텐츠 사업부문장 등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싸이더스HQ 본부장 시절. 반짝반짝 빛났지만 상처도 많이 받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박씨는 “나만의 소신 몇 가지는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첫째, 전체 드라마 제작비 중 배우의 출연료 비중이 30%를 넘어가지 않게 한다는 것. 그는 “내 소신 때문에 배우들이 출연료를 많이 받지 못했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 문제로 불만을 토로한 배우는 없었다”며 허허 웃었다.
둘째, 배우들의 ‘연애’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 최근 이슈가 된 김혜수, 유해진 커플에 대해서도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입도 ‘자물쇠’로 꽉 채웠다.
셋째, 이른바 ‘끼워 팔기’(주연급 배우를 출연시키는 조건으로 같은 소속사의 다른 배우를 조연으로 출연시키는 것)를 하지 않는다는 것. 박씨는 “딱 한 번 ‘끼워 팔기’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원래 캐스팅된 배우 대신 그의 회사 신인을 출연하게 했던 것. 하지만 감독이랑 원래 캐스팅됐던 배우를 볼 때마다 미안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신인은 자신의 역할을 잘 소화해내 현재 잘나가는 배우로 성장했지만, 그때 이후로 다시는 ‘끼워 팔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저는 ‘반짝반짝’ 빛났죠. 아니, 사람들이 보기엔 제가 가장 빛나 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개인적으론 정말 힘들었어요. 모든 사람이 인간 ‘박성혜’가 아닌 본부장 ‘박성혜’로만 대했기 때문이죠. 제 배우들에게도 미안했어요. 회사일 챙긴다는 명목으로 한 명 한 명 보살펴주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고, 앞뒤를 재지 않은 채 사표를 던졌어요. 물론 지금도 그때의 결정이 참 잘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뉴욕에서 박씨는 혼자만의 삶을 만끽했다. 한 번도 혼자서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며,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지 않았던 그가 처음으로 혼자 자전거를 탔다. 그림을 배웠고, 블로그 만들어서 글을 썼으며, 살사댄스를 추러 다녔고, 바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한동안 듣지 않던 음악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담은 책과 함께 돌아왔다. 이제 그의 꿈은 무엇일까.
“원래 전 배우 매니저보다 가수 매니저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가수를 보면 마치 ‘연예인’ 같아서 설레요.(웃음) 그 초심을 살려 이젠 인디 음악 하는 친구들을 발굴해 키우고 싶어요. 또 제대로 된 한국 매니지먼트 개론서를 쓰고 싶어요. 아, 박사과정도 밟을 예정이에요. ‘가방끈 짧다’는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런지 공부를 계속 하고 싶더군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마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아이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