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아나추이 ‘Three Continents’, 2009, 240x450cm
또 그 병마개들을 모으던 사람이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앞다퉈 초대하고 싶어 하는 작가가 될 줄을 말이죠. 주인공은 바로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작가 엘 아나추이(El Anatsui·65)입니다.
가나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아프리카를 떠난 적이 없는 아나추이는 서양미술 교육을 받았지만 언제나 아프리카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는 럼, 진, 위스키의 병마개를 모아 평평하게 만든 뒤 구리철사로 바느질을 한 거대한 금속 천 작품 ‘Three Continents’를 만들었는데요. 가까이서 보면 ‘Flying Horse’ ‘Castello’ ‘Bakassi’ ‘Ecomog’ 등 상표를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이 금속 천은 멀리서 보면 가나 아샨티족이 착용하던 화려한 켄트 천을 닮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아프리카다움을 위스키 병뚜껑에서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5세기 무렵 가나에 첫발을 디딘 포르투갈인들은 금으로 치장한 아샨티족을 발견한 후 엄청난 양의 금을 약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금괴를 배에 싣던 해안이 ‘골드 코스트’라고 불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죠. 하지만 금보다 더 장사가 되는 게 ‘노예무역’임을 깨달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덴마크 등은 이후 250여 년 동안 노예무역을 자행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연간 노예 ‘포획량’이 1만명 정도였다고 해요. 당시 노예와 맞바꾼 게 바로 유럽산 위스키였죠.
하지만 작가는 아프리카의 아픈 역사만을 그저 구리철사로 꿰맨 건 아니었습니다. 버려진 병마개를 하나하나 연결해 만든 대형 장막은 치유와 재생, 아프리카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서양미술에서 한동안 실종됐던 ‘손의 가치’ 역시 부활시켰고요. 작품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도 엄청나지만, 작가는 그보다 많은 시간을 작품 구상에 쏟아붓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작품을 만들 때는 직관을 이용한 우연적 요소를 강조합니다.
또 그가 만든 조각은 어디에 걸리느냐에 따라 다양한 표면을 연출하는데요. 마치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재즈처럼 느껴집니다. 그의 작품이 2010년 뉴욕 5번가 업 타운에 자리한 아프리카 미술관에 당당히 입성한다고 합니다. 식민의 역사에서 무한한 창조의 대지로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을 바꾼 건 바로 예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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