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세포가 암세포 덩어리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혈액투석 장비, 당뇨병성 망막증, 족부병변, 심혈관질환(왼쪽부터).
세종은 이 밖에도 두통, 이질, 부종, 수종다리, 풍증, 수전증 등 잔병을 달고 살았으며 족부가 썩어들어가는 당뇨병성 족부궤양까지 앓았다. 세종은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나의 쇠로함이 심하다”고 말하며 합병증의 괴로움을 한탄했다고 한다.
당뇨병은 세종이 언급한 것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실은 그것이 유발하는 합병증 때문에 더욱 무서운 질환이다. 흔히 당뇨병을 고혈압과 비교하는데, 알고 보면 당뇨병이 훨씬 위험하다.
고혈압은 혈압을 잘 조절하면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조절하지 못하면 뇌혈관 질환인 중풍, 심혈관 질환인 심근경색·협심증 등을 일으킨다. 그런데 당뇨병은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에 더해 신경계에까지 문제를 일으켜 통증을 유발하고 각종 장기를 손상시킨다. 그러다 결국 목숨까지 위협한다.
당뇨병 환자는 대부분 암에 취약
최근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를 포함해 미국 일본 중국 등의 대표자 7명이 연구에 참여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는 전립선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암에 더 취약하고 사망률도 더 높다(20쪽 기사 참조).
물론 당뇨병으로 인한 직접적 합병증으로 볼 순 없지만, 당뇨병 환자가 대부분의 암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연구는 혈당이 암의 위험성을 높이는 주범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뇨병이 아니더라도 공복과 식후 2시간 혈당이 높을수록 암 발생의 위험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돼 암 발생에 당 대사와 인슐린 저항성이 일부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홍콩에서 발표한 한 연구에선 7000명의 2형 당뇨 환자를 조사한 결과, 당뇨병 진단 후 10년 이내에 환자의 30%가 사망하거나 암, 심혈관 질환, 말기 신부전(ESRD), 뇌졸중과 같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는 질환에 걸린다고 밝혔다. 당뇨병이 무서운 것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합병증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특히 콩팥과 눈에 생기는 질환은 대표적인 당뇨합병증으로 생명에도 위험한 영향을 미친다.
콩팥에 생기는 질환으로 당뇨병성 신증을 들 수 있다. 당뇨병 발병 후 15년 정도가 되면 콩팥에 손상이 생겨 소변으로 단백질이 빠져나가는데, 이것이 심해지면 부종이 발생하고 더욱 진행되면 콩팥에서 노폐물이 배설되지 않아 만성 신부전이 된다. 결국은 요독증에 빠져 혈액투석을 하거나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따라서 평소 감기에 걸리거나 임신 중 과로를 하면 신장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 또한 자극성이 강한 음식을 즐기거나 과음, 과식, 단백질 과잉 섭취를 하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눈에 생기는 질환으로는 당뇨병성 망막이 있다. 정맥의 혈관벽이 약해져서 꽈리처럼 늘어나는 미소 정맥류와 혈관에서 나온 진물이나 출혈, 신생혈관의 증식 등이 망막에 발생해서 생기는 질환이다. 일단 당뇨병으로 진단받으면 정밀한 안과검진을 받아야 하며, 최소한 6개월에 한 번은 안저 검사를 받아 혈관증식성 변화를 감시해야 한다.
발, 다리 썩는 신경병증
당뇨병성 망막증이 발병하면 혈당 조절만으로 진행을 막을 수 없다.
한 대학병원을 찾은 환자 21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환자의 75%가 당뇨병성 신경병증 진단에 필요한 발 검사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당장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데다 초기에는 가벼운 이상 징후만 나타나기에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말초신경, 특히 발과 발가락의 신경이 손상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통증 같은 감각이상을 나타낸다. 감각이상이 생기면 따끔거리거나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전기충격이 오듯 찌릿찌릿하기도 한다. 환자 중에는 발바닥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하다거나 발이 저리거나 지글지글한 느낌,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은 느낌이 온다고 하는 이도 있다.
이러한 통증은 특히 밤에 심하다. 당뇨 통증의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도 25%에 이른다는 점. 먹먹함이나 무감각, 마비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스스로 질환을 깨닫기가 쉽지 않다. 이와 반대로 외부 자극을 느끼지 못해 상처가 나거나 뜨거운 것이 닿아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발에 생긴 작은 상처가 발을 절단해야 할 만큼 큰 상처로 악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다리 감각이 줄어든 당뇨병 환자는 매일 발을 잘 살피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환자가 신경병증으로 오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민간요법을 사용하다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킨다. 때문에 전문의와 상담해 적절한 통증치료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약물치료로 통증 완화와 통증으로 인한 수면장애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통증이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시발점이라면 궤양과 절단은 종착점이다. 발은 심장에서 멀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신경병증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굳은살, 무좀, 습진, 발톱이 파고들어 생긴 상처 등이 궤양으로 악화되는 수가 많다. 상처가 생기면 고혈당과 혈액순환 장애 등으로 회복이 더디거나 아예 낫지 않는다. 이런 상처에 추가로 감염이 생겨 상처가 크게 곪을 수 있다.
발에 궤양이 생기면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시간을 지체하면 살과 뼈가 모두 썩어들어가는 ‘당뇨발’이 돼 결국 절단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궤양이 생기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외과 처치와 항생제 처방 등을 한 뒤 압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발을 쉬게 해야 한다. 또한 당뇨병으로 진단을 받았다면 별다른 증상이 없어도 당뇨병성 신경병증 검진을 규칙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끝이 뾰족한 바늘을 수검자의 발바닥에 찔러 신경반응의 이상 유무를 알아보는 모노필라멘트 검사나 진동감각 검사로 신경병증을 조기 진단하면 혈당과 통증관리를 통해 발을 절단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시력장애나 배뇨장애, 소화장애 등 다른 증상이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처럼 ‘당뇨 대란’이 코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최근에는 좀더 적극적인 조기 치료가 강조되는 추세다. 우선 당뇨병 진단 즉시 당뇨약을 복용토록 하는 것이 일반화하고 있다. 과거엔 당뇨병으로 진단되면 즉시 약물투여를 하지 않고 식이요법과 운동 등 생활습관 교정부터 들어갔다. 생활습관 교정 후 2개월이 지나도 혈당이 조절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약물복용을 시작해 단계적으로 용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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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복용, 바로 시작하라
그러나 이화여대 목동병원 내분비내과 성연아 교수는 “이러한 방법으로는 거의 모든 환자가 혈당조절에 실패하고 합병증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며 “당뇨로 진단되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약을 투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최근의 치료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당뇨병학회(ADA)는 2006년 이후 당뇨병 초기단계부터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생활습관 교정과 함께 당뇨약 복용을 권장하고 있다.
발에 궤양이 생기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시간을 지체하면 살과 뼈가 모두 썩는 ‘당뇨발’이 돼 결국 절단해야 한다.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조재형 교수가 당뇨병 기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복 혈당장애는 공복 시 혈당이 100~125mg/㎗, 내당능장애는 포도당 섭취 후 2시간 뒤의 혈당이 140~199mg/㎗인 경우다. 이처럼 조기 치료 지침이 강조되면서 진단기준도 더욱 엄격해졌다.
검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공복혈당이 100~125mg/㎗일 경우 경구당부하 검사를 받거나 반복해서 공복혈당 검사를 받게 했다. 경구당부하 검사는 당뇨병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시행하는 검사다. 즉 공복 시 혈당치와 포도당 섭취 후 2시간 뒤의 혈당치를 함께 검사하는 것이다. 공복 시 혈당 검사로 대부분의 당뇨병 발병 유무를 확인할 수 있지만, 혈당 이상이 있는 사람은 경구당부하 검사의 반응성이 더 낫다.
당뇨병에서 최후의 치료수단으로 꼽히는 인슐린 투여도 초기단계에서 시행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당뇨병학회와 유럽 당뇨병학회(EASD)는 최근 제2형 당뇨병 치료에 대한 개정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조기 인슐린 치료는 특히 당화혈색소(HbA1C) 수치가 8.5%를 초과하는 환자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인슐린 사용은 당화혈색소 수치가 9%에 이를 때까지 지연되고 있으며, 많은 제2형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 치료를 시작할 무렵이면 이미 당뇨 관련 합병증이 진행된 상태에 있다고 미국 및 유럽 당뇨병학회는 지적했다.
국제당뇨연맹(IDF)이 2003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세계 당뇨병 환자 중 50% 이상은 조기진단과 치료시기를 놓쳐 실명, 신장병, 족부 절단과 심장혈관 질환 등 심각한 합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조기 치료만이 살길이라는 학계의 목소리는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이렇듯 위험한 당뇨병 합병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혈당관리와 식습관 조절이다. 다음에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강북삼성병원 당뇨전문센터의 박성우 센터장은 “당뇨병 합병증으로 인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형외과, 안과, 신장내과 심장내과 등 합병증과 연계된 진료과를 찾아 정기적으로 검사받고 합병증을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진료과가 많기 때문에 방문하는 시기를 잊어버릴 경우를 대비, 합병증 관리 수첩을 만들어 표시해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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