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라 드 렘피카, ‘장밋빛 속옷 I’(1927), oil on panel, 41.1 × 32.5
“이 근방 제분소에서 일했는데,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우. 한데 당신은 뭘로 먹고사시우?”
“나는 스페인 국왕인데, 나 역시 지금 실업자 신세라우.”
시골 제분소의 노동자나 한 나라의 국왕이나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던 1930년대 일화입니다. 그러니 당시 예술가도 예외는 아니었겠죠?
폴란드 귀족 출신인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1898~1980)는 20대에 백만장자 반열에 오른 초상화가입니다. 알폰소 왕의 초상을 그린 주인공이었고요. 당시 프랑스와 미국에서 초상화 주문을 가장 많이 받은 그녀는 의뢰인이 마음에 안 들면 제작을 거절할 만큼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을 향해 ‘그림도 제대로 못 그리는 화가들’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니까요.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미국 주식에 손댄 렘피카는 경제 대공황이 닥치자 위기에 봉착하지만 주눅 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용모에 재능까지 갖춘 이혼녀라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 사교계에서 쌓은 명성으로 부호들의 초상을 엄청난 값에 그려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했지요. 나중에 자신의 후원자이던 하울 쿠프너 남작과 결혼한 그녀는 ‘붓을 든 남작 부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그녀 내면에는 언제나 남루하고 고통받는 영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하네요. 최근 딸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 사실입니다. 현실 속에서 렘피카는 미국 화단에 불어닥친 추상표현주의의 폭풍에 밀려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붓을 꺾고 말았거든요. 그녀의 초상화는 오늘날 새롭게 조명받는데요, 마치 미술관에서 고전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듯한 정교한 붓 터치, 장식적인 아르데코와 입체파·신고전주의 등의 영향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히 표현해낸 화풍이 인상적입니다. 당시는 금기시됐던 퇴폐적이고 쾌락에 도취된 여성의 관능미는 그녀의 동성 연인으로 알려진 이라 페로(Ira Perrot)의 초상 ‘장밋빛 속옷 I’(La Chemise rose I, 1927)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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