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4가지 키워드로 전직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는 데는 분명 무리가 있다. 특히 정신분석 시 반드시 필요한 직접 면담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분석은 노무현이라는 특정 개인의 정신세계에 한정하기보다, 한때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을 통해 최근의 세태를 바라보는 한 정신과 전문의의 분석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첫 번째 키워드] 수동적 공격
현재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수동적 공격(passive aggression)’을 하고 있다.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진 이후 그는 국민과 지지자를 향해 “이제 나를 버리시라”고 말했다. 이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정 상태는 대부분 허탈함과 분노일 것이다. 그래도 한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낸 분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는가. ‘버릴 대통령’을 모셔온 우리는 대체 무엇이 되는가. 자기 자신을 ‘모진 놈’이라고 비하하면서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됐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그를 보노라면 씁쓸함마저 느껴진다.
노 전 대통령이 “이제 나를 버리시라”고 하는 것은 마치 사춘기 중고생이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부모에게 “이제 저를 포기하세요”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모의 가슴은 찢어질 것이다. 화가 나지만 ‘내가 너무했나’라는 죄책감도 든다. 대들지만 않았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니, 자식이 부모에게 (수동적) 공격을 한 셈이다.
사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캐치프레이즈는 ‘바보 노무현’이었다. 너무나 인간적인 이 표현의 이면에는 잘난 사람을 향한 분노와 공격성이 숨어 있다. 만일 당신이 노 전 대통령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세상의 각박함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면, 그의 수동적 공격에 말려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왜 직접적, 능동적 공격 대신 수동적 공격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고, 권력을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직에 있을 때도 ‘대통령 하기 힘들다’ ‘식물 대통령’ 등의 표현으로 수동적 공격을 한 바 있다. 반대세력을 향해 ‘이제 좀 그만하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직설적 공격으로 여러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면서 지지자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그에게서 지금 그런 힘찬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놈의’ 대단한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놓으면 상실감이 매우 크다. 하다못해 작은 회사의 간부가 은퇴해도 자신감이 이만저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하물며 ‘인간적인 사람 노무현’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는 분명히 현직 대통령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의 권력을 갖고 싶을 것이다. 그는 또한 권력의 원천을 국민 또는 지지자들을 통해서 찾으려 했다. 그래서 ‘귀향 정치’와 ‘인터넷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첫 1년간은 성공한 듯 보였다. 보통사람들과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전직 대통령,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얼마든지 쌍방향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노무현은 앞선 사람, 권위적이지 않은 소탈한 사람, 깨끗한 사람이었다.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촛불 정국에서 그의 인기는 꽤 괜찮았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갖가지 의혹과 숨은 돈 냄새가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액수가 적으니 생계형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액수가 많으면 죄가 되고 적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거물 정치인들에게는 적을지 모르겠지만 일반 시민에게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수동적 공격을 했다. 그리고 다시 힘이 세진다면 그는 국민 일부를 향해 ‘능동적 공격’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기에 그는 앞으로도 국민을 향해 교묘히 ‘수동적 공격’을 펼칠 것이다.
‘나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서 힘을 실어주지 못할 바에는 아예 당분간 관심 꺼버리시라. 나는 이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니까.’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마을 주민과 노사모 회원들이 검찰과 언론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한다.
노 전 대통령은 아직도 ‘분리(splitting)’를 한다. ‘분리’란 자아나 대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을 뜻하는 정신분석 용어다. 예를 들어 종교인은 무조건 좋은 사람이고, 비종교인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 특기이던 편 가르기와 비슷하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국민을 가진 자(또는 기득권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갈라서 상당한 정치적 성과를 거뒀다. 지금은 사람들을 정치적 박해로 불이익을 당하는 자와 권위주의로 회귀하기 위해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자로 편 가르기 하려고 한다. 여전히 노무현을 맹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를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길 뿐 아니라, 현재 상황을 그에 대한 수구보수 세력의 무자비하고도 비이성적인 복수극이라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정치인들과 달리 검찰 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일부 사실을 언급하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도 어느 정도 시인했다. 이렇게 솔직한 정치인이 어디 있으랴! 한편으로는 ‘증거를 한번 찾아보시라’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죄송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전자의 태도는 실리를 챙기기 위한 것이고, 후자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함이다.
물론 현재 노 전 대통령의 분리 시도는 다소 파괴력이 떨어진다.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앞으로 검찰 조사과정에서 ‘분리’를 계속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편 가르기를 시도할 것이다. 그의 세계에서는 이제 ‘진보와 민주주의의 상징’ 노무현과 ‘보수와 권위주의의 상징’ 검찰의 대결이 시작되려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 띄운 사과문.
노 전 대통령은 현재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 상태에 있다. ‘반동 형성’이란 자신의 본래 감정이나 충동과는 반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미워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 앞에서는 위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요즘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돈 관리를 맡은 정상문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과 후원자 강금원 회장의 신상에 대해 무척 걱정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박연차 회장에 대해서도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며 비난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진심으로 그들을 위하고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도록 경고하려고 이런 말과 태도를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당신들을 걱정하는데 설마 나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는 않겠지?’라는 무언의 메시지, 그것이 바로 반동 형성이다.
이런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곤경에 처했는데도 다른 사람까지 걱정하는 노무현’은 ‘진정으로 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힘든 여정이 남아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아마도 끝까지 이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는 모습, 화를 내고 흥분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변함없이 담담한 태도로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것이 노 전 대통령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키워드] 투사
노 전 대통령을 설명할 수 있는 마지막 단어는 ‘투사(projection)’다. 쉽게 말해 ‘남의 탓’을 하는 것이다. 투사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정신적 방어기제다. 사람들은 자신이 비난받을 상황에 놓이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쉽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람 또는 외부 환경을 탓한다. 그래야 자신이 걸머질 책임과 불이익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보호를 위한 본능이거나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가벼운 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잘못만 탓하며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돈거래에 대해 “나는 몰랐다. 집사람이 한 일”이라며 투사를 하고 있다. 앞으로 노 전 대통령은 ‘투사’를 덜 하려고 할 것이다. 투사는 어느 누구에게든 그릇이 작아 보이고 다소 치졸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시 누군가에게 투사를 할 것이다. 재기를 꿈꾸며. 그때의 재기는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이 아니라, 사람들이 여전히 따르고 지지하는 노무현을 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