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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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스파이였을까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9-12 12: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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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타하리가 분명 인류 최초의 여자 스파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자 스파이 하면 마타하리를 떠올린다. 마타하리 이후의 여자 스파이가 제2, 제3의 마타하리인 건 물론이고, 그보다 앞선 시대의 여자 스파이도 ‘마타하리 이전의 마타하리’일 뿐이다. 마타하리는 여자 스파이 세계에서 일종의 원형이며 여신이다.

    마타하리가 마타하리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 뛰어난 미모를 지녔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스파이의 세계는 전쟁과 정치, 계략과 협잡으로 이뤄진 판이며, 이는 본디 남자들의 영역이다. 여자 스파이는 그 세계에 끼어든 이질적인 존재다. 그 이질성과 희소성이 여자 스파이를 극적인 존재로 만드는데, 여기에 미모까지 끼어든다면 완벽한 조건이 된다.

    1917년 10월15일 아침 프랑스 파리 교외의 처형대. 마타하리는 이날 이곳에서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에 대한 진짜 얘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에 대한 빈약한 기록을 압도하는 수많은 얘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실처럼 믿어졌다.

    마타하리 이름 빌린 간첩사건들 … 묻힌 진실 햇빛 속으로

    “내가 네덜란드 시골에서 태어난 평범한 집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내 명성은 하루아침에 시궁창 신세가 될 거야.”



    그가 자신의 출생을 속였던 것처럼 그에 대한 많은 얘기들은 사실과 허구가 뒤범벅돼 만들어졌다.

    할리우드판 마타하리는 그 허구의 반영이자 또 하나의 강력한 원본이다. 많은 영화가 마타하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지만, 영화에서 마타하리 이미지의 원형을 창조한 것은 공교롭게도 1931년에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다. 마를렌 디트리히 주연의 ‘불명예’, 그리고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마타하리’. 당대 최고의 두 여배우가 연기한 이 영화들은 약간의 사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허구로 마타하리 신화를 창조하고 보급했다. 스크린의 여신들이 연기한 마타하리는 신화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 신화와 허구가 실제의 사실을 지배하고 규정했다. 수많은 여간첩 사건들이 마타하리의 이름을 빌려옴으로써 사건의 ‘흥행성’을 높였다. 그러나 드라마는 흥미롭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마타하리는 이제 실제 간첩이었는지조차 의심받는다. 설령 그랬더라도 대단한 군사기밀을 넘기는 간첩 활동을 하진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와 함께 마타하리라는 이름을 빌려온 많은 간첩 사건들에 대한 의문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리던 김수임 사건의 진실도 반세기의 먼지를 털고 햇빛 속으로 나오려 하고 있다. 이제 많은 증언과 기록들은 비련의 여인은 있었지만 한국판 마타하리는 없었다고 말한다. 반세기 전 한국판 마타하리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한 켠에서는 또 다른 한국의 마타하리가 잡혔다. 우리는 다시 어떤 진실과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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