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이 네 가지 혈액형만큼이나 분명하게 여섯 가지 범주로 구분되던 시절이 있었다. OB, 삼성, MBC, 해태, 롯데, 삼미. 그 시절 부산 사람들은 ‘롯데껌’만 씹었고, 광주 사람들은 ‘해태 아이스크림’만 고집했다. 그것은 ‘껌 팔아 야구 하는 처지’라거나 ‘부라보콘 100만 개를 팔아야 선동열 연봉 준다’는 어느 구단 관계자의 애교 섞인 투정이나마 그냥 웃어넘기지 못했던 팬들의 충성심의 표현이었고, 그들이 사랑하는 선수와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이었다….’ (김은식, ‘126, 팬과 함께 달리다’ 중에서)
인상적인 서두로 시작하는 이 소박한 책은 언뜻 보면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 프로야구의 내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비행했던 ‘야구의 추억’이라는 책의 저자가 쓴,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우승팀 SK 와이번스의 피와 땀이 엉긴 (흔하디흔한) 성공담처럼 보인다. 이미 27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의 짧지 않은 역사에서 일어난 고작 한 번의 우승이 책 한 권으로까지 승화(?)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김은식은 진지하되 결코 무겁지 않은 호흡으로 이 한 번의 우승 깃발 뒤에 아로새겨진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전환의 시금석을 우리에게 찬찬히 보여준다. 그 시금석은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팬을 위한 야구 스포테인먼트’라는 글로벌한 화두다. 적어도 이 저자가 보기엔 2007년 시즌 와이번스가 일궈낸 진정한 가치는 우승이 아니라 바로 스포테인먼트의 진정한 시작인 셈이다.
지난해 ‘스포테인먼트’ 진정한 시작
프로스포츠라면 당연히 팬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아닌가 반문하는 이는 한국에서 프로스포츠가 봇물처럼 출범한 제5공화국의 특수한 비극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의 프로스포츠는 팬이나 구단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구단의 모기업 오너의 자존심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정치적 외압의 분위기에서 탄생한 것, 모기업의 홍보 효과만 올려주면 된다는 안이한 체제에서 비즈니스 마인드를 찾는다는 것은 아예 번지수가 다른 얘기였다. 즉 ‘라이온스’보다는 ‘삼성’이, ‘자이언츠’보다는 ‘롯데’가 더 중요한 상황에서 구단은 애초부터 프로페셔널한 비즈니스의 주체라기보다는 운영 손실액을 모기업에서 전액 지원받아 오직 우승만을 노리는 집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기업 간의 우승지상주의는 필연적으로 과당경쟁을 낳았고, 초기 10억원대이던 연간 적자폭은 10배 넘게 부풀어만 갔다. 경기당 평균관중 1만명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돌파한 1995년을 정점으로 한국 프로야구는 외환위기의 한파와 특급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문제의 본질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선뜻 해결할 수 없는 벼랑 끝에서 8개 구단 중 마이너 축에 속하는 SK 와이번스는 프런트와 선수단이 2인3각 경주의 파트너가 되어 힘겨운 걸음을 떼놓기 시작했다. 그라운드의 지휘자가 영원한 야전사령관 김성근 감독이라면, 야구라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펼치는 마케팅의 지휘자는 신영철 신임 구단 사장이다. 감독은 최선의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흘렸고, 사장은 “Fan First, Happy Baseball”의 구호를 실현하기 위해 야구장 안에 와이번스랜드를 만들고 승패에 관계없이 토요일이면 불꽃놀이판을 벌였으며, 이만수 수석코치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원 관객 속에서 팬티 바람으로 그라운드를 달렸다.
선수들 진한 냄새에 연관중 2배 늘어나는 기적
이기는 것만이 최고선이라 주입받은 선수들은 팬들을 느끼기 시작했고, 팬들은 선수들의 냄새를 진하게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연관중 수가 전해보다 꼭 2배 늘어난 65만명을 기록한 것이다. 여덟 팀 중 네 번째에 그치는 수치지만 인천이 연고지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약진이다.
신영철 사장은 거침없이 말한다. 스타디움은 이제 파크(park)가 돼야 한다고. 그리고 와이번스의 경쟁 상대는 라이온스나 트윈스가 아니라 극장이나 PC방, 입시학원 또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일 수도 있다고. 그래도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은 역시 김성근 감독의 말이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나? 그건 바로 선수가 잘못했을 때 불러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야단칠 수 있는 자세야. 그게 되지 않고 그냥 뒤에서 얘기하고, 중간에 누구 통해서 얘기하고, 그렇게 되면 끝이야.”
김성근-신영철 콤비가 어쩌면 한국 프로스포츠의 새벽을 열어젖히지 않을까? 이 책의 작은 매력은 인천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와이번스의 경기장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3월29일 팡파르를 울린 2008년 프로야구에서 와이번스의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어쩌지? 나는 영원한 롯데 팬인데.
인상적인 서두로 시작하는 이 소박한 책은 언뜻 보면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 프로야구의 내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비행했던 ‘야구의 추억’이라는 책의 저자가 쓴,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우승팀 SK 와이번스의 피와 땀이 엉긴 (흔하디흔한) 성공담처럼 보인다. 이미 27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의 짧지 않은 역사에서 일어난 고작 한 번의 우승이 책 한 권으로까지 승화(?)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김은식은 진지하되 결코 무겁지 않은 호흡으로 이 한 번의 우승 깃발 뒤에 아로새겨진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전환의 시금석을 우리에게 찬찬히 보여준다. 그 시금석은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팬을 위한 야구 스포테인먼트’라는 글로벌한 화두다. 적어도 이 저자가 보기엔 2007년 시즌 와이번스가 일궈낸 진정한 가치는 우승이 아니라 바로 스포테인먼트의 진정한 시작인 셈이다.
지난해 ‘스포테인먼트’ 진정한 시작
프로스포츠라면 당연히 팬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아닌가 반문하는 이는 한국에서 프로스포츠가 봇물처럼 출범한 제5공화국의 특수한 비극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의 프로스포츠는 팬이나 구단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구단의 모기업 오너의 자존심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정치적 외압의 분위기에서 탄생한 것, 모기업의 홍보 효과만 올려주면 된다는 안이한 체제에서 비즈니스 마인드를 찾는다는 것은 아예 번지수가 다른 얘기였다. 즉 ‘라이온스’보다는 ‘삼성’이, ‘자이언츠’보다는 ‘롯데’가 더 중요한 상황에서 구단은 애초부터 프로페셔널한 비즈니스의 주체라기보다는 운영 손실액을 모기업에서 전액 지원받아 오직 우승만을 노리는 집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기업 간의 우승지상주의는 필연적으로 과당경쟁을 낳았고, 초기 10억원대이던 연간 적자폭은 10배 넘게 부풀어만 갔다. 경기당 평균관중 1만명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돌파한 1995년을 정점으로 한국 프로야구는 외환위기의 한파와 특급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문제의 본질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선뜻 해결할 수 없는 벼랑 끝에서 8개 구단 중 마이너 축에 속하는 SK 와이번스는 프런트와 선수단이 2인3각 경주의 파트너가 되어 힘겨운 걸음을 떼놓기 시작했다. 그라운드의 지휘자가 영원한 야전사령관 김성근 감독이라면, 야구라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펼치는 마케팅의 지휘자는 신영철 신임 구단 사장이다. 감독은 최선의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흘렸고, 사장은 “Fan First, Happy Baseball”의 구호를 실현하기 위해 야구장 안에 와이번스랜드를 만들고 승패에 관계없이 토요일이면 불꽃놀이판을 벌였으며, 이만수 수석코치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원 관객 속에서 팬티 바람으로 그라운드를 달렸다.
선수들 진한 냄새에 연관중 2배 늘어나는 기적
이기는 것만이 최고선이라 주입받은 선수들은 팬들을 느끼기 시작했고, 팬들은 선수들의 냄새를 진하게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연관중 수가 전해보다 꼭 2배 늘어난 65만명을 기록한 것이다. 여덟 팀 중 네 번째에 그치는 수치지만 인천이 연고지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약진이다.
신영철 사장은 거침없이 말한다. 스타디움은 이제 파크(park)가 돼야 한다고. 그리고 와이번스의 경쟁 상대는 라이온스나 트윈스가 아니라 극장이나 PC방, 입시학원 또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일 수도 있다고. 그래도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은 역시 김성근 감독의 말이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나? 그건 바로 선수가 잘못했을 때 불러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야단칠 수 있는 자세야. 그게 되지 않고 그냥 뒤에서 얘기하고, 중간에 누구 통해서 얘기하고, 그렇게 되면 끝이야.”
김성근-신영철 콤비가 어쩌면 한국 프로스포츠의 새벽을 열어젖히지 않을까? 이 책의 작은 매력은 인천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와이번스의 경기장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3월29일 팡파르를 울린 2008년 프로야구에서 와이번스의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어쩌지? 나는 영원한 롯데 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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