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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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지고 옴팡지게 살았던 ‘한창기’란 넘 아는가

우리 시대 ‘문화 거목’ 11주기…천하광대의 열정적인 삶

  • 김화성 동아일보 편집국 전문기자

    입력2008-02-20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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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입식 영어교육 논란이 한창인 요즘, 한평생 순우리말을 사랑했던 고(故) 한창기 선생을 기리는 행사가 눈길을 끌었다.
    • ‘창작과 비평’이 2월3일 그의 타계 11주기를 맞아 펴낸 ‘특집! 한창기’ 출간 기념 행사가 그것.
    • 책은 생전에 그와 가까웠던 문화예술계 인사 59명이 쓴 추모글을 담았다.
    • 언론매체들은 이에 관한 특집 방송과 기사들로 그를 기렸다.
    •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펴냈던 한창기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 그가 즐겨 쓰던 넉넉한 전라도 사투리로 그의 삶을 반추했다. (편집자)
    찰지고 옴팡지게 살았던 ‘한창기’란 넘 아는가

    ‘뿌리 깊은 나무’를 키우고 ‘샘이 깊은 물’을 길어올렸던 고 한창기 선생의 자필 원고와 안경.

    많이들 바쁜가본디 어서 싸게들 가보쇼 나는 그냥저냥 가는 둥 마는 둥 갈라요 장다리밭에 노닐며 장다리꽃 따먹다 아지랑이 어질어질 나비 따라 가다가 뒷동산에 올라 삐비도 뽑아먹고 송홧가루 얼굴에 분칠도 하고 아카시아 훑어먹다 들에 내려 자운영 다북숲 논두렁에 앉아 꼴린 보릿대 꺾어 보리피리 만들어 삘리리 불며 놀다 갈라요 그렇게 노닐다 싸목싸목 갈 텡게 빨리 오라 늦게 온다 궁시렁들 마쇼 이리 가도 결국은 가는 길인디 머 헐라고 그리 바쁘게 종종거린다요 그래도 먼저 가신 곳 북적거리거든 내 자리도 하나 봐줬으면 쓰겄소(ㅎㅎㅎ ^^)

    꽃상여 단풍 든 산 넘어가네/ 산 너머 눈 쌓인 산마을에 닿거든/ 지친 몸 거기 퍼지게 누웠다가/ 한바람 눈발에 어디든 휘날리리. -박찬, ‘인생아!’ 전문

    오매! 큰일 나부렀네. 쩌그 봄이 슬금슬금 기어오고 있는디, 몸은 천근만근 녹작지근 꼼짝헐 수 없으니! 어쩐대여~? 일이 이렇게 되어번졌으니, 그냥장 으멍허게 꼬순 봄한티 무장해제당허고 몸을 매ㅌ겨부러야제.

    어와, 시상 벗님네들, 이내 말 쪼깨 들어보소. 인간 한생 질게 잡어 구십까정 산다 혀도 밥 먹고 똥 싸는 시간, 잠자고 아픈 시간, 걱정 근심으로 얼굴 우둥부둥 붓는 시간 모다 제허고 나먼 단 이십도 못 사는 거신디, 아차 한번 죽어지먼 북망산천 흙이 되어버링게. 봄놈이 왔다지만 세상사 어찌 쓸쓸허지 않겄소. 나도 어저끄 푸른 청춘이러니, 인자 보니 머리에 백설이 퍼얼~펄 날리고 있소그려!

    그렁게 벗님네덜! 못난 넘덜끼리 서로 무르팍 끼대고 앉어 한 잔 더 먹소, 또 한 잔 더 먹소 함시롱 거드렁거림서, 낄낄 히히 찧고 까부름서, 그렇코롬 한번 살아봅시다. 아따 쩌그 저 완산떡, 왜 그리 서댄대여! 머시라고? 물게똥 나올라고 혀서 찌깐 간다고? 어쩐지 걷는 것이 꼭 싸이렌인지 경보선수 같더랑게. 어그적저그적 뒤뚱우뚱 뿌그적뽀그적 딱 몸퉁퉁헌 오리 여편네여. 썩을녀러 인사, 머슬 그렇게 해장부터 허천나게 처먹었대여! 어디 놀부 마누래가 따로 있간디?



    찰지고 옴팡지게 살았던 ‘한창기’란 넘 아는가
    피런허고, 어느 시러배 자식이 밸시런 사기구라를 다 쳐도, 한생 싸목싸목 해찰혀감서 찰지게 살다 간 넘은, 쩌그 전라도 아랫녘 벌교땅 한창기(1936~1997)라는 넘이여!

    원스 어펀 어 타임, 그렁게 옛날부터 전라도 땅에 놀기 좋아허는 넘들 수두룩박적이지만 그 화상만큼 아금박시럽고, 오달지고, 깨끔허고, 궁상이나 근천 안 떨고, 깔미짠허고, 으지짠허게 놀지 않고, 삐까뻔쩍 티 안 내고, 은근슬쩍 삼베빤스 방귀 새듯 놀다 간 넘은 없어야.

    이 시상 대합 홍합에 무신 백합 죽합 피조개까지 밸시런 조갑지가 다 있지만, 그중 동지섣달 벌교뻘 꼬막이 최고여라. 한창기는 그중에서도 등껍딱이 꺼무티티헌 참꼬막이여. 쫄깃쫄깃 입에 쩍 달라붙고, 상큼 향긋헌 바다냄새며, 파도소리 그득헌 그 참꼬막 말이여!

    한창기는 허우대도 헌칠허니 잘났고, 머리도 쌈빡허고, 핵교도 서울 법대 나온 먹물 중의 먹물인디, 출세니 머니 그런 디는 통 관심이 없었어야.

    무신, 눈 비스듬히 치켜뜨고 본다는 사시 판검사나, 두 눈 짱짜라니 뜨고 본다는 행시 군수님이나, 눈이 쩌그 바다 건너 바깥만 쏘아본다는 외시 대사님 공부 같은 것은 생전 구다본 적도 없응게. 서울 법대 댕길 쩌그 남덜은 판검사 공부허느라 눈에 호랭이불 켜고 있는디, 이 쪼다는 서울 북촌 이 고샅 저 고샅 어슬렁거림서 곱게 늙은 한옥에 넋이 빠져, 하루 점드락 배창시 꼬르륵거리는 소리도 몰랐당게, 참말로 거시기 안 헝가 이~잉?

    돈 밥 안 되는 한글, 한복, 한지, 한옥, 한식, 판소리 이런 것들만 끼대고 살았으니 미쳐도 한참 미쳤지. 사람덜이 거들떠보지 않는 하찮고 허접쓰레기 같은 것들만 좋아혔응게. 신식 옷감에 싸게맞은 무명 삼베 모시 명주 이런 피륙덜을 장똘뱅이처럼 온 사방 돌아댕김서 보는 족족 사들였응게. 피런허고, 지 소개하는 종오때기 취미란에 ‘한글’이라고 써넣었을 거시여. 70년대에 벌써 ‘통인가게’니 ‘이가 솜씨’니 하는 전빵 이름도 지어줬당게로, 참말로 멋을 알기는 아는 냥반이여. 음식으로 말허먼 개미가 겁나게 있는 선달이여.

    어쩌다 돈 좀 생기면 판소리전집, 민요음반 맹근다고 난리 브루스 치고, 또 찻그릇, 옹기에 조선 밥그릇 반상기 맹근다고 콧바람 불고 댕깅게로, 잡지 ‘뿌랑구 짚은 낭구(뿌리 깊은 나무)’ 팔아서 쪼깨 남은 돈마저 어디 남아나겄어? “먼 일을 한번 헐라먼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헌다”고 소처럼 흐흐 웃었다던가. 참 밸시런 사람이여. 쪼깐헐 때 하도 잘 울고 띵깡을 잘 부려서 ‘앵보’ ‘괴보’라고 혔디야. 그려서 나중에 잡지 ‘뿌랑구 짚은 낭구’에 글 쓸 때 지 이름 석 자를 ‘한앵보’라고 혔다등마. 초등핵교 때 좌측통행혀라고 혔더니 논두렁에서도 외약 쪽으로만 갔다니 쪼깐헐 때부터 알아봤지.

    겁은 또 얼매나 많았간디. 한번은 차를 몰고 나갔다가 서울 종로에서 사고를 냈는디, 곧바로 뒤도 안 돌아보고 지 발로 면허찡 반납허고, 두 번 다시 운전대 안 잡았대여. 얼매나 가슴 쩔렸으먼 그렸겄어. 그러찮어도 쪼깐헌 간뎅이가 그 일로 무쇠솥의 깐밥 달라붙은 것같이 오그라 붙어버렸을 턴디 어쩌케 차를 몰 거시여. 전두환 장군 때 ‘뿌랑구 짚은 낭구’ 글 땜시 당국서 사장 들어오라고 눈 부라리먼 얼른 일본 출장 간다, 어디 간다 삼십육계줄행랑 쳐버렸대여. 대신 편집장이나 부사장이 들어가서 경을 쳤겄지. 박정희 때 두 번 남산 하얀방에 불려갔다 온 뒤로는 무조건 걸음아 날 살려라 내빼고 본다등마. 크크크.

    찰지고 옴팡지게 살았던 ‘한창기’란 넘 아는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한창기 선생에게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은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다.

    근디 도대체 아름다운 것이 머시대여? 한창기는 아름다운 것만 보먼 온몸이 사시나무 떨디키 부르르 떨려버리는 병적인 사람이여. 온몸이 나팔꽃처럼 활짝 열린 디지털 자동 캐넌카메라여. 순천 송광사 해우소 한글 팻말 ‘뒷간’이 너무 멋있다고, 스님덜한티 억지로 떼써서 띠어온 사람잉게.

    덕지덕지 화장발로 처발러놓은 것덜 보먼 화를 불같이 내고 펄쩍펄쩍 뛰었대여. 흰색 칠 건물을 보면 “저것이 무슨 흰색이여”라며 치를 떨었대여. 차라리 시멘트 벽 그대로 놔두랑거여. 그거이 헐씬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거지. 눈썰미가 타고나부렀어. 다른 사람보다 천배 만배, 아니 차원이 아예 다른 화상이여.

    “푸른 하늘은 싫고, 흰 하늘이 좋아” “화사하고 야한 장미꽃은 싫어, 모란 작약 매화 수선화 불두화 능소화 마삭줄 같은 수수하고 수줍은 꽃이 좋아” “고무풍선에 바람이 꽉 차기 직전, 위에서 살짝 누르면 생기는 둥근 선을 그려내봐” “항아리 볼륨같이 잘생긴 엉덩이 선을 한번 만들어봐” “한글은 낱말 덩어리로 읽히니 낱말 사이는 넓게 하고, 글자 사이는 좁게 해라” “한글은 빨랫줄에 걸려 있는 빨래나 같다. 중성을 기준선으로 받침 없는 글자는 위쪽에만 널려 있어야 한다”….

    한창기는 늘 눈금자 가지고 댕긴 사람이여. 무신 사장이, 마침표 점이 1mm 어긋나게 찍혔다고 고래고래 고함친대여! 오자 났다고 “총살시켜 버리겠다”고 헌대여. 아무리 작은 거라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콕콕 찝어낸 천하의 좁쌀이여, 좁쌀! 징혀부러. 증말 엔간히야지 원.

    근디 이 좁쌀이 말 한번 삐끗 어긋장나먼 닭모가지 채가던 시절에(1978년), “차라리 양담배를 수입하라”고 허고, 전두환 눈 부라리던 1980년에 “미군은 어서 용산에서 물러가라”고 하더니, 1983년엔 “양심 병역 거부자 일리 있다”고 왜장쳐버렸단 말이여. 허기사 그 한참 전에 “혀끝과 붓끝이 같아야 허는디 왜 (전두환)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냐”며 딴지걸 때 알아봤어야 허는 거신디. 기양 ‘~님’자만 붙이먼 되는 거신디, 먼 넘의 자다가 봉창 뚜디리는 각하냐 이거시지 이~잉?

    서울 성북동에 지 한옥집 지을 때, 전국 발품 팔어 조선 마지막 궁중목수를 찾어낸 것도 징헌디, 그 목수 나이 너무 자셔, 하루 일 허고 사흘 쉬어야 허는 처지, 그려도 제대로 지어야 헌다고, 그 어르신 몸 추스르게 혀서 5년 만에 지어내니, 오매 징허고 징헌 인사. 문틀이 맴에 안 든다고 아홉 번인가 작파허고 새 칠로 맹글라고 헝게, 천하의 그 궁중 묵수도 나자빠져버렸다는, 아주 꾀까다롭고 시시콜콜 까탈스런 화상. 잡지 ‘뿌랑구~’ ‘뿌’의 ‘ㅜ’ 모음 아래 획을 작대기로 하느냐, 아니먼 둥근 점으로 하느냐 고민허느라, 몇날 밤을 샜다는 천하의 좁쌀이.

    70년대 대학 댕길 때 공짜 ‘판소리 감상회’에 가끔 가보먼, 어쩌다 그 좁쌀이 한복 날아갈 듯 차려입고 뒤에 퍽주거니 앉어, 외양간 늙은 암소같이 웃고 있도만. 허참, 머가 그렇게 부끄런지 생전 “어~, 됴ㅎ타” 허는 추임새 넣는 것 한번 못 봤어. 언진가 북치는 김명환 고수가 “발행인도 한번 소락떼기 한번 팍 질러보쇼” 헝게, 이 화상 얼굴이 금방 저녁노을 붉은 홍시 돼버리도만. ㅋㅋㅋ.

    한창기는 61년을 이승에서 놀다 갔는디, 혼인허지 않고 혼자 살어부렀어. ‘이 시상엔 여자보다 재미있는 게 너무너무 많아서’라던가. ‘한 아낙이 원하는 남편으로서 살 자신이 없어서’라던가. 니기미, 말은 참말로 잘혀부리네. 허지만 후사는 1남1녀 ‘뿌랑구 짚은 낭구’ ‘시암이 짚은 물(샘이 깊은 물)’을 두었응게 그만허먼 되아부리ㅆ제.

    찰지고 맛나고 옴팡지게 살다 간 전라도 쌩얼. 티 안 내면서 100년 앞을 내다본 옹골진 건달. 한글, 한복, 한지, 한옥, 한식, 판소리를 허벌나게 좋아헌 소리광대, 그려서 웃녘 전주 이미지와 징허게 도싱헌 아랫녘 비개비. 한글 가로쓰기, 구어체 광고카피, 한글 입말체로 먹물들 시상에 쌍표창을 날려버린 통쾌 유쾌 상쾌허고, 깜찍 발랄 발칙헌 도발꾼.

    허참! 그렇게 해찰해가먼서 재미나게 살았으먼 좀 오래 놀다 갈 것이지, 그새를 못 참어 그리 바삐 가버렸당가! 이승은 하픔나게 심심헝게, 저승으로 혼차 재미난 것 찾어 횡~허니 떠나버렸당가! 테레비 때 안 탄 깡촌 까막눈 노인덜 구석구석 찾아내, 그 토박이말 베껴 ‘민중자서전’ 맹글더니, 그 어르신덜 보러 얼릉 가버렸당가? 이~잉?

    저승 감서까지 ‘뫼똥 크게 허지 마라’ ‘지붕 없는 작은 조선 비석에 이름허고 생년월일 죽은 날만 써라’ 시시콜콜 꼭 원고 고치드끼 그렇게 징허게 교정 보고 가야 쓰겄는가?

    머리카락에 홈을 파듯 글을 쓴 완벽쟁이, 바늘로 시암을 파듯 한땀 한땀 따져보고 시도 때도 없이 눈금자를 들이댔던 왕좁쌀. 낄낄낄, 돈과 명예 권력 따위를 낙엽처럼 태워버린 전라도 개땅쇠, 천하광대, 조선 솔낭구, ‘오래된 미래’ 짱구머리 도치 냥반.

    *한창기는 영어 도사다. 순천중학교와 광주고등학교 시절 단파 라디오에서 나오는 ‘미국의 소리’를 들으며 익혔다. 가난으로 영어 가정교사를 밥 먹듯 하다 보니 ‘삼위일체’ 책이 저절로 외워졌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자마자 미군들을 상대로 영어 성경책을 팔았다. 내심 영어공부를 하려 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영어를 무기로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 세일즈맨으로 나섰고, 결국 한국브리태니커 사장이 됐다. 당시 브리태니커 한 세트 값은 피아노 한 대 값보다 비쌌다. 하지만 한창기에게 한번 걸리기만 하면 안 사고는 못 배겼다.

    오늘날 한국의 세일즈 영웅들 중에 한창기 밑에서 배운 이들이 수두룩한 연유다. 한창기는 미국 본사에 ‘구라’도 잘 쳤다. ‘미국 상품만 팔면 한국에서 반미운동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편지질을 해댔다.

    ‘한국문화에 기여하는 무슨 일인가 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본사에서 실탄(돈)을 타내 ‘뿌리 깊은 나무’를 만들었다. 한창기가 드디어 날개를 단 것이다. 이때부터 한창기 앞에는 거칠 게 없었다. 한판 걸판지게 노는 일만 남았다. 그는 그렇게 원없이 노닐다가 1997년 2월3일 홀연히 이 느자구(싹수) 없는 지구를 탈출해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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