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도의 대장봉 정상에서 바라본 선유도와 그 이웃 섬들. 뒤쪽에 부안 변산반도가 아스라하다.
전북 군산시와 충남 서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강하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철새도래지 가운데 하나다. 청둥오리 기러기 흰죽지 고방오리 쇠오리 가창오리 고니 개리 등을 비롯해 40여 종, 70여만 마리의 겨울철새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철새로 가득 찬 바다’를 상상하기 쉽지만, 금강하구의 수면 면적이 워낙 넓은 데다 철새들의 이동이 빈번해 현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철새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군산시 나포면 소재지 근처의 십자들녘에는 기러기가 쉽게 눈에 띄고, 이 들녘 부근의 금강 수면에는 가창오리가 내려앉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수만 마리 가창오리가 펼치는 군무(群舞)를 볼 수 있다. 십자들녘과 금강하구언 사이의 도로변에 들어선 철새조망대에는 철새에 관련된 자료가 다양하게 전시돼 있고, 고배율 망원경을 이용한 탐조(探鳥)도 가능해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금강하구에 자리한 군산항은 일제강점기 당시 호남지방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던 장소다. 지금도 내항 주변을 비롯한 군산시내에는 유럽풍으로 지어진 옛 군산세관 본관,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일본 무사의 투구 모양인 옛 조선은행, 군산시내와 내항을 연결하기 위한 해망굴, 일제강점기 크게 번성했던 째보선창 등 식민지 시절의 유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유적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억압과 수난의 우리 근대사를 절로 배울 수 있다.
군산 내항에는 선유도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주말과 휴일은 말할 것도 없고, 비수기 평일에도 유람선이 수시로 출항한다. 하지만 유람선을 타고 주마간산 식으로 떠나는 섬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라 할 수 없다. 섬에서는 적어도 하룻밤 이상을 묵어야 한다. 섬의 낮 풍경보다도 밤의 정취가 더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무녀도 아래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일몰.
선유도는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의 여러 섬 가운데 하나다. 선유도를 비롯해 야미도 신시도 대장도 장자도 무녀도 방축도 말도 횡경도 비안도 등 무려 63개의 섬이 모여 고군산군도를 이룬다. 바다에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이 떼지어 있는 산처럼 보여서 그런 지명이 붙었다. 섬들이 워낙 많다 보니 바다가 섬을 에워싼 게 아니라 섬들이 바다를 껴안은 듯하다. 섬과 섬 사이에 드리운 바다도 산중의 호수처럼 잔잔하고 아늑하다.
선유도에는 자동차를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차량통행이 자유로울 정도로 넓은 도로가 별로 없어 섬 안에 선착장과 민박집을 오가는 승합차 몇 대만 눈에 띈다. 대신 전동카트, 삼발이 오토바이, 자전거 등 교통수단이 갖춰져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권할 만한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대여료가 1시간 3000원, 하루 1만원으로 저렴할 뿐 아니라 작은 다리를 통해 선유도와 연결된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의 구석구석까지 둘러볼 수 있다. 선유도와 그 이웃 섬들은 면적이 넓지 않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없어서 ‘하이킹의 천국’이라 불릴 만하다.
선유도에서는 해넘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 고군산군도의 서쪽 바다와 하늘을 불사르는 듯한 일몰은 화려함을 넘어 장엄하기까지 하다. 특히 망주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해넘이가 일대 장관이지만, 요즘에는 선유도와 무녀도를 잇는 무녀교나 그 아래 해안도로에서도 아름다운 일몰과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신선이 노닐 정도로 풍광 빼어난 선유도의 전경을 조망하려면 대장도의 대장봉(143m)에 올라야 한다. 선유도에서 장자도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가는 대장도에는 서울로 떠난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할매바위와 길이 30m의 작은 몽돌해변도 있다. 몽돌밭 근처의 바위틈에서는 실낱같은 석간수가 흘러내린다. 마을 뒤편에 우뚝 솟은 대장봉은 가파른 암봉이지만 최근 군산시청에서 새로운 등산로를 닦아놓은 덕에 오르내리기가 수월해졌다. 마을에서 약 20분 만에 올라서는 대장봉 정상에서는 고군산군도의 숱한 섬들과 변산반도, 새만금방조제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문자 그대로 일망무애(一望無涯)의 장쾌한 조망이 온갖 시름을 날려주는 듯하다.
선유팔경을 비롯한 절경이 있고 낚시, 하이킹, 조개잡이, 암봉트레킹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선유도에서는 1박2일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그래서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언젠가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시간 여유가 있다면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에서 차로 30~40분 거리에 불과한 고창읍 석정온천단지에서 펼쳐지는 ‘고창국화축제’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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