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인근의 티베트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타루초’.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가는 입구인 펠바(Pelbar)까지는 히치하이킹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정해진 교통편이 없다는 것과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일이었다. 해외 여행객들은 빈자리가 있더라도 지프를 빌려 동행끼리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다.
펠바에 도착해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식당을 찾았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요량이었다. 어차피 하루 이틀 만에 원하는 차량을 구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식당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호객꾼이 다가왔다. 그는 놀랍게도 오토바이 얘기를 꺼냈다. 여태껏 오토바이로 에베레스트를 갔다는 여행자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흥정을 제안한 그는 건장한 티베트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니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오토바이로 산을 넘는 현지인들을 종종 만났다. 그가 제시한 조건대로 흥정이 성사됐다. 기사와 함께 하루 전날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표를 구입했다. 기사는 오토바이 통행료를 내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고, 내게도 10일 사용이 가능한 입장권(180위안) 대신 가장 싼 하루짜리 입장권(25위안)을 선심 쓰듯 안겨주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순진하게 오토바이로 베이스캠프를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 있던 지프가 모두 떠난 뒤에야 오토바이 기사가 나타났다. 5월의 티베트 고원.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맞는 바람은 매서웠다. 펠바를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베레스트 입구에 해당하는 매표소가 나왔다. 그러자 오토바이 기사는 내게 걸어가라고 했다. 사람을 태우고 들어가면 오토바이도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이드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속셈이었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비포장길을 걸어 에베레스트 입장권을 검사하는 곳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손에 쥐어진 1일 입장권이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매표소에서 베이스캠프까지 가려면 5000m가 넘는 봉우리를 두 개나 넘어야 한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나를 매표소 직원이 불러 세운다. 그러고는 입장권을 보자고 한다. 내 손에 들린 베이스캠프 입장권은 당일치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기사의 꾐에 넘어가 하루에 다녀오겠다는 호기를 부렸던 것이다. 내가 건넨 하루짜리 입장권을 보고 검표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는 내게 “임파서블(Impossible)”이라고 고개를 흔들며 “정말로 걸어서 베이스캠프를 하루에 다녀올 생각이냐”고 재차 확인한다. 내가 단호하게 “그렇다”고 하자 다행히도 그는 더는 제지하지 않았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본격적인 비포장 산길을 올랐다. 팡라(Pang-La)로 향하는 길은 엄청나게 꼬부라진 길이었지만, 정상까지 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팡라에서는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히말라야 줄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어디선가 차를 마시고 있던 오토바이 기사에게 신호를 보낸 뒤 천천히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곳은 해발 5120m.
해발 5200m 위대한 자연 앞에서 온몸이 짜릿
해발 5200m 고지에 자리한 에베레스트산 베이스캠프.
두 번의 펑크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에 가기 위해 셔틀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곳이다. 셔틀버스 탑승 명목으로 80위안을 더 내야 했지만 오토바이 때문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돈이 아깝지 않았다. 셔틀버스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원인 롱푸 곰파(Rongphu Gompa)까지 올랐다. 만약 오토바이를 탔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길이다. 해발 4980m에 자리한 롱푸 곰파는 빙하처럼 보이는 거대한 산 위에 있었다. 분명 그곳은 평범한 인간이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 수 없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온 세상이 고요 그 자체다. 찬바람만이 창문에 부딪히며 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튿날 오전 7시, 이곳은 중국의 서쪽이지만 놀랍게도 베이징과 시차가 없어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자 동트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바람이 매섭게 느껴졌지만 곧 해가 떠오를 것 같아 숙소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순간 생각지도 않던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붉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디가 동쪽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가운데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나와 에베레스트 봉우리 정상을 비췄다. 하얀색 피라미드 모양의 에베레스트가 붉게 물들었다. 베이스캠프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앞으로 걸어갔다. 길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분명 다른 세상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인간이 걸어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 그 앞에 에베레스트가 우뚝 서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거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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