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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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원 시작, 몇 분 만에 1억7800만원 “낙찰!”

서울옥션 미술경매 이틀간 ‘박수’와 ‘탄식’ … 미술 재테크 열기 반영 예비투자자도 북적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10-04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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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만원 시작, 몇 분 만에 1억7800만원 “낙찰!”
    “작품번호 101번 운보 김기창 작품 ‘태양을 먹은 새’입니다. 200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2100만, 200, 300, 400…. 1억7200입니다. 1억7300 하실 겁니까? 마무리하겠습니다. 1억7300만… 아, 1억7400! 다른 분입니다. 1억7500 하시겠습니까? 1억7600만, 700만 하십니까? 마무리하겠습니다. 1억7600만… 아, 1억7700만입니다. 1억7800만. 900만 없습니까? 마무리하겠습니다. 1억7800만, 1억7800만, 1억7800만! (쾅) 낙찰입니다. 고맙습니다. 패들번호 ·#52059;·#52059;·#52059;번 손님께 1억7800만원에 드렸습니다.”

    김기창 화백이 생전에 자신의 ‘분신’으로 여겼다던 작품 ‘태양을 먹은 새’는 불과 몇 분 만에 도록에 적힌 2000만~3000만원대의 예상가를 훌쩍 뛰어넘어 억대로 ‘날아올랐다’. 경매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맞춰 숫자가 적힌 패들을 들었다 내리는 손짓이 여기저기서 순식간에 지나가고, 낙찰을 알리는 ‘쾅’ 소리가 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그러나 축하도 잠시, 또다시 다른 작품에 대한 경매가 시작된다.

    서면·전화·현장 참여 세 가지 방식으로 응찰

    “102번, 고암 이응노의 작품으로 넘어가겠습니다. 280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2900만….”

    9월15~1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옥션쇼’ 미술품 공개경매는 최근의 미술작품 투자 열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행사였다. 15일 근현대 고미술품 경매 현장의 경우, 공식적으로 응찰을 신청한 500명에 참관 인원까지 합하면 족히 1000여 명은 될 듯했다.



    미술품 경매에 참여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서면을 통해 미리 원하는 작품과 가격을 적어 제출하는 서면응찰, 옥션 관계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대리로 하는 전화응찰, 현장에 직접 와서 하는 현장응찰 등이다. 서면응찰은 미리 받아놓은 것이긴 하지만, 현장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함께 진행된다. 현장응찰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경우 주로 전화응찰이나 서면응찰을 한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는 현장응찰이 제일 낫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미술경매장이 경매에 참가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앞으로 미술작품에 투자하고자 하는 예비투자자들 역시 작품 이름과 예상가가 적힌 도록에 낙찰 가격을 비롯한 작품 정보를 적느라 분주하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김모 씨도 예비 컬렉터다. 지난해부터 미술작품 컬렉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여자친구와 한 달에 서너 번 화랑가를 돌고 있고, 이번에 처음으로 경매 현장을 참관했다고.

    “부동산과 주식으로 재테크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을 줄이고 미술품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는 김씨는 “올해 안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할 생각이지만, 몇천만원이 아무렇지 않게 취급되는 경매 현장은 기가 꺾여서 다시 오기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이는 5년 전부터 경매 현장을 드나들었다는 이모 씨도 마찬가지. 미술애호가라는 그는 요즘 미술경매장에서 “100만원대 패들을 들면 ·#52059;팔린다”면서 “요즘은 미술시장이 투자 개념을 넘어 투기 개념에 가까워진 탓에 자금이 넉넉지 못한 미술애호가는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듯하다”며 아쉬워했다.

    2000만원 시작, 몇 분 만에 1억7800만원 “낙찰!”

    미술경매 현장 한쪽에선 응찰자들의 전화로 분주한 모습이다.

    서울옥션 측에 따르면 일반 경매에서 거래되는 작품의 가격대는 1000만원 미만이 약 40%, 1000만~5000만원이 30%, 5000만~1억원이 20%, 1억원 이상이 10%를 차지한다. 하지만 미술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이 지난해 초 200명에서 현재 500명 이상으로 증가함에 따라 낙찰률도 동반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가격 역시 오름세다.

    이틀간 열린 서울옥션 미술경매에서의 총 낙찰금액은 363억원. 이번 경매에서는 앤디 워홀의 ‘자화상’이 27억원에 낙찰돼 국내에서 경매된 해외작품의 최고 기록을 깼다. 그리고 국내 작가로는 이우환의 1978년작 ‘선으로부터’가 16억원에 낙찰돼 최고가를 기록했다.

    10년 전부터 미술작품 경매에 참여했다는 여성 컬렉터 김모 씨는 “아는 사람 중 미술작품에 투자해 손해 봤다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문화가 발전할수록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투자가치가 있다”고 자신했다.

    투기 vs 투자 … 미술작품에 관심 세계적 현상

    하지만 모든 작품의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날 경매를 참관한 초보 컬렉터 박모 씨는 올 초 구입한 A화백의 수천만원대 작품이 이번 경매에서 유찰된 탓에 아내에게 핀잔을 들어야 했다. A화백의 작품은 대부분 지난 1년간 5~10배 오르다가 최근 주춤하고 있는 상황. 그는 “작품이 마음에 들어 샀지만 거품이 꼈을 때 구입한 것 같아 왠지 손해 본 느낌”이라며 속상해했다.

    25년 경력의 한 컬렉터는 “재작년 100만원에 구입한 B작가의 작품이 지난해 1000만원대로 올랐다가 점차 떨어지는 추세”라면서 “올해는 C, D작가의 작품이 6개월 만에 5배나 뛸 정도로 급등세”라고 설명했다.

    “주식에 빗대 생각해보면 은행주가 강세였다가, 건설주가 강세인 식으로 옮겨가는 것 같아요. 수십 년에 걸쳐 오른 박수근 작품의 가격 폭을 젊은 작가가 짧은 기간에 훌쩍 넘는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해요. 작품의 가격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그 폭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죠.”

    그러나 미술작품 투자 붐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과열이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부산 공간화랑신옥진 대표는 “중국이나 일본 시장의 열기도 우리 못지않다”면서 “경제 수준에 비해 미술시장의 규모가 좀더 커지리라 기대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서울옥션의 심미성 이사 역시 “예전에는 작가 지명도만 봤지만, 요즘에는 작품의 질 등 내용도 따지기 시작했다”면서 “컬렉터의 수준이 올라가는 만큼 일각의 과열 양상은 가라앉고 미술경매의 기반은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성공적인 미술작품 투자를 위해 “경매장뿐 아니라 화랑과 전시회 등을 꾸준히 다니면서 작품에 대한 안목을 기르라”고 조언했다.

    투자 여부를 떠나 기회가 된다면 미술작품 경매 현장에 한 번쯤 가볼 것을 권한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예술품을 긴장감 있게 감상할 수 있으며, 경매 특유의 재미를 ‘예술적으로’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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