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난 9월27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최고경영자(CEO)를 꿈꾸는 20∼40대 샐러리맨들과 만났다. 노타이에 푸른색 셔츠를 받쳐 입은 이 후보는 샐러리맨 온라인커뮤니티 운영진 20여 명의 제안과 질문을 메모하는 등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강대리 과장 만들기’ 블로그 운영자 강효석 씨가 먼저 질문에 나섰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한민국의 대리들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지 말해달라.”
이 후보는 준비 중인 공약을 공개했다.
“아이를 낳아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정부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을 당 공약에 담도록 제안해놓았다. 대리급 나이가 되면 보육비와 주택문제는 복지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게 하겠다.”
평사원으로 출발해 30대에 CEO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는 특유의 리더십론으로 설명했다.
“의사 결정은 민주적으로 하지만 집행에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이 내 리더십의 특징이다. 시대가 변하면 리더의 조건도 바뀐다. 리더는 희생하고 본보기가 돼야 한다.”
한나라당이 이 후보 체제로 전환된 지 한 달. ‘이명박표 CEO 정당’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전통적인 여의도식 정치를 할 바에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혀온 그는 추석 연휴 이후 가는 곳마다 CEO형 리더십을 강조한다. 그가 강조하는 ‘CEO형 정치’의 핵심은 ‘효율성’ ‘적확성’ ‘탈이념 및 프로페셔널리즘’ 등이다.
효율성·적확성·탈이념 및 프로페셔널리즘
이 가운데 이 후보가 구상하는 ‘기업형 정당조직’의 뼈대는 효율성이다. 이 후보는 ‘다선 의원은 대접해야 한다’ ‘전문성은 있지만 정치 경험이 일천해 중용하기 어렵다’는 등의 여의도식 논리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는 이런 정치논리에 칼을 댈 것을 은연중 암시했다. 경선 직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 앞에서 기자들이 선거운동 방향에 대해 묻자 “(경선 때) 의원들이 왜 후보 옆에만 있으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앞으로) 선대위는 기능 중심으로 꾸릴 것”이라고 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기술전문 관료에 가까운 이 후보는 ‘필요한 자리에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는 논리를 자주 강조한다. 이런 CEO형 용병술은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진다.
이 후보는 최근 핵심 측근인 이재오 의원에게 “해외 사례 등을 연구해 국내 최고 수준의 기획 관련 업체에 선대위 구성 프로젝트를 의뢰하라”고 지시했다.
이 의원은 “이제는 정치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이 지시를 받아들였다. 이 의원은 “앞으로 홍보 등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아웃소싱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조직, 그것도 대선캠프를 아웃소싱한다는 발상은 정치인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후보가 “지역구 의원은 지역에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이 후보가 이런 논리를 강화하게 된 일화 하나.
8월20일, 경선 투표에서 뒤처졌으나 여론조사에서 기사회생한 이 후보가 전당대회장 내 VIP실에 앉아 방송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친 표정의 이 후보는 마침 곁을 지나던 한 참모를 불러 세웠다. 그는 볼펜으로 A4 용지에 영남권의 지역구 상황을 그려가며 이렇게 역정을 냈다.
“당초 보고로는 영남권 A 지역구에서는 내가 박 전 대표를 확고하게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줄 아느냐. 지역구 의원들이 쓸데없이 서울에서 내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골이 지역구인 의원들이 도대체 서울에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
이 후보의 이 같은 ‘탈(脫)여의도’ 사고방식은 선대위 구상 등을 실무적으로 작업하는 대선준비팀 구성원 면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팀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초선)을 제외하고는 5개 분과의 간사와 팀원 20여 명 중 현역 의원은 없다. 수석 분과인 전략 분과는 당료 출신인 이태규 씨가 맡고 정책은 고려대 곽승준 교수, 뉴미디어는 조선일보 인터넷뉴스부장 출신인 진성호 씨, 홍보는 삼성그룹 구조본 부사장 출신인 지승림 씨, 조직은 정태근 전 서울시 부시장이 지휘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현역 의원과 실무를 맡은 전문가그룹 간에 ‘신경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예전 같으면 현역 의원이 맡을 각 분과를 전문가 그룹이 차지하다 보니 선대위 구상 등 핵심 정보에 대한 현역 의원들의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이런 CEO형 정치와 정당 운영에 대한 문제점도 거론된다. 우선 당무와 인사에 대한 이 후보의 판단이 예상보다 빠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기존 정치인보다 느리다는 비판론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초선 의원들이 맡는 자리를 결정하는 데 20여 일이나 걸린 경우도 있다”고 투덜거렸다. 정종복 의원이 맡은 제1 사무부총장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정치는 기업과 달라” 거부 반응도 여전히 커
이에 대해 측근들은 “이 후보가 빠른 판단이 필요한 일부 정무 관련 결정을 마치 기업에서 수십, 수백억원의 투자를 결정하는 것처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치권에서야 한번 결정하고 다시 뒤엎을 수도 있지만 기업 투자는 그럴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한다.
‘기업식 정치 또는 정당 운영’이라는 이 후보의 콘셉트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도 여전히 크다. 심지어 한나라당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당직자들도 마찬가지다.
10년차인 한 고참 당료는 “정치는 이윤 추구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기업행위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기업에서는 돈이 안 되면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겠지만 정치는 손해를 보더라도 향후 명분 확보와 대의를 위해 일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래야 사람이 이 후보 주변에 모인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 비해 이 후보의 인간적 카리스마가 아직 부족하다는 세간의 평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분석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한민국의 대리들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지 말해달라.”
이 후보는 준비 중인 공약을 공개했다.
“아이를 낳아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정부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을 당 공약에 담도록 제안해놓았다. 대리급 나이가 되면 보육비와 주택문제는 복지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게 하겠다.”
평사원으로 출발해 30대에 CEO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는 특유의 리더십론으로 설명했다.
“의사 결정은 민주적으로 하지만 집행에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이 내 리더십의 특징이다. 시대가 변하면 리더의 조건도 바뀐다. 리더는 희생하고 본보기가 돼야 한다.”
한나라당이 이 후보 체제로 전환된 지 한 달. ‘이명박표 CEO 정당’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전통적인 여의도식 정치를 할 바에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혀온 그는 추석 연휴 이후 가는 곳마다 CEO형 리더십을 강조한다. 그가 강조하는 ‘CEO형 정치’의 핵심은 ‘효율성’ ‘적확성’ ‘탈이념 및 프로페셔널리즘’ 등이다.
효율성·적확성·탈이념 및 프로페셔널리즘
이 가운데 이 후보가 구상하는 ‘기업형 정당조직’의 뼈대는 효율성이다. 이 후보는 ‘다선 의원은 대접해야 한다’ ‘전문성은 있지만 정치 경험이 일천해 중용하기 어렵다’는 등의 여의도식 논리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는 이런 정치논리에 칼을 댈 것을 은연중 암시했다. 경선 직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 앞에서 기자들이 선거운동 방향에 대해 묻자 “(경선 때) 의원들이 왜 후보 옆에만 있으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앞으로) 선대위는 기능 중심으로 꾸릴 것”이라고 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기술전문 관료에 가까운 이 후보는 ‘필요한 자리에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는 논리를 자주 강조한다. 이런 CEO형 용병술은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진다.
이 후보는 최근 핵심 측근인 이재오 의원에게 “해외 사례 등을 연구해 국내 최고 수준의 기획 관련 업체에 선대위 구성 프로젝트를 의뢰하라”고 지시했다.
이 의원은 “이제는 정치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이 지시를 받아들였다. 이 의원은 “앞으로 홍보 등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아웃소싱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조직, 그것도 대선캠프를 아웃소싱한다는 발상은 정치인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후보가 “지역구 의원은 지역에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이 후보가 이런 논리를 강화하게 된 일화 하나.
8월20일, 경선 투표에서 뒤처졌으나 여론조사에서 기사회생한 이 후보가 전당대회장 내 VIP실에 앉아 방송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친 표정의 이 후보는 마침 곁을 지나던 한 참모를 불러 세웠다. 그는 볼펜으로 A4 용지에 영남권의 지역구 상황을 그려가며 이렇게 역정을 냈다.
“당초 보고로는 영남권 A 지역구에서는 내가 박 전 대표를 확고하게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줄 아느냐. 지역구 의원들이 쓸데없이 서울에서 내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골이 지역구인 의원들이 도대체 서울에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
이 후보의 이 같은 ‘탈(脫)여의도’ 사고방식은 선대위 구상 등을 실무적으로 작업하는 대선준비팀 구성원 면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팀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초선)을 제외하고는 5개 분과의 간사와 팀원 20여 명 중 현역 의원은 없다. 수석 분과인 전략 분과는 당료 출신인 이태규 씨가 맡고 정책은 고려대 곽승준 교수, 뉴미디어는 조선일보 인터넷뉴스부장 출신인 진성호 씨, 홍보는 삼성그룹 구조본 부사장 출신인 지승림 씨, 조직은 정태근 전 서울시 부시장이 지휘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현역 의원과 실무를 맡은 전문가그룹 간에 ‘신경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예전 같으면 현역 의원이 맡을 각 분과를 전문가 그룹이 차지하다 보니 선대위 구상 등 핵심 정보에 대한 현역 의원들의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이런 CEO형 정치와 정당 운영에 대한 문제점도 거론된다. 우선 당무와 인사에 대한 이 후보의 판단이 예상보다 빠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기존 정치인보다 느리다는 비판론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초선 의원들이 맡는 자리를 결정하는 데 20여 일이나 걸린 경우도 있다”고 투덜거렸다. 정종복 의원이 맡은 제1 사무부총장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정치는 기업과 달라” 거부 반응도 여전히 커
이에 대해 측근들은 “이 후보가 빠른 판단이 필요한 일부 정무 관련 결정을 마치 기업에서 수십, 수백억원의 투자를 결정하는 것처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치권에서야 한번 결정하고 다시 뒤엎을 수도 있지만 기업 투자는 그럴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한다.
‘기업식 정치 또는 정당 운영’이라는 이 후보의 콘셉트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도 여전히 크다. 심지어 한나라당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당직자들도 마찬가지다.
10년차인 한 고참 당료는 “정치는 이윤 추구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기업행위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기업에서는 돈이 안 되면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겠지만 정치는 손해를 보더라도 향후 명분 확보와 대의를 위해 일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래야 사람이 이 후보 주변에 모인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 비해 이 후보의 인간적 카리스마가 아직 부족하다는 세간의 평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