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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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총 쏘고 축구화 닦고 “와 이리 좋노”

골 넣은 기쁨 표현 다양하게 진화 … 안정환 ‘반지의 키스’ 잊지 못할 장면

  •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입력2007-08-01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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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는 역시 골 맛! 여기에 멋진 세리머니가 더해진다. 축구만큼 화려한 세리머니를 자랑하는 스포츠도 없다. 축구장은 매우 넓은 곳이다. 그래서 골을 넣고 나면 한참이나 되돌아와야 하는데 이때 그냥 걸어오지 못한다. 기쁨에 넘쳐 뛰게 마련이다. 야구의 홈런은 홈런을 칠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필드를 한 바퀴 돌고 나서 홈 플레이트를 밟아야 점수가 난다. 그 사이 세리머니는 끝이 난다.

    하지만 축구는 골이 터지는 순간부터 경기가 재개되는 시간까지 전적으로 득점한 선수의 몫이 된다. 또한 축구는 골이 귀하다. 만약 농구선수들이 축구처럼 세리머니를 한다면 1쿼터를 다 뛰지도 못할 것이다. 90분 동안 차고 달리지만 많아야 두세 골 터지는 게 축구다. 그토록 귀한 골 때문에 선수들은 그라운드 절반을 내달리면서 짜릿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FIFA 상의 벗거나 정치적 구호, 선수 덮치는 행위 자제 당부

    마지막으로 축구가 격렬한 ‘공격’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테니스나 배구는 네트를 넘어가서 공격할 수 없지만 축구는 종횡무진으로 상대 문전을 유린해야 골을 얻는다. 그 가열한 공격을 성공시키고 나서 냉정하게 돌아서기란 어려운 것이다.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는 코너플래그를 잡고 개선장군처럼 포즈를 취한다. 아르헨티나의 바티스투타는 기관총을 쏘는 동작으로 거침없는 성향을 자랑한다. 독일의 클로제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공중제비를 돈다. 브라질의 베베토는 갓난아이를 어르는 세리머니를 선보였고 멕시코의 마르케스도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아기가 손가락을 빠는 동작을 보여줬다. 골 넣은 선수의 축구화를 닦아주는 모습도 자주 연출된다. 남미나 아프리카 쪽은 군무를 춘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상의를 벗거나 정치적인 구호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이와 함께 골 넣은 동료 선수에게 달려들어 덮치는(?) 행위도 자제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는 더 격렬하고 다양해진다. 그 까닭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외에도 한 가지 이유, 즉 방송 카메라가 얼굴을 클로즈업하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 중에는 안정환의 ‘반지의 키스’가 인상적이다. 경기 규칙상 실제로 반지를 끼지는 않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보여준 세리머니 때문에 여전히 안정환은 ‘반지의 제왕’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세리머니가 탄생한 데는 공로자가 따로 있다. 바로 황선홍(사진)이다.

    황선홍이 이회택 차범근 정해원 최순호 김주성 등 선배들과 다른 점은 그가 의식적으로 세리머니를 ‘연출’한 첫 번째 선수였다는 점이다. 황선홍 이전의 공격수들은 무조건 한 방향으로 달릴 뿐이었다. 동료들이나 벤치 쪽, 또는 아무 방향으로나 달렸다. 심지어 안정환도 처음엔 팔을 쭉 뻗으면서 마구 달렸다. 이런 안정환에게 황선홍은 “카메라를 보고 달려가라”고 지도했다고 한다. 실제로 황선홍은 양팔을 펴고 유유히 날아가는 동작을 보였고 입을 꽉 다문 채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1998년 4월1일 잠실종합운동장. 2002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기념 한일 친선경기 당시 황선홍은 폭우 때문에 잔디가 패어 불규칙 바운드로 공이 튀어오르자 순식간에 발리슛을 터뜨렸다. 골이 터지자 황선홍은 코너로 달려가 두 팔을 뻗으며 ‘헤드퍼스트(headfirst·거꾸로)’ 슬라이딩을 했다. 물론 그가 멋있게 쓰러진 방향에는 수많은 사진기자와 카메라맨이 있었다. 황선홍의 이 세리머니는 한국 축구사를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자료화면’이 되고 있다. 과연 그는 축구와 미디어의 결합이 어떤 효과를 낳는지를 본능적으로 인식한 최초의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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