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디너파티’.
정성 들여 수놓은 냅킨을 보니 손님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쉬타부터 레스보스 섬의 시인 사포, 동로마제국의 황후 테오도라, 문인 에밀리 디킨스, 화가 조지아 오키프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성들이 그 주인공이다. 성배(聖杯)는 있지만 13명의 남성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상석 없는 테이블에 자리할 39명의 손님 모두가 여성이다. 그러고 보니 메인 음식으로 놓인 도자기 접시는 영락없이 여성 성기 모양이다.
이것은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 주디 시카고가 1979년 제작한 ‘디너파티’라는 작품이다. 최후의 만찬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창조하려 했던 작가는 걸판지게 잔칫상을 차려놓고 여성들에게 시중은 그만두고 주인공 자리에 나와 앉으라고 손짓한다. 정교한 자수와 도자기는 수공예를 여성의 열등한 미술로 평가절하해온 미술사에 대한 반론이요, 성기는 작가가 선택한 여성성의 상징이다.
지금은 페미니즘 미술사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널리 인정받지만, 작품이 발표되던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외설적이라는 비판부터 여성성을 오직 생물학적으로만 규정한다는 비판까지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주요 미술관들도 이 작품을 소장하기를 꺼렸다. 이 작품은 최근에야 브루클린 미술관의 페미니즘 미술 전용공간인 엘리자베스 재클러 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3월23일 문을 연 이 센터는 개관 기념으로 상설전시 ‘디너파티’와 더불어 ‘글로벌 페미니즘’이라는 기획전을 열었다. 전 세계 80여 명의 여성 작가가 참가한 이 전시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페미니즘 미술의 동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페미니즘 전용공간이 최초로 주요 미술관에 생겼다는 사실, 더구나 그곳에서 주디 시카고의 상징적 작품인 ‘디너파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한판 잔치를 벌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