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3일 남대문경찰서 강대원 수사과장이 김승연 한화 회장의 ‘보복 폭행’ 혐의 수사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검찰은 그 과정에서 몇몇 인물의 동선에 주목한다. 그 첫 번째 라인에 선 사람이 강대원 전 남대문서 수사과장이다. 이 사건의 수사팀장이었던 그는 “상부에서 압력이 있었다. 한화로부터 ‘평생 먹여 살리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경찰의 외압과 한화그룹의 회유설을 처음으로 입에 올렸다. 이 폭탄 발언으로 단순한 ‘폭행사건’이었던 북창동 잔혹사는 재벌과 경찰의 유착의혹 사건으로 성격이 바뀌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유영철 검거 등 최고 수사능력
조폭과의 부적절한 만남이 확인돼 옷을 벗은 강 전 과장은 “나를 희생해 조직을 살리겠다”며 경찰을 떠났다. 그러나 검찰은 그의 사표가 어떻게 조직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눈치다. 강 전 과장은 북창동 잔혹사의 전말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한화 측 로비의 최전선에 있던 이도 강 전 과장이었고, 경찰청 내 외압이 사실이라면 그 외압의 끝에도 그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금품로비든 외압이든 그의 입을 통하지 않고는 사건이 해결될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일까. 그가 눈물을 흘리며 던진 ‘사표’는 여운을 남긴다. 강 전 과장이 가슴에 품고 있는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강 전 과장의 과거를 돌아보면 진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04년 7월18일, 마포에 자리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요일이었지만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검거된 것이다.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 선 사람은 광역수사대 기동대장이었다.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딱딱하고 단호했다.
“7월15일 보도방 운영자한테서 마사지 아가씨가 나갔는데 들어오지 않는다는 실종신고를 받고 예의주시하던 중, 같은 날 새벽 2시께 그 운영자한테서 또 실종신고를 받아 출동한 끝에 4시50분쯤 검거했습니다.”
당시 기동대장이 바로 강대원 전 과장이었다. 그의 동료와 지인들은 그를 ‘강단 있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강 전 과장은 사건 수사에 매달리면 20일 이상 밤을 새울 때가 많다. 동료들이 그를 ‘형사 일에 미친 사람’이라 부를 정도다. 한번 일을 벌이면 절대 놓지 않는 그는 일화도 많이 남겼다. 그의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동기인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대원이는 형사가 되고 싶어 직급도 안 따지고 경찰에 들어온 사람이다. 그는 해병 대위로 예편했지만 경사로 경찰에 들어왔다. 경위나 경감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욕심내지 않았다. 경감 시험을 봤을 때인가. 그에게 합격 소식을 전해줬더니 10분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울더라.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범인을 쫓으며 시험 준비하느라 각성제를 먹어가면서 한 달 넘게 잠을 안 잤다고 하더라. 정말 독한 사람이다.”
해병대 기질도 대단하다. 군 동기의 기억이다.
“지금은 몰라도 70년대 시절 해병대는 매일 매타작을 했다. 그런데 대원이 동기 중에 천성적으로 매를 못 맞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대원이가 그 사람 대신 3년 내내 매를 맞았다. 현역 해병 군인인 그 친구는 지금도 대원이를 은인으로 생각한다.”
강 전 과장은 1980년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이후 30년 동안 일선 형사로만 돌았다. 남들이 탐내는 내근 행정직에는 한 번도 눈길 준 적이 없다.
운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희대의 살인마를 잡은 영웅이었지만 사건이 종결되기 전 부하 경찰관이 피해자 가족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나 승진은커녕 용산경찰서로 전보조치됐다. 취재기자들과 계속 마찰을 빚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강 전 과장은 유영철 사건이 터진 2004년, 경찰기자들이 뽑은 ‘올해의 워스트 경찰(사건)’에 이름을 올리는 수모도 당했다.
지난해에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용산 초등학생 성추행 살해사건을 해결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피해 학생의 장례식을 하루 앞두고 유흥주점에서 술자리를 가진 것이 문제가 돼 다시 남대문경찰서로 전보 조치됐다.
보복 폭행 혐의로 5월12일 구속된 김승연 회장.
경찰 관계자들은 강 전 과장의 탁월한 수사능력에 관한 한 이견을 달지 않는다. 사건을 해결하는 동물적인 감각, 수사능력은 대한민국 최고라는 것. 유영철 사건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 형사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영철이 잡혀왔을 때 형사들도 당황했다. 20명 넘게 죽였다고 자백하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더라. 처음에 유영철은 ‘높은 사람 데리고 오라’며 수사를 거부했다. 그런데 강대원 기동대장이 딱 2시간 만에 정리를 하더라. 유영철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그걸로 수사는 끝났다.”
전형적인 형사였던 강 전 과장은 북창동 잔혹사의 후폭풍에 밀려 경찰조직을 떠났다. 경찰서장의 꿈도 풍비박산났다. 그는 요즘 사람들을 피하며 ‘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회고록이다. 그의 지인들은 ‘강 전 과장이 조직에 누를 끼칠 것을 우려해 입에 올리지 않았던 얘기들을 이 책에 담을 것 같다’고 말한다. 강 전 과장도 비슷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강 전 과장이 준비 중이라는 책은 7월을 전후해 세상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간 경찰수사관으로 살면서 봐온 인간 군상과 비리, 권력과 돈의 합종연횡 등이 실릴 것이라는 후문이다. 그의 회고록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북창동 잔혹사에 얽힌 밝혀지지 않은 진실과 팩트가 공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표를 낸 강 전 과장은 5월27일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과천경마장을 찾았다. 그를 울적하게 만든 마음속 비밀은 뭘까. 그를 둘러싸고 경찰 주변에서 제기되는 의혹의 눈길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 제기했던 외압의 실체가 부담스러워서일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다’는 강 전 과장은 조만간 검찰과 마주 서야 한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다시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