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7일 고려대에서 모의 논술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들.
최근 출제된 각 대학 모의논술은 수험생의 부담을 고려해 과도한 교과 결합을 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2008학년도 통합교과형 모의논술고사를 실시한 연세대와 고려대는 인문계열 지원자에게는 언어와 사회, 자연계열 지원자에게는 수리와 과학 교과를 통합한 문제를 주로 출제했다.
통계자료에 대한 다양한 논쟁 챙겨야
하지만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수리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2월22일 통합교과형 논술모의고사를 실시한 서울대는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수리적 통계해석의 오류를 찾아내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즉, 수리적 연산문제가 아니라 수리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수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남자의 비율이 약 94%라고 했을 때 자신이 대한민국 남자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될 확률이 94%라 믿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대한민국 남자가 국회의원이 될 확률은 아주 낮다. 그런데 2002년에 노벨상을 받은 카네먼(Kahneman)과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이 수치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판단오류를 범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판단오류는 교육을 잘 받은 사람에게서도 발생한다.
-서울대 2008학년도 논술모의고사 기출 제시문
서울대 논술모의고사에서는 먼저 조건부 확률의 개념을 도출할 수 있는 이 제시문을 문제해결의 단서로 제시했다. 그리고 문제에서는 에이즈를 유발하는 바이러스(HIV)의 발병률이 0.1%인 조건에서 HIV 보균자 검사 결과 보균자가 양성인 경우는 100%, 비보균자가 양성인 경우는 5%라는 통계해석의 기본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의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을 때, 이 사람이 HIV 보균자일 가능성이 2%인 이유와 사람들이 95%라고 잘못 판단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이런 문제를 출제한 이유는 첫째, 제시문에 주어진 조건부 확률의 개념을 다른 사회현상에 적용하는 ‘개념의 적용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둘째, 사람들이 통계수치 해석의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단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다.
이와 유사한 유형의 문제는 서울대에서 발표한 2008학년도 통합교과논술 1차 예시문항에도 출제됐다. 그 문제에서는 조이혼율을 산정하는 다양한 통계방식을 비교하면서 통계 오류를 찾아내고, 그에 대해 서술할 것을 요구했다. 또 중앙대 2007학년도 1학기 수시모집에서는 백인의 사형 선고율이 흑인보다 높다고 한 한 인종주의자의 주장을 인권주의자가 제시한 ‘가해자와 피해자 유형별 사형선고율’을 토대로 반박하라는 논술문제가 출제됐다.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정치·경제·사회 영역에서 각종 통계자료가 이용되고 통계자료 작성의 오류, 통계자료 해석의 오류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 벌어지는 상황에서 꾸준히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신문이나 잡지를 구독하면서 통계자료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을 눈여겨보고, 그 자료들을 모아두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