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리델 와인잔에 붉은 포도주가 그윽하게 차올랐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사용됐던 프랑스 보르도산 샤토 라투르였다. 만 병이 넘게 들어찬 포도주 저장고에서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둔 1980년산이다. 남조선에서는 한 병에 500만원이나 한다고 한다.
지난해 10월엔 핵실험 성공으로 과학자들에게도 대접했지만, 오늘은 충직스럽고 뛰어난 두 외교관을 위해 마련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외무성 강석주 부부장과 김계관 부상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고난의 행군은 끝이 났다. 동지들 덕에 조국은 강성대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
‘장군님’의 핵실험 결정에 내심 반대하던 외교관들이었다. 그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결의안에 중국이 찬성할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핵실험 한 발로 북한의 목을 죄어오던 미 제국주의자들은 두 손을 들었다. 마카오의 은행에 있는 장군님의 쌈짓돈도 풀어주고 중유도 다시 준다고 한다.
“동지들, 건배하자우!”
김 위원장의 제의에 명품 와인잔이 부딪칠 때 나는 투명한 금속성이 주석궁에 널리 울려퍼졌다. 그들은 밤새도록 샤토 라투르에 취해 있었다. 2·13합의는 과연 북한 외교의 승리를 의미하는가? 물론 핵실험이 아니었다면 2·13 합의는 없었겠지만, 지난 17년 이상 북한과의 핵협상을 면밀히 관찰해보면 매우 일관된 면이 있다.
즉, 북한은 자신의 뜻대로 협상이 진행되지 않거나 정체될 때는 모험적인 행동으로 위기를 고조시켰다가 곧이어 극적 반전을 협상의 돌파구를 삼았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클린턴 정부의 협상 한계선을 넘는 행위, 즉 영변 원자로의 연료봉 인출 같은 일방적 행위를 통해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얻어냈다. 1998년 8월에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해 베를린합의를 끌어냈고, 이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에 따른 정체된 국면을 핵실험이라는 일련의 극단 조치 이후 6자회담 복귀와 핵시설 폐쇄라는 극적 반전을 통해 돌파하려고 했다.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할 수 없다던 부시 행정부는 결국 영변 핵활동을 동결하기 위해 정치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중간선거 패배로 국내 정치 기반이 약화된 가운데, 부시 행정부가 최우선으로 다루던 중동 정세가 이라크 내전 격화, 이란의 핵무기 개발 등으로 수렁에 빠져버렸다. 부시 대통령은 반대 여론에도 이라크에 미군 2만명을 증파하고 항공모함 2척을 페르시아만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를 사우디에 각각 배치했다.
2·13 합의 사항 성실 이행만이 살길
미국의 군사력 증파는 이라크 내전에 대처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란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지원하기 위한 포석일 가능성도 있다. 또 악화되는 중동 정세로 북핵 문제에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수 없는 부시 행정부의 현상황에서 잠정적으로 동결을 통한 안정적 관리를 모색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하고 2·13 합의에서 경제적 인센티브를 얻어 외교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17년간의 북핵 협상에서 핵무장에 집착한 결과 북한의 경제·사회는 극도로 피폐해졌다. 90년대 초반 북한의 경제 규모는 200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17년이 지난 지금은 60억~70억 달러로 축소됐다. 그리고 그동안 수백만명의 북한 주민이 아사했다. 과연 이것을 북한의 승리로 볼 수 있을까.
1조 달러 규모를 눈앞에 둔 한국과의 경제 격차는 100배 이상 벌어지고 있다. 핵무장이 당장은 심리적 안정감을 줄지 모르지만, 이는 결국 자멸의 길로 가는 것임을 북한 지도부는 빨리 깨달아야 한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은 북한을 죄는 실질적 고삐를 결코 늦추지 않을 것이다.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의 초기 이행조치들을 성실히 실행하는 것만이 북한의 살길이다. 샤토 라투르와 외교적 승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지난해 10월엔 핵실험 성공으로 과학자들에게도 대접했지만, 오늘은 충직스럽고 뛰어난 두 외교관을 위해 마련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외무성 강석주 부부장과 김계관 부상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고난의 행군은 끝이 났다. 동지들 덕에 조국은 강성대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
‘장군님’의 핵실험 결정에 내심 반대하던 외교관들이었다. 그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결의안에 중국이 찬성할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핵실험 한 발로 북한의 목을 죄어오던 미 제국주의자들은 두 손을 들었다. 마카오의 은행에 있는 장군님의 쌈짓돈도 풀어주고 중유도 다시 준다고 한다.
“동지들, 건배하자우!”
김 위원장의 제의에 명품 와인잔이 부딪칠 때 나는 투명한 금속성이 주석궁에 널리 울려퍼졌다. 그들은 밤새도록 샤토 라투르에 취해 있었다. 2·13합의는 과연 북한 외교의 승리를 의미하는가? 물론 핵실험이 아니었다면 2·13 합의는 없었겠지만, 지난 17년 이상 북한과의 핵협상을 면밀히 관찰해보면 매우 일관된 면이 있다.
즉, 북한은 자신의 뜻대로 협상이 진행되지 않거나 정체될 때는 모험적인 행동으로 위기를 고조시켰다가 곧이어 극적 반전을 협상의 돌파구를 삼았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클린턴 정부의 협상 한계선을 넘는 행위, 즉 영변 원자로의 연료봉 인출 같은 일방적 행위를 통해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얻어냈다. 1998년 8월에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해 베를린합의를 끌어냈고, 이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에 따른 정체된 국면을 핵실험이라는 일련의 극단 조치 이후 6자회담 복귀와 핵시설 폐쇄라는 극적 반전을 통해 돌파하려고 했다.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할 수 없다던 부시 행정부는 결국 영변 핵활동을 동결하기 위해 정치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중간선거 패배로 국내 정치 기반이 약화된 가운데, 부시 행정부가 최우선으로 다루던 중동 정세가 이라크 내전 격화, 이란의 핵무기 개발 등으로 수렁에 빠져버렸다. 부시 대통령은 반대 여론에도 이라크에 미군 2만명을 증파하고 항공모함 2척을 페르시아만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를 사우디에 각각 배치했다.
2·13 합의 사항 성실 이행만이 살길
미국의 군사력 증파는 이라크 내전에 대처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란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지원하기 위한 포석일 가능성도 있다. 또 악화되는 중동 정세로 북핵 문제에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수 없는 부시 행정부의 현상황에서 잠정적으로 동결을 통한 안정적 관리를 모색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하고 2·13 합의에서 경제적 인센티브를 얻어 외교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17년간의 북핵 협상에서 핵무장에 집착한 결과 북한의 경제·사회는 극도로 피폐해졌다. 90년대 초반 북한의 경제 규모는 200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17년이 지난 지금은 60억~70억 달러로 축소됐다. 그리고 그동안 수백만명의 북한 주민이 아사했다. 과연 이것을 북한의 승리로 볼 수 있을까.
1조 달러 규모를 눈앞에 둔 한국과의 경제 격차는 100배 이상 벌어지고 있다. 핵무장이 당장은 심리적 안정감을 줄지 모르지만, 이는 결국 자멸의 길로 가는 것임을 북한 지도부는 빨리 깨달아야 한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은 북한을 죄는 실질적 고삐를 결코 늦추지 않을 것이다.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의 초기 이행조치들을 성실히 실행하는 것만이 북한의 살길이다. 샤토 라투르와 외교적 승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