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는 언제나 머리가 짧다. 까까머리 중학생 같은 그의 짧은 머리, 깊게 팬 강렬한 눈빛은 그와 마주 선 사람을 항상 긴장하게 만든다. 그의 내부에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에너지가 웅크리고 있다. 언제든 심지에 불만 붙이면 굉음을 내며 폭발할 것 같은 화약을 안고 다니는 남자, 장이머우.
1월18일 저녁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장이머우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의 최신작 ‘황후화’의 한국 개봉을 위해 내한한 그는 다른 때처럼 검은색 바지에 검정 점퍼를 걸친 허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금방 촬영장에서 달려온 듯 소매를 걷어붙인 그의 눈빛은 용광로 속의 불꽃처럼 뜨거웠고, 나는 이 문제 많은 거인을 보며 몸에 소름이 돋았다.
올해 57세 정열적으로 영화 만들고 다양한 활동
장이머우는 분명히 뛰어난 장인이다. 1951년생이니 올해 57세다.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지만 어느 감독보다 정열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된 오페라 ‘투란도트’의 연출을 맡은 적이 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 ‘최초의 황제’를 연출하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총감독으로 임명돼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올림픽 개폐막식을 책임질 예정이다.
늦깎이로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한 장이머우는 처음에 촬영감독으로 영화일을 시작했다. 그는 훗날 장이머우 등과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으로 불리는 첸카이거의 ‘황토지’(1984년)를 촬영했고, 진시황릉을 소재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정소동 감독의 판타지 영화 ‘진용’(1989년)에서는 공리의 상대역인 남자주인공을 맡아 연기를 하기도 했다.
장이머우의 감독 데뷔작 ‘붉은 수수밭’(1988년)은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받았다. 가난한 농부의 딸 추알(공리 분)이 양조장을 경영하는 나환자 노인에게 팔려 시집왔지만 가마꾼 유이찬오(강문 분)와 정을 통한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강렬한 붉은빛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을 탐미적으로 그린 이 작품을 비롯해 ‘국두’(1990년)와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은 ‘홍등’(1991년)은 그의 초기 대표작들이다. 청·홍의 강렬한 색채를 대비시키며 인간의 은밀한 본능과 욕망을 형상화하고 있는 이 시기 장이머우는 중국 정부 당국의 견제를 받았다.
‘귀주 이야기’부터 중국 정부와 밀월 시작
장이머우와 중국 정부의 밀월이 시작된 것은 ‘귀주 이야기’(1992년)부터다. 이 영화를 보고 중국 정부가 얼마나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 북서부 시골마을을 무대로 평범한 시골 아낙네 귀주의 투쟁을 그린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초기작들과 확연히 다른 세계관을 드러낸다. 귀주의 남편은 촌장 왕씨와 사소한 다툼 끝에 국부를 걷어차인다. 치안관의 중재로 촌장에게서 치료비를 받지만 귀주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 혼자 힘으로 도시까지 나가 촌장을 고소한다.
먼저 형식적 측면에서는 강렬한 색채 대비가 사라지고 일상적 삶의 사실적 묘사를 통해 훨씬 더 현실에 접근하고 있다. 또 주제적 측면에서도 인간의 성적 본능이나 욕망보다 잘못된 권력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는 모습을 통해 중국 사회의 건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귀주 이야기’ 이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인생’(1995년), 공리와 결별하고 신인 장쯔이를 발굴해 찍은 ‘집으로 가는 길’(1999년), ‘책상서랍 속의 동화’(1999년) 등 중기 작품들은 충실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중국 정부의 신임과 전폭적 지지를 받은 장이머우는 대작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진시황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들과 진시황의 논리 싸움이 예리하게 살아 있는 ‘영웅’(2002년)은 흔히 말하듯 무협액션 대작이 아니다. 이것은 명백한 정치영화다. 영화를 뒤덮는 외형적 테크놀로지에 현혹되어 이 작품을 무협영화로 보는 사람들은 장이머우의 진정한 의도를 모르고 그의 사상적 힘에 침투된 것이다. ‘영웅’은 북미영화 박스오피스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장이머우 초기작의 화려한 색감이 되살아나면서 장대한 스케일로 인간의 욕망을 그리고 있는 서사구조와 스케일에 압도됐고, 동양적 판타지의 힘이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그 이면에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대결이 있다는 점이 간과됐다.
천하통일을 꿈꾸며 군소 국가들을 침공하고 지배세력을 숙청한 진시황은 수많은 적을 만들어냄으로써 늘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진시황은 철저한 호위병의 경호 속에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했다. 각각 다른 이유로 진시황의 목숨을 노리던 자객들은 진시황의 신임을 얻고 그의 곁에 다가가기 위한 최후의 방법을 동원한다.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진시황의 목숨을 노리던 자객들을 살해한 공로로 이연걸은 드디어 진시황 바로 앞까지 다가간다. 이제 칼만 빼들면 진시황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진시황의 설득이 펼쳐진다.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수해 중국 백성에게 더 많은 부와 평화를 주기 위해서는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는 것을 정당화한 진시황의 논리에 설득력을 실어주기 위해 장이머우는 그의 모든 연출력을 동원한다. 결국 자객 이연걸은 스스로 물러나와 죽음을 맞는다. ‘영웅’은 장이머우가 중국 국가주의에 대한 이념적 지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외로움과 절대고독 인간의 허무한 욕망 그려
‘영웅’ ‘연인’에 이어 국내 개봉되는 ‘황후화’도 마찬가지다. 장이머우의 3기작에 속하는 이 작품들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거대 물량을 동원해 촬영됐으며 중국 내 배급에서도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다. 중국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인 450억원이 투입된 ‘황후화’의 시각적 쾌감은 놀라운 것이다.
중국 당나라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황제와 황후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전개되는 내러티브는 언뜻 인간의 허무한 욕망과 애증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주와 결혼하여 천하를 얻기 위해 전처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황제, 그러나 공주와 결혼한 뒤에도 전처를 잊지 못하는 황제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황후는 황제의 전처 소생 왕자를 유혹해 불륜관계를 갖는다. 직접적인 근친상간은 아니지만 엄연히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다. 거기에 진짜 근친상간이 삽입된다. 황후와 불륜관계에 있는 왕자는 궁의 시녀와 연인관계에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시녀는 황제의 전처가 재혼해서 낳은 딸이었다.
그러나 ‘황후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소재나 황제와 황후를 각각 지지하는 십만 대군의 화려한 궁중 결투신이 아니다. 황후를 서서히 독살하는 황제의 행동에는 정당성이 부여되어 있고, 권력에 대한 야욕이 아니라 나라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식까지도 살해하는 황제의 모습은 비정함보다는 외로움과 절대고독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장이머우의 영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영화적 구현이 뛰어난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너무나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앞으로도 장이머우 감독이 중국 정부의 전폭적 신임을 받으며 영화를 만드는 한, 그의 영화 스케일은 더욱 커질 것이고 내용적으로는 중국 국가주의의 은밀한 영화적 구현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주시해야 한다.
1월18일 저녁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장이머우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의 최신작 ‘황후화’의 한국 개봉을 위해 내한한 그는 다른 때처럼 검은색 바지에 검정 점퍼를 걸친 허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금방 촬영장에서 달려온 듯 소매를 걷어붙인 그의 눈빛은 용광로 속의 불꽃처럼 뜨거웠고, 나는 이 문제 많은 거인을 보며 몸에 소름이 돋았다.
올해 57세 정열적으로 영화 만들고 다양한 활동
장이머우는 분명히 뛰어난 장인이다. 1951년생이니 올해 57세다.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지만 어느 감독보다 정열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된 오페라 ‘투란도트’의 연출을 맡은 적이 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 ‘최초의 황제’를 연출하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총감독으로 임명돼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올림픽 개폐막식을 책임질 예정이다.
늦깎이로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한 장이머우는 처음에 촬영감독으로 영화일을 시작했다. 그는 훗날 장이머우 등과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으로 불리는 첸카이거의 ‘황토지’(1984년)를 촬영했고, 진시황릉을 소재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정소동 감독의 판타지 영화 ‘진용’(1989년)에서는 공리의 상대역인 남자주인공을 맡아 연기를 하기도 했다.
장이머우의 감독 데뷔작 ‘붉은 수수밭’(1988년)은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받았다. 가난한 농부의 딸 추알(공리 분)이 양조장을 경영하는 나환자 노인에게 팔려 시집왔지만 가마꾼 유이찬오(강문 분)와 정을 통한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강렬한 붉은빛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을 탐미적으로 그린 이 작품을 비롯해 ‘국두’(1990년)와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은 ‘홍등’(1991년)은 그의 초기 대표작들이다. 청·홍의 강렬한 색채를 대비시키며 인간의 은밀한 본능과 욕망을 형상화하고 있는 이 시기 장이머우는 중국 정부 당국의 견제를 받았다.
‘귀주 이야기’부터 중국 정부와 밀월 시작
장이머우와 중국 정부의 밀월이 시작된 것은 ‘귀주 이야기’(1992년)부터다. 이 영화를 보고 중국 정부가 얼마나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 북서부 시골마을을 무대로 평범한 시골 아낙네 귀주의 투쟁을 그린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초기작들과 확연히 다른 세계관을 드러낸다. 귀주의 남편은 촌장 왕씨와 사소한 다툼 끝에 국부를 걷어차인다. 치안관의 중재로 촌장에게서 치료비를 받지만 귀주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 혼자 힘으로 도시까지 나가 촌장을 고소한다.
먼저 형식적 측면에서는 강렬한 색채 대비가 사라지고 일상적 삶의 사실적 묘사를 통해 훨씬 더 현실에 접근하고 있다. 또 주제적 측면에서도 인간의 성적 본능이나 욕망보다 잘못된 권력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는 모습을 통해 중국 사회의 건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귀주 이야기’ 이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인생’(1995년), 공리와 결별하고 신인 장쯔이를 발굴해 찍은 ‘집으로 가는 길’(1999년), ‘책상서랍 속의 동화’(1999년) 등 중기 작품들은 충실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중국 정부의 신임과 전폭적 지지를 받은 장이머우는 대작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진시황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들과 진시황의 논리 싸움이 예리하게 살아 있는 ‘영웅’(2002년)은 흔히 말하듯 무협액션 대작이 아니다. 이것은 명백한 정치영화다. 영화를 뒤덮는 외형적 테크놀로지에 현혹되어 이 작품을 무협영화로 보는 사람들은 장이머우의 진정한 의도를 모르고 그의 사상적 힘에 침투된 것이다. ‘영웅’은 북미영화 박스오피스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장이머우 초기작의 화려한 색감이 되살아나면서 장대한 스케일로 인간의 욕망을 그리고 있는 서사구조와 스케일에 압도됐고, 동양적 판타지의 힘이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그 이면에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대결이 있다는 점이 간과됐다.
천하통일을 꿈꾸며 군소 국가들을 침공하고 지배세력을 숙청한 진시황은 수많은 적을 만들어냄으로써 늘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진시황은 철저한 호위병의 경호 속에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했다. 각각 다른 이유로 진시황의 목숨을 노리던 자객들은 진시황의 신임을 얻고 그의 곁에 다가가기 위한 최후의 방법을 동원한다.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진시황의 목숨을 노리던 자객들을 살해한 공로로 이연걸은 드디어 진시황 바로 앞까지 다가간다. 이제 칼만 빼들면 진시황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진시황의 설득이 펼쳐진다.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수해 중국 백성에게 더 많은 부와 평화를 주기 위해서는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는 것을 정당화한 진시황의 논리에 설득력을 실어주기 위해 장이머우는 그의 모든 연출력을 동원한다. 결국 자객 이연걸은 스스로 물러나와 죽음을 맞는다. ‘영웅’은 장이머우가 중국 국가주의에 대한 이념적 지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외로움과 절대고독 인간의 허무한 욕망 그려
‘영웅’ ‘연인’에 이어 국내 개봉되는 ‘황후화’도 마찬가지다. 장이머우의 3기작에 속하는 이 작품들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거대 물량을 동원해 촬영됐으며 중국 내 배급에서도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다. 중국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인 450억원이 투입된 ‘황후화’의 시각적 쾌감은 놀라운 것이다.
중국 당나라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황제와 황후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전개되는 내러티브는 언뜻 인간의 허무한 욕망과 애증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주와 결혼하여 천하를 얻기 위해 전처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황제, 그러나 공주와 결혼한 뒤에도 전처를 잊지 못하는 황제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황후는 황제의 전처 소생 왕자를 유혹해 불륜관계를 갖는다. 직접적인 근친상간은 아니지만 엄연히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다. 거기에 진짜 근친상간이 삽입된다. 황후와 불륜관계에 있는 왕자는 궁의 시녀와 연인관계에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시녀는 황제의 전처가 재혼해서 낳은 딸이었다.
그러나 ‘황후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소재나 황제와 황후를 각각 지지하는 십만 대군의 화려한 궁중 결투신이 아니다. 황후를 서서히 독살하는 황제의 행동에는 정당성이 부여되어 있고, 권력에 대한 야욕이 아니라 나라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식까지도 살해하는 황제의 모습은 비정함보다는 외로움과 절대고독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장이머우의 영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영화적 구현이 뛰어난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너무나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앞으로도 장이머우 감독이 중국 정부의 전폭적 신임을 받으며 영화를 만드는 한, 그의 영화 스케일은 더욱 커질 것이고 내용적으로는 중국 국가주의의 은밀한 영화적 구현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