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회에 국민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를 구성하고 국민연금 개혁의 거보를 내디뎠다.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이 인기와는 거리가 먼 연금 개혁을 논한다는 자체가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것도 30년 뒤 일어날 연·기금의 고갈 문제를 가지고 우리 국회의원들이 논의를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다. 언제 우리 여·야 정치인들이 한 세대 뒤의 문제로 머리를 맞대고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논의하였던가? 연금특위의 출범을 보면서 오래전에 장롱 속에 처박아두었던 ‘희망’이란 단어를 다시 꺼내들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 꺼내든 게 아닌가 하고 요즘 조금 후회가 된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지만, 첫술이라도 제대로 떠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내년 2월 임시국회 상정을 목표로 1월 말까지 논의 시한을 한정하고, 의제도 사실상 정부의 재정안정화 방안에 국한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정부안은 임시방편적인 개혁안이다. 정부 안대로 보험료율을 15.9%로 올리고, 연금 지급액을 생애 평균소득의 50%로 낮춘다 해도 연기금 고갈 시점을 23년 늦추는 것밖에는 안 된다. 여기에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평균수명을 감안하면, 장기적 재정 안정성 문제는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각지대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임시방편적인 땜질이 아니라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재벌총수로부터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인에게 국민 평균소득의 20%를 연금으로 지급하겠다는 한나라당의 개혁안 내용에는 신뢰가 안 간다. 한편으로 감세안을 가지고 9조원가량 예산을 깎겠다고 덤비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첫해에만 9조원이 추가로 소요되는 기초연금제를 들고 나오니 못 믿을 수밖에 없다. 국가 경영을 책임지지 않은 야당이라지만, 연금 재정문제를 너무 간과하고 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거대야당이라면 진지해야 한다. 서로 모순되는 정책을 가지고 정부를 몰아세우는 상황에서 여·야 간 진지한 대화는 있을 수 없다.
결국 ‘땜질안’을 가지고 개혁의 소임을 다하는 양 야당을 다그치는 여당과, 무책임한 태도로 구조 개혁을 요구하는 야당이 모여앉아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공방만을 벌이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11월29일 파행으로 끝난 연금특위의 첫 회의는 이런 걱정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래도 기대를 해야 하는가? 매번 ‘혹시나’ 하다가 ‘역시나’ 하고 말지만, 그래도 한번 더 기대를 해보고자 하는 이유는 연금 개혁의 첫 단추로서 여·야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한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는 큰 진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가칭 ‘연금제도개혁위’를 국회에 상설로 두어야
그것은 정부 안이나 한나라당 안에 대한 전격적 합의가 아니다. 그보다는 여·야와 가입자단체, 그리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칭 ‘연금제도개혁위원회’를 국회에 상설로 두는 데 합의하는 것이다. 여기서 앞으로 2~3년 동안 차분하게 연금 개혁을 준비해야 한다. 여·야 정치가, 전문가 그리고 시민사회의 대표자들이 함께 모여 열린 마음으로 원점에서부터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개혁 대안이 창조적으로 설계되고 시행되고 있다. 현재 여·야가 주장하는 개혁안들은 모두 진부한 구식 모형들이다. 게다가 한국의 새 연금제도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주요 원칙(장기적 지속가능성, 기초보장의 강화, 특수직역연금과의 통합, 유연·고령 노동시장과의 조응성)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여·야가 서로 자기주장을 앞세워 싸울 때가 아니다. 먼저, 내놓은 개혁안이 최선의 대안이 못 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진실함이 필요하다. 솔직한 자기반성에서부터 연금 개혁은 시작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내년 2월 임시국회 상정을 목표로 1월 말까지 논의 시한을 한정하고, 의제도 사실상 정부의 재정안정화 방안에 국한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정부안은 임시방편적인 개혁안이다. 정부 안대로 보험료율을 15.9%로 올리고, 연금 지급액을 생애 평균소득의 50%로 낮춘다 해도 연기금 고갈 시점을 23년 늦추는 것밖에는 안 된다. 여기에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평균수명을 감안하면, 장기적 재정 안정성 문제는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각지대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임시방편적인 땜질이 아니라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재벌총수로부터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인에게 국민 평균소득의 20%를 연금으로 지급하겠다는 한나라당의 개혁안 내용에는 신뢰가 안 간다. 한편으로 감세안을 가지고 9조원가량 예산을 깎겠다고 덤비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첫해에만 9조원이 추가로 소요되는 기초연금제를 들고 나오니 못 믿을 수밖에 없다. 국가 경영을 책임지지 않은 야당이라지만, 연금 재정문제를 너무 간과하고 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거대야당이라면 진지해야 한다. 서로 모순되는 정책을 가지고 정부를 몰아세우는 상황에서 여·야 간 진지한 대화는 있을 수 없다.
결국 ‘땜질안’을 가지고 개혁의 소임을 다하는 양 야당을 다그치는 여당과, 무책임한 태도로 구조 개혁을 요구하는 야당이 모여앉아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공방만을 벌이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11월29일 파행으로 끝난 연금특위의 첫 회의는 이런 걱정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래도 기대를 해야 하는가? 매번 ‘혹시나’ 하다가 ‘역시나’ 하고 말지만, 그래도 한번 더 기대를 해보고자 하는 이유는 연금 개혁의 첫 단추로서 여·야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한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는 큰 진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가칭 ‘연금제도개혁위’를 국회에 상설로 두어야
그것은 정부 안이나 한나라당 안에 대한 전격적 합의가 아니다. 그보다는 여·야와 가입자단체, 그리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칭 ‘연금제도개혁위원회’를 국회에 상설로 두는 데 합의하는 것이다. 여기서 앞으로 2~3년 동안 차분하게 연금 개혁을 준비해야 한다. 여·야 정치가, 전문가 그리고 시민사회의 대표자들이 함께 모여 열린 마음으로 원점에서부터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개혁 대안이 창조적으로 설계되고 시행되고 있다. 현재 여·야가 주장하는 개혁안들은 모두 진부한 구식 모형들이다. 게다가 한국의 새 연금제도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주요 원칙(장기적 지속가능성, 기초보장의 강화, 특수직역연금과의 통합, 유연·고령 노동시장과의 조응성)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여·야가 서로 자기주장을 앞세워 싸울 때가 아니다. 먼저, 내놓은 개혁안이 최선의 대안이 못 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진실함이 필요하다. 솔직한 자기반성에서부터 연금 개혁은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