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조지아 주 오거스타내셔널GC.
얼마 전 국내서 열린 남·여오픈골프대회에서 그린 핀 위치를 놓고 주최 측과 선수, 그리고 골프장 간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펼쳐졌다.
골프장 측은 핀을 절대 성적 내기 쉬운 곳에 꽂을 수 없다는 것이고, 선수와 주최 측은 핀 위치가 경기 운영상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핀 위치를 놓고 실랑이를 벌인 가장 큰 이유의 이면에는 “우리 골프장에서는 언더파 우승은 절대 나와선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H대회가 열린 경기도 Y골프장은 선수들의 성적이 언더파가 나올까 봐 핀을 고약한 곳에만 골라가며 꽂았다는 혐의를 받기 충분했다. 그 결과 이 대회는 골프장 측의 의도대로 오버파 성적으로 우승자가 가려졌다. 그렇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Y골프장은 이후 명문으로 자리매김했을까.
핀 위치 어려운 곳에 … 선수들 골탕
얼마 전 끝난 국내 대회도 그린 스피드를 최대화하고, 언더파가 나오기 어려운 곳에 핀을 꽂아 선수들을 골탕 먹인 적이 있다.
한술 더 떠 중계를 하는 해설가는 “그린 스피드가 빠르고 선수들에게 쉽게 스코어를 허용치 않는 이곳이야말로 좋은 골프장, 명문 골프장”이라고 치켜세웠다.
정말 대회 우승자 성적이 언더파가 아닌 오버파이거나 5언더파 이내의 성적이 나와야 훌륭한 골프장일까?
지난해부터 국내 대회를 치르는 골프장들 사이에서 이 같은 잘못된 인식이 퍼져 실제 적용되고 있다.
K 프로골퍼는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 핀 위치를 보는 순간, 선수를 배려한 게 아니라 골프장 이익만을 위한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고 밝히면서 “심정 같아서는 퍼터를 열두 번 이상 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도대체 최다 언더파 우승자가 나오면 삼류 골프장이고, 최소 언더파나 오버파가 나오면 명문 골프장이라는 공식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 이는 골프장 측의 잘못된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물론 마스터스오픈이 열리는 미국 오거스타골프장은 깊은 러프와 빠른 그린, 긴 코스 때문에 스코어가 적게 나오고 이것이 명문 골프장으로 불리게 된 이유 중의 하나다. 그렇다고 국내 골프장들도 오커스타처럼 운영하려 한다면 이는 편장막급(鞭長莫及)과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채찍이 길더라도 말의 배를 때려서는 안 된다. 좀더 빨리 달려보려고 긴 채찍으로 말의 배를 때리면 오히려 말의 저항만 거세질 뿐이다.
명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무조건 오버파 스코어가 좋은 골프장이라고 하는 편견과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일까. 올해 들어 국내 골프장에서 열리는 챔피언전에서도 잘못된 골프 룰 적용으로 잡음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로컬룰도 아닌, 임의대로 룰을 바꿔가며 챔피언을 결정해버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 역시 골프장 측이 골프 룰을 가볍게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또한 골프 중계를 하는 관계자들도 이젠 속 보이는 해당 골프장 칭찬 버릇을 자제했으면 한다. 칭찬거리가 궁색하다 보니 골프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관행들이 마치 골프장의 정의처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들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은 웅덩이를 가득 채운 뒤에 흘러나간다. 물이 흐를 때는 조금이라도 오목한 데가 있으면 우선 그곳을 채운 뒤 흘러간다는 말로, 옛 성현들은 이를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이라고 했다.
모든 골프장들이 빠른 시간 안에 명문 반열에 오르고 싶겠지만, 어떤 일이든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더 이상 골프장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선수들을 골탕 먹이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