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9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5층에 마련한 재경위 국정감사장.
때가 때이니만큼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끈 분야는 역시 경제. 특히 재정경제위(이하 재경위), 정무위, 산업자원위(이하 산자위) 등 경제 관련 3대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운데 국정감사 첫날부터 열띤 논쟁을 벌였다.
‘주간동아’는 3대 상임위 의원들이 내놓은 보도자료들을 근거 삼아, 이번 국감 중 경제 관련 핵심 의제는 무엇이었는지, 또 수많은 뉴스 속에 묻혀버렸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거나 국민들이 알아둘 만한 조사 결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1차 취재 자료로 삼은 보도자료는 재경위 160개, 정무위 259개, 산자위 199개 등이다.
재정경제위원회
삼성차 빚, 안 갚을 생각이었나 이번 재경위 국감의 최대 쟁점은 뭐니 뭐니 해도 삼성그룹이었다. 의원들의 질의 내용은 그동안 제기됐던 삼성 관련 의혹들의 ‘종합선물세트’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중 가장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삼성상용차 분식회계 및 채권 손실보전 문제였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삼성은 채권단의 협상 시도를 네 차례 거부하고 소송에 대비해 위헌소송 전략까지 짜는 등 애초부터 채무를 갚을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송영길 열린우리당, 김양수 한나라당 의원도 같은 주장을 폈다. 박 의원은 또 “삼성차 빅딜과 매각을 앞두고 경영 자료를 폐기하는 등 자료 폐기 및 조사 방해는 삼성의 기업문화”라고 성토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삼성은 삼성차의 감가상각비를 축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규모 분식회계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선 박 의원도 다양한 증거자료를 내놓았다. 한편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일부 경제부처엔 고위공직으로의 승진을 노리는 ‘진학반’과 대기업 이직을 원하는 ‘취업반’이 있다”며 공직자의 삼성 재취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유착 문제를 꼬집었다.
금산법, 삼성이 코치했다고?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이하 금산법)을 둘러싼 논란 또한 중심에는 삼성이 있었다. 박영선 의원은 “재경부가 김&장, 율촌 등 삼성 측이 의뢰한 법률 자문사의 보고서를 토대로 삼성에 유리한 금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결국 법을 지킨 현대캐피탈만 기아차를 매각해 무려 1708억원의 기회손실을 입었다”며 “끝까지 버틴 삼성카드는 아무 제재도 받지 않았으니 말이 되느냐”고 질타했다.
10월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의 불참으로 비어 있는 재정경제부 국정감사 증인석.
김양수 의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2002년 론스타는 재경부와 외환은행 매각 관련 비밀준수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근거로 2003년 론스타는 금감원 승인을 무사히 받을 수 있도록 재경부를 압박했고, 재경부는 이를 실행했다”고 주장했다.
재경위 의원들은 외환은행 건 외에도 국내기업의 해외 매각 및 해외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지배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중국 매각 반대, 외국 자본의 국내 빌딩 투자금액이 7조원에 육박하는 상황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나라 빚 일부러 줄였나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국가 채무는 분산 위장하고, 국가 채권은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민간자본 유치사업(3조3000억원)과 산업은행의 아시아개발은행 차관자금(10억 달러)은 사실상 지급보증이라 빌린 돈에 가깝다. 반대로 KEDO에 대한 대출금(1조3000억원), 북한에 대한 식량차관(5000억원) 등은 회수가 불가능해 채권이랄 수 없다”는 것. 이 의원은 “국가 채권(130조원)과 국유재산(217조원)으로 국가 채무(국가 직접채무 203조원, 실제 국가 채무 944조원)를 갚을 능력이 있느냐”고 질타했다.
정무위원회
9월26일 정무위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직원들과 논의 중인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나경원 의원은 “옛 씨티은행의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 상품은 은행권 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6.67%(2002년 말)에서 5.48%(2005년 3월)까지 떨어졌는데도 같은 기간 아무 변동 없이 7.9%의 고금리를 적용했다”며 “이는 이용자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신학용 의원은 “지금처럼 씨티그룹 아시아지역본부가 한국씨티은행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허울뿐인 행장”이라고 주장했다.
문제 많은 자동차보험 보험 분야는 정무위 국감의 주요 사안. 전병헌 열린우리당 의원은 “최근 5년간 보험사가 보험금 정산을 잘못해 더 거둔 자동차보험금이 437억원, 총 31만2431건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또 “보험사들은 장기무사고 운전자들의 보험 손해율이 높다는 이유로 이들을 ‘공동인수물건(불량물건)’으로 취급, 15%의 할증 보험료를 추가로 받아왔다”며 “이는 장기무사고 운전자더러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적당히 사고를 내라’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명규 한나라당 의원은 “2006년 1월부터 가해자 불명 사고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10% 할증하기로 했다. 다수의 선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후 차량 주인이 차를 일부러 훼손해 보험금을 수령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신고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책임은 보험사에 있다는 것이다.
두산 의혹은 꼬리를 물고 김현미 열린우리당 의원은 금감원 감사에서 “올 7월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가족이 ㈜두산 주식 추가 인수를 위해 모두 200억원대 대출을 받을 당시 계열사 중 하나가 이면계약을 통해 지급보증을 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두산 측은 “주식 담보로 대출을 받았으며 이면계약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은 ‘두산 조사 3대 의혹’을 제시하기도 했다. “증권거래소가 7차례나 주가조작 사건을 통보했음에도 왜 감리와 연결하지 못했나, 2003년 7월 두산의 해외법인 뉴트라팍을 조사했음에도 왜 외화 밀반출을 확인하지 못했나, 두산이 회계감리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점을 사전 인지한 흔적이 있음에도 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등이었다.
9월27일 한국전력 본사에서 전기가 끊겼을 경우를 상정해 촛불을 켜놓고 국정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산자위 소속 의원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 또한 “금감원 감사결과 공매 재산을 가족 명의로 몰래 취득한 자사 직원들에 대해 최대 1개월 정직 처분만을 내리는 등 징계 조치가 극히 미미했다”고 주장했다. 오제세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공매 재산을 가족 명의로 취득한 사실을 3년이 넘도록 인지하지 못하는 등 내부통제 시스템에 근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은 부동산 재벌 대기업은 역시 부동산 재벌이었다. 전병헌 의원은 최근 3년간 상장기업들에 대한 부동산 평가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내놓았다. 삼성전자가 18조7007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롯데(9조5030억원), 현대자동차(8조7233억원), ㈜LG(6조1567억원), SK㈜(5조7223억원) 순이었다. 삼성전자는 2002년과 비교해 장부가액만 3조3985억원(22%)이 늘었으며, 현대차 또한 9750억원(12%)이 증가했다.
전 의원은 “부동산 실제 가격은 재무제표상 장부가격보다 훨씬 높다”며 “대기업들이 기술개발 투자보다는 신규사업 진출 명목으로 부동산을 사들여 엄청난 영업 차익을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통신정책, 소비자 중심으로 가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통신시장 규제에 적극 뛰어들면서 이른바 유효경쟁체제(차등 규제로 후발 사업자를 보호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가열됐다.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의 단말기 보조금 금지 정책은 소비자의 단말기 구입 비용을 증가시키고 통신산업 성장을 지연시켰다. 실효성 없는 규제로 사업자의 위법행위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또 “통신요금 인가제의 취지가 요금인상을 억제해 소비자 부담 증가를 막겠다는 것인지, 선발 사업자 요금을 규제해 후발 사업자의 영업 이윤을 보장하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문학진 의원은 “정통부와 공정위의 통신시장 중복 규제 문제에 대한 해소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KT의 무선재판매(KT 직원들의 KTF 가입자 모집 행위) 부당 지원에 대한 공정위의 무혐의 처분은 졸속 조사의 결과”라 주장했다.
산업자원위원회
비축유 구입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 한병도 열린우리당 의원은 “최근 3년간 비축유 구입 예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 최종 확정안이 애초 석유공사가 요구한 원안의 1/9 수준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비축유 구입 계획 단가도 2003년 당시 두바이유의 배럴당 평균가가 26.7달러였음에도 정부는 24.5달러로 계획했고, 2004년 역시 33.63달러였음에도 겨우 21달러를 책정했다가 35달러로 급하게 변경했다”며 “정부의 유가 예측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정유사 폭리 논란 여전 조승수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내 정유사들이 제품가격 산정 시 원유도입 가격이 아닌 국제석유제품 가격을 사용,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전 의원은 “1ℓ당 국내 제품가와 원유 도입가 차액은 97.55원에 이른다”며 “이를 2004년 휘발유 국내 판매량 5728만 배럴과 비교할 때 8883억원의 차액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석유협회 측은 “미국, EU, 일본 등도 국제 제품가격을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병도 의원은 “정유사들의 공장도 가격은 1ℓ당 40원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판매 가격차는 12원에 불과하다”며 정유사 간 가격 담합을 주장했다.
가짜 휘발유를 어찌할까 안경률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3년간 가짜 휘발유·경유로 인한 탈루 세액이 2449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가짜 휘발유 원료인 솔벤트, 시너 등 용제 판매량을 기준으로 볼 때 가짜 휘발유 유통량은 2002년 45만2580배럴에서 2004년 483만2980배럴로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