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번역가라고 소개한 A(41) 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경찰에 적발된 인터넷 스와핑 사이트 ‘부부플러스’의 평생회원으로, 경기 고양시에 사는 그는 3월24일 부산 강서경찰서까지 불려왔다. 이 사이트에 음란물을 올린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내의 나체 사진을 6장 정도 올렸어요. 이 사이트 운영 원칙이 다른 데서 퍼온 사진은 안 되고, 회원들이 직접 찍은 사진만 올려야 하거든요. 아내 사진을 보고 회원들이 댓글을 달아주는데, 그게 참 재밌어요. 예쁜 여자와 같이 길을 걸으면 사람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잖아요. 그때 느끼는 기분과 똑같은 거예요. 회원들이 아내 몸이 예쁘다고 하면 아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져요. 제가 변태 같은가요? 이런 사진을 올리는 게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는 건 몰랐습니다.”
별 광고 없었는데도 회원 5000여명 몰려
동해 남부 앞 바다와 맞닿아 있는 낙동강 하류 지역에 위치한 부산 강서경찰서. ‘부산진경찰서 관할 지역의 일주일치 사건이 1년에 걸쳐 발생하는 곳’이라는 말이 경찰관들 사이에서 나돌 만큼 평온했던 강서경찰서가 요즘 무척이나 시끄럽다. 3월22일 ‘부부플러스’ 운영자 유모(37) 씨를 음란물 게시 혐의로 구속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스와핑 사이트가 적발됐다’는 뉴스가 전국적으로 보도된 탓.
2003년 10월 서울 강남경찰서가 스와핑 인터넷 사이트를 적발해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스와핑이 다시 한번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이번 ‘부부플러스 사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금세 5000여명의 회원이 몰려들었고, 고소득 전문직과 사회 지도층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는 소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 수사의 초점이 스와핑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실 금전적 거래가 있지 않은 이상 자유의사에 따라 행해진 성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는 없다. 2003년 서울 강남경찰서 사건 때도 스와핑 장소를 제공한 노래방 주인과 레스토랑 주인만 각각 ‘음반 및 비디오물과 게임물에 관한 법률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을 뿐, 스와핑에 참가한 30쌍의 부부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남식 지능범죄수사1팀장은 “유 씨와 마찬가지로 음란물을 게시한 회원 150여명을 소환해 조사·처벌할 방침”이라며 “회원들끼리 실제로 스와핑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사 대상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유 씨 주장에 따르면 부부플러스는 2003년 9월 후지타 가즈오라는 일본인에 의해 개설됐다. 유 씨는 일본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중 지난해 2월 손님으로 온 후지타에게서 사이트 운영권을 넘겨받았다고 진술했다. 유 씨는 이후 중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통해 가입비 3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5000여명의 회원 중 유료 회원은 1000여명. 이중 절반이 12만원의 가입비를 내고 ‘평생회원’이 됐다.
‘부부플러스’ 홈페이지를 조사하는 김용호 경장(왼쪽)과 부산 강서경찰서 전경.
경찰은 사이트 회원들의 실제 스와핑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고 하지만, 사이트의 주된 목적이 스와핑이었음은 확실해 보인다. 서울·경기, 강원, 충청, 경상, 전라, 제주 등 6개 지역별 게시판에는 스와핑을 원한다는 2000여 건의 글이 빼곡하게 올라 있다.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부부를 만나고 싶습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낮 시간에 스와핑 가능하신 분’ ‘토요일 오후 서울 강남 오피스텔에서 스와핑 합시다’ ‘부산 사는 40대입니다. 저와 함께 활동할 40대 여성을 찾습니다’ 등등.
회원들 대다수는 남성인데, 자신과 배우자의 나이·키·몸무게 등을 적시하며 e메일을 통한 연락을 선호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IT 컨설턴트라는 한 30대 남성회원은 “결혼 3년차의 딩크족(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이며 외모와 매너가 청담동에 어울리는 스타일리시한 부부”라며 “우리와 비슷한 부류의 부부를 원한다”고 썼다.
정회원 아이디를 입수해 사이트 게시물과 사진 등을 검색한 결과, 구체적인 스와핑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를 설득하느라 애먹었다거나 외모와 성격이 마음에 드는 부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거나 스와핑 모임을 가진 후 부부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다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많은 회원들이 직접 자신과 배우자의 나체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스와핑을 원한다’고 밝혔다. 실제 스와핑 모임을 가진 회원들의 집단 성행위 장면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도 있었다. 회원들끼리는 아내를 설득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까지도 벌어졌다. 한 30대 남성은 스와핑 경험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2년 전 아내에게 스와핑을 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으나 두 달 동안 설득한 끝에 정핑(정례 스와핑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제 아내는 스와핑을 취미의 일종으로 생각하게 됐다. 모임에 나갈 때면 친정집에 아이들을 맡겨야 안심이 된다고 한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꼭 성관계를 갖는다.”
개별적인 스와핑 만남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스와핑 모임도 성행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에서는 가면파티가 벌어지기도 했으며, 펜션이나 콘도 등을 빌려 3∼8쌍이 모여 스와핑을 즐기기도 했다. 매달 정기적인 스와핑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자신을 서울 압구정동에 산다고 소개한 한 40대 남성은 2004년 3월의 스와핑 모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찰에 적발된 스와핑 사이트 ‘부부플러스’의 홈페이지.
12월16일 경기 양평의 펜션에서 열린 음란파티에서 사용된 가면들(왼쪽)과 ‘부부플러스’ 가입비가 입금된 통장.
“1대 2 성행위를 돕는 것은 돈벌 목적이 아닙니다. 자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경제 사정이 넉넉하기도 하고요. 그저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2년 전 인터넷에 집단 성행위를 주선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다가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금전적 거래가 없었기에 무혐의로 풀려났어요.”
미혼 남성인 부부플러스 정회원 B(35) 씨는 5년 전부터 1대 2 성행위에서 ‘초대받는 남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가끔씩 여자친구를 데리고 스와핑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대 2 성행위는 스와핑이나 집단 성행위로 가는 전초 단계”라고 설명했다. 스와핑을 원하는 남편이 아내를 설득하는 방법으로 1대 2 성행위를 주선하며 그 다음 아내를 스와핑 모임에 데리고 나가 구경하도록 하면서 부부가 함께 스와핑에 탐닉하게 된다는 것.
“제가 알기론 부부플러스처럼 스와핑을 전면에 내세운 사이트는 없습니다. 대부분 각종 변태적인 성행위를 알선하는 사이트인데, 그 안에서 스와핑도 주선되는 거죠. 그런데 10쌍 중 진짜 부부는 3쌍 정도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윤락여성을 데리고 나온 유부남이든가, 미혼 커플이죠.”
부부플러스 운영자가 구속된 후 각종 언론은 최소 1000여명의 회원들이 이 사이트를 매개로 스와핑에 참여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보다는 적은 회원들이 실제 스와핑에 나섰을 뿐 대부분 ‘눈팅’을 즐겼다는 것이 연락이 닿았던 회원들의 추측이다. 각종 변태적인 성 경험담으로 가득한 게시물의 절반 정도도 ‘가짜’라는 것이 이들의 짐작. 경찰 조사까지 받은 번역가 A씨는 가상의 성 경험을 연재했다. 그는 “스와핑이나 집단 성행위 등 변태적인 내용을 담아야 회원들의 반응이 좋기 때문에 그런 내용으로 썼다”고 털어놓았다. 사이트 자기소개란에 ‘스와핑 경험이 있는 41세, 37세 부부’라고 밝힌 김모(41) 씨 또한 사실 스와핑 경험이 없다.
“호기심에 가입했습니다. 해보고 싶은데, 해본 적은 없어요. 아내에게 말조차 꺼내보지 못한걸요. 남들이 하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그러기는 쉽지 않네요.”
김 씨는 지난해 가을 인터넷에서 ‘스와핑’이란 단어를 검색하다 이 사이트에 접속하게 됐다. 아내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 다른 여성을 구해 데리고 나갈 심산으로 ‘스와핑이 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남겨두었다. 서울 영등포에서 사업을 한다는 이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아직 아내를 설득하진 못했다”고 하니 전화가 뚝 끊겼다. 김 씨는 “리얼하게 묘사된 스와핑 경험담을 읽으면서 대리만족하고 있다”면서 “스와핑을 시작한 후 부부금실이 더 좋아졌다는 선배의 말에 스와핑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권태기 극복 위해 스와핑 즐긴다”
취재 중 연락이 닿은 사이트 회원들은 모두 ‘권태기에 빠진 중년 부부가 관계 회복을 위한 방편으로 스와핑을 즐긴다’는 스와핑에 대한 고정관념을 거부했다. 스와핑족들을 변태나 성도착증 환자로 보는 일부 시각도 거절했다. 자신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며,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스와핑에 대한 선호가 공존한다고 주장했다. 호기심으로 사이트에 가입했다가 아내와 함께 두 차례 스와핑을 했다고 밝힌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혼한 지 4년째이기 때문에 아직 권태를 느낄 단계가 아닙니다. 아내를 많이 사랑하며 아내를 믿습니다. 아내가 나 몰래 외도할까봐 걱정하기보다는 함께 서로가 보는 앞에서 성적 욕구를 발산하는 게 낫지 않나요. 가끔 여행을 떠나듯, 즐거운 영화를 관람하듯 스와핑을 즐기는 겁니다. 그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