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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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닝 1개 ‘닥터 K’ 원조 나야 나

27년간 선수생활 5714개 탈삼진 대기록 … 노히트 노런 7차례 포함 통산 61번 완봉승도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입력2005-03-17 1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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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이닝 1개 ‘닥터 K’ 원조 나야 나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보유한 롤란 라이언.

    2004년 9월16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기록이 세워졌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41세 백전노장 투수인 랜디 존슨이 왼손 투수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운 것이다. 존슨은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동안 5안타 2실점으로 팀의 3대 2 승리를 이끌며 탈삼진 11개를 기록해 신기록을 세웠다.

    존슨이 개인통산 탈삼진을 4139개로 늘려 스티브 칼턴의 왼손 최다 탈삼진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존슨의 왼손 최다 탈삼진 기록 경신으로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가진 롤란 라이언의 5714개 기록이 다시 주목받았다.

    묵직한 강속구가 트레이드마크

    라이언은 박찬호가 공주고 시절부터 가장 닮고 싶어했던 메이저리그의 ‘살아 있는 전설’이고,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자주 만나서 격려를 해주었던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라이언은 1966년부터 93년까지 27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무려 11번이나 리그 탈삼진 타이틀을 따낸 명실상부한 ‘닥터 K’의 원조다. 개인통산 9이닝당 삼진 수가 9.55개나 되는데, 이는 1이닝에 1개 이상의 탈삼진을 탈취한 것이다. 현역 선수 가운데 존슨이나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라이언보다 더 많은 게임당 탈삼진 수를 자랑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인통산’ 기록이다. 라이언은 개인통산 324승을 올렸고, 통산 방어율 3.19를 기록했다. 강속구가 트레이드마크인 라이언의 공식기록 162.4km는 98년 롭 넨(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이 164km를 세울 때까지 메이저리그 신기록이었다. 공이 빠를 뿐 아니라, 체중을 실어 던지기 때문에 묵직해서 웬만해서는 장타를 맞지 않는다. 또한 왼발을 높이 치켜드는(하이 키킹) 특이한 투구 폼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시 다른 투수들도 라이언의 하이 키킹을 흉내냈지만 거의 모두 실패했다. 박찬호도 초창기에는 하이 키킹 투구 폼으로 강속구를 자랑하며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47년생인 라이언은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인 66년에 뉴욕 메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70년까지 메츠에서 5시즌을 뛰었지만 성적은 평범했다. 그러다 71년 시즌에 처음으로 10승을 기록했다. 72년 시즌부터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재의 애너하임 에인절스)로 이적해 전성기를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72년 시즌에 19승을 올리며 2.28의 방어율에 무려 329개의 삼진을 잡아내 ‘닥터 K’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해 사이영상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에이스 투수 게이로드 페리가 차지했다. 라이언은 73년 시즌에도 21승을 올리며 2.87의 방어율에 383개의 삼진을 잡았다. 한 시즌 383개의 탈삼진은 메이저리그 신기록으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383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려면 적어도 400이닝을 던져야 하는데, 투수 로테이션이 세분화한 현대 야구에서는 좀처럼 깨뜨리기 어려운 기록이다. 74년 시즌에는 22승, 2.89의 방어율에 36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라이언은 71년 시즌부터 86년 시즌까지 무려 16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쌓았고, 데뷔 첫해와 은퇴하기 바로 직전 시즌만 빼고는 계속 2점대 또는 3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사이영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사이영상을 받지 못한 것이다.

    사이영상과 퍼펙트게임과는 인연 없어

    라이언은 80년 내셔널리그의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했다. 그렇지만 이때는 이미 나이가 30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시절만큼의 좋은 성적은 올리지 못했다. 투구 이닝도 주는 추세였고, 스피드도 떨어졌다. 89년 시즌부터 다시 아메리칸리그 텍사스 레인저스로 돌아와 텍사스에서 은퇴했다. 라이언이 텍사스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했고, 라이언 자신도 텍사스를 가장 좋아했기 때문에 많은 팬들에게 ‘텍사스맨’으로 기억되고 있다. 라이언은 93년 시즌 텍사스에서 단 66.1이닝만을 던지고 27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감했다. 만 46세까지 현역 선수로 생활한 것이다.

    라이언은 초창기엔 볼은 빨랐지만 제구력이 나빴다. 72년부터 74년까지 3년 연속, 76년부터 78년까지 3년 연속, 그리고 80년과 82년 등 모두 여덟 번이나 ‘리그 사사구 왕’에 올랐다. 74년에는 무려 202개의 볼넷을 기록했고, 77년에는 그보다 2개나 더 많은 204개를 기록했다. 물론 한 시즌 333이닝이라는 초인적 투구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볼넷을 허용했다. 라이언은 80년대 중반 이후 볼넷이 상당히 줄었음에도 개인통산 2795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라이언의 초인적인 기록은 그외에도 77년 한 해에 무려 22차례나 완투경기를 펼친 것이다. 지금 한 투수가 한 시즌에 많아야 10게임 정도 완투하는 것과 비교하면 라이언의 어깨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라이언은 또한 개인통산 61번의 완봉승을 기록했다. 그 가운데 수준급의 투수도 일생에 한 번 기록하기가 어렵다는 노히트 노런 기록이 무려 7차례나 포함돼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61차례나 완봉승을 거두면서도 퍼펙트게임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이영상과 함께 퍼펙트게임 기록은 라이언과 인연이 없었던 모양이다. 라이언은 생애 통산 7번 올스타에 선정됐는데 5차례는 아메리칸리그, 두 차례는 내셔널리그 소속이었다. 라이언은 1999년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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